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가 떨어지면 집주인은 전세 갱신시 보증금을 내어줘야 한다. 돈이 있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집을 팔아야 할 수 있다. 이른바 전세를 끼고 집을 산 ‘갭투자’로 추가 대출 여력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지난해 시행된 정부의 대출규제로 다주택 ‘투자자’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성북구 일대 아파트와 주택가 전경. 고성준 기자
# 깡통전세 대규모? 일부만?
급매가 주택시장 전반의 가격 하락까지 이어지려면 물량이 상당해야 한다. 몇 채의 급매물이 전체의 시세를 끌어 내리기는 어렵다. ‘갭투자’가 최근 몇 년간 집값 상승의 원인 가운데 하나지만, 그 물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지난 4년간 은행의 부동산 관련 대출이 고신용자 중심으로 늘었다는 점에서 전세보증금 반환이 어려워 집을 파는 경우가 아주 많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조사에 착수한 만큼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최근 2년새 전국 대부분 전세보증금 올라
전세는 보통 2년 만에 갱신된다. 최근 2년새 전세 보증금이 얼마나 떨어졌느냐가 중요하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최근 2년(2017년 1월~2019년 1월)간 중위전세가격은 지방이 1억 1683만 원에서 1억 1270만 원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수도권은 2억 1256만 원에서 2억 4818만 원으로 오히려 올랐다. 서울은 2억 7732만 원에서 3억 3594만 원으로 치솟았다. 서울 강남4구는 4억 1172만 원에서 4억 8422만 원으로 변동폭이 7000만 원을 넘었다.
# 울산 등 하락지역 낙폭 미미
최근 2년새 중위전세가격이 떨어진 곳은 경기 동부 일대와 울산, 경북, 경남 정도다. 낙폭이 가장 큰 곳은 울산으로 833만 원가량이며 4곳 모두 1000만 원 미만이다. 물론 특정지역이나 주택형태에 따라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중위가격 기준으로 이 정도 낙폭이라면 이른바 ‘대란’을 예감하기에는 다소 이르다. 공인중개사 수수료와 이사에 드는 각종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집주인과 세입자가 타협할 여지도 있다.
# 서울, 수요도 늘고, 공급도 늘고
관건은 최근 진행 중인 전세가격 하락이 얼마나 계속될지, 낙폭은 얼마나 깊을지다. 전세가격 하락이 지속되고 낙폭도 깊어진다면 깡통전세는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집계를 보면 지난 1월 서울의 아파트 매매량은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전·월세 거래량은 1만 7785건으로, 집계가 시작된 2011년 이후 1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서울의 아파트를 사려던 수요자들이 집값 추가 하락을 기대하며 매매에 나서지 않고 전세시장으로 몰리며 전세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 아파트 시장에 투자 수요가 많이 유입되면서 기존 주택 보유자들이 상당수 집을 샀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등 대규모 입주단지도 많았다. 모두 전·월세 공급 증가 요인이다. 수요가 늘었음에도 공급도 많아 올 들어 2월 4일까지 서울의 전·월세 시세는 0.81% 하락했다.
올해와 내년에도 서울과 수도권 입주량이 많아 전세가격이 오르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동시에 대출 등 규제로 매매 수요도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 매수 심리가 되살아 나기 전까지 전·월세 수요가 꾸준할 수 있다.
# 지방, 공급 늘어도 수요가 부족
지방은 문제다. 울산 등 현지의 주력산업이 어려워진 곳들이 중심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처럼 탄탄한 수요기반이 없다. 규제는 덜하지만 지역경제 침체로 매수 심리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전세가격의 추가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 방치한다면 ‘집값 급락→대출부실→금융권 타격’의 악순환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년이 총선이다. 집주인에 대한 전세보증금 부족분 금융지원 등 정부 대책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매물로 나온 집을 정부와 지자체가 매입해 공공임대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내놓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