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자전거왕’이라고 불린 일제강점기 시절 실존인물 엄복동을 다룬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스틸컷. 사진=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일전’을 다루는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단순한 공식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절대 악인 일본에 맞선 조선과 여기서 발생하는 애국의 카타르시스, 이른바 ‘국뽕(애국심+마약)’의 이야기다. 실제 사실과 국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영화적 재미와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 이 시대를 다루는 제작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두 영화 가운데 ‘자전차왕 엄복동’은 시놉시스로 판단한다면 “전형적인 국뽕 영화가 될 것”이란 우려가 따랐다. 이는 애초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실존인물 엄복동의 업적 탓이자 덕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의 스포츠 스타로 꼽히는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열린 자전거 경기 대회에서 일본 최고의 자전거 선수를 제칠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의 한을 풀어줬던 그는 가히 ‘동양 자전거왕’이라 불릴 만했다.
특히 이 영화는 일본이 조선인들의 사기를 누르기 위해 자국의 전문 선수를 파견했다가 도리어 엄복동에게 참패했던 실제 자전거 대회를 다룬다. 일제강점기판 스포츠 한일전인 셈이다.
영화 ‘군함도’는 천만 배우 황정민과 톱스타 송중기, 소지섭 등의 호화캐스팅으로도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면서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2010년대 개봉했던 대부분의 일제강점기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곤 하지만, 오락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은 처참한 실패를 맛본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2017년 영화 ‘군함도’의 처참한 실패는 단순히 ‘일본을 까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국내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기기도 했다. 애국과 블록버스터 액션이 만나 이도 저도 아닌 역사왜곡 오락 영화가 돼 버렸다는 게 당시 비판의 주된 내용이었다.
심지어 당시 류승완 감독이 영화에 대해 “군함도를 알리기 위해 찍은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군함도 이미지를 보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안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가 나를 자극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예민한 주제를 다루면서 너무 가벼운 의도로 접근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결국 267억 원이란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1000만 관객을 예상했던 이 영화는 659만 명이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자전차왕 엄복동’과 같은 날 개봉하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경우는 전형적인 역사 드라마 장르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높은 비중의 액션이나 로맨스가 가미되지 않은 사극 단일 장르는 스토리의 높낮이가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편견이 지난해 ‘말모이’를 통해 깨졌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역사를 담담히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흥행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만 실제 역사를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잘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는 남는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귀향’의 경우는 좋은 의도와는 별개로 자극적인 연출과 감정적인 스토리 강조로 다소 낮은 평가를 받았던 바 있다.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고, 일각에서는 실제 역사와는 다른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덧붙여졌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제작진의 스토리텔링 방향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드라마든 영화든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것은 굉장히 민감한 일이고 철저한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특히 역사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가 여부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설정을 가감했다’는 해명이 전혀 먹히지 않을 정도로 대중들이 강하게 따지는 부분”이라며 “굳이 ‘이랬다면 어땠을까’를 보여주고 싶다면 판타지라는 점을 알려야 하는데, 일제강점기 판타지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대중들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27일 개봉하는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고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감옥 수감 1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이어 “특히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오락 영화가 열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슴 아픈 시대를 오락용으로 가볍게 다뤘다거나, 실제 사실 관계를 적극 왜곡했다거나 하는 비난이 역사 드라마 장르보다 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애국마케팅과 영화적 상상력, 실제 사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상업적 오락 영화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비판이든 비난이든 어느 것으로부터도 자유롭기 어려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