법조계 관계자는 “언론에서는 작성된 배경에 주목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대일 채팅창에서 이뤄진 대화가 제3자에 의해 정리돼 지라시 형태로 돌게 될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는 게 SNS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급증하는 지금 주의 깊게 봐야 할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 방송작가 손에서 시작된 허위사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수사에 따르면, 나영석 PD와 정유미 씨 관련된 허위 사실이 담긴 지라시는 1차 버전과 2차 버전으로 나뉘어 퍼졌다.
처음 지인들에게 불륜설을 작성, 유포한 것은 프리랜서 작가 정 아무개 씨(29). 정 씨는 업계에서 주워들은 소문을 지인들에게 지난해 10월 15일,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의 대화로 “나 PD와 정 씨가 불륜 관계로 알고 있다”고 전달했다.
SNS를 통해 유포된 당시 지라시 내용
2차 버전도 비슷한 시점에 만들어진 뒤 기자들이 들어와 있는 오픈 채팅방으로 유입되는 방식이었다. 또 다른 방송작가 이 아무개 씨(30)는 동료에게 들은 소문을 지난해 10월 14일 카카오톡 메시지로 작성한 뒤 다른 작가들이 모여 있는 단체방에 내용을 공유했다. 이 지라시도 약 70단계를 카카오톡 대화를 거쳐 유통됐다가, 기자들이 모여 있는 오픈채팅방에 전달된 뒤 일반인들에게로 급속도로 확산됐다.
수사 결과만 놓고 보면 비교적 단순하지만, 경찰 관계자들은 “가장 번거롭고 힘든 수사 중 하나가 SNS 지라시 수사”라고 입을 모아 설명했다. 카카오톡 방을 한 단계 타고 올라갈 때마다 적게는 4일, 많게는 1주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대화를 건넨 상대를 특정하기 위해 카카오 등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검찰, 법원을 통해 발부받아 카카오로부터 자료를 받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다”며 “이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두 사람의 불륜설을 최초 작성한 방송작가 이 씨 등 3명과 이를 인터넷에 게시한 간호조무사 안 아무개 씨 등 6명 등 모두 9명을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 기자방 타고 솔솔
사건을 수사한 경찰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최초 유포자들의 태도다. 이를 처음 작성한 프리랜서 작가 정 씨, 회사원 이 씨, 방송작가 이 씨 등은 수사를 받으며 하나같이 “이렇게 지라시가 확산될 줄을 몰랐다”며 반성의 뜻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경찰 관계자는 “사건 최초 작성자를 수사할 때 물어보니, ‘나중에 본인이 내용을 지라시로 되돌려 받고 나서는 겁이 났다, 소문을 지인에게 전했을 뿐인데 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며 “SNS를 통한 정보 전파가 얼마나 빠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이들의 태도만큼이나 특징적인 것이 바로 ‘기자들이 들어와 있는 익명의 오픈카톡방’이었다고 첨언했다. 실제 1차, 2차 버전 지라시는 10월 17일 오전 즈음, 기자들이 100여 명 들어와 있는 익명 오픈 카톡방에 도달했다.
그리고 해당 오픈 카톡방은 익명이라는 특징을 등에 업고, 지라시 유통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익명의 1인이 유포한 지라시를 입수한 기자들은 지인들이나 동료 기자들에게 해당 사실을 전달했고, 일반인들에게까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오픈 카톡방에 17일 유입된 메시지는 언론계에 빠르게 확산됐고, 19일 즈음에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유통됐다. 특히 일부 매체는 구체적인 확인 없이 지라시만을 바탕으로 ‘불륜설이 담긴 지라시가 돈다’는 내용으로 기사화하기도 했다.
사건 흐름을 알고 있는 법조계 관계자는 “당시 사실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루머를 우회적으로 언급하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와 거짓된 정보가 더 공공연히 거론된 감이 있다”며 “SNS를 활용한 보도들이 늘어나다보니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피해 확산에 일조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 SNS 사용 유의점은?
나 PD와 배우 정 씨는 현재 이들에 대해 “선처는 없다”며 엄중한 처벌을 당부한 상황. 경찰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주변에서 들었다고 하더라도 주변에 SNS를 통해 알리는 것을 신중해야 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지적한다.
실제 이번 사건의 경우, 최초 유포자들이 대중에 대한 유포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지인들에게 자신이 들은 소문을 정리,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라시로 재가공된 뒤 언론 및 일반인들에게로 유포됐다.
앞선 법조계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일대일로 SNS에서 주고받더라도 이 SNS 내용이 제3자에게 전달돼 유포될 경우 최초 유포자가 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직접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카더라’라고 전하는 것과 별개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SNS를 통해 대화가 일반화되고, 일대일이 아닌 여러 명이 들어와 있는 오픈방, 그리고 심지어 익명으로 운영되는 지라시 오픈방이 활성화되면서 복사 및 붙여넣기 기능을 활용한 대화 및 지라시 유포가 더욱 용이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의 경우 나 PD와 배우 정 씨가 ‘최초 작성자 및 유포자’로 처벌 대상을 제한해 9명만 기소할 방침이지만, 경찰 관계자는 일반인들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작성자나 최초 유포자가 아닌 단순 유포자의 경우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재전송하면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며 “문제가 될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주변에 전파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경고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