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솔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사람은 이 고문의 삼남인 조동길 한솔홀딩스 회장이다. 조 회장은 한솔그룹 지주회사 한솔홀딩스 지분 8.93%를 가진 최대주주다. 이 고문의 장남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은 한솔홀딩스 지분은 없지만 한솔케미칼 지분 14.4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차남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은 현재 그룹 경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고, 보유한 계열사 지분도 없다. 조동만 전 부회장은 2000년대 초반 한솔텔레콤 등 한솔그룹의 정보통신(IT) 사업을 담당했지만 2000년 한솔그룹이 PCS(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개인이동통신) 사업을 철수하면서 조 전 부회장도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뗐다.
한솔그룹 본사가 위치한 파인애비뉴빌딩. 사진=한솔그룹 홈페이지
재계 일부에서는 한솔그룹의 계열 분리를 점치고 있다. 조동혁 회장이 한솔케미칼과 그 자회사 한솔씨앤피, 테이팩스, 삼영순화 등을 분리해 독자 경영에 나서는 시나리오다. 그렇지만 이인희 고문 별세 후 아직까지 한솔그룹 내부에서 계열 분리와 관련해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다. 한솔그룹 관계자도 “계열 분리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조동혁 회장의 장녀 조연주 씨가 한솔케미칼 부사장으로 근무 중이고, 조동길 회장의 장남 조성민 씨는 한솔홀딩스 과장으로 각각 아버지의 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같은 한솔그룹 계열사지만 한솔케미칼은 사실상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한솔케미칼과 한솔홀딩스의 지분 상 연결 고리는 한솔케미칼의 한솔홀딩스 보유 지분 3.83%와 한솔개발(한솔홀딩스 91.43% 소유, 한솔케미칼 0.85% 소유)뿐이다. 한솔개발도 한솔홀딩스가 지분 대부분을 갖고 있어 사실상 조동길 회장 관리 하에 있는 회사다. 계열 분리가 없더라도 조동길 회장과 조동혁 회장의 영역은 확실하게 분리돼 있다.
이인희 고문이 별세하면서 그가 보유한 한솔홀딩스 지분 5.54%도 주목 받는다. 최근 한솔홀딩스의 주가는 4800~5000원 수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한솔홀딩스 지분 5.54%는 123억~129억 원 수준이다. 현행 상속세율로 계산하면 약 60억 원의 상속세가 예상된다.
상속 대상자는 한솔그룹을 이끄는 조동길 회장이 유력하지만 계열 분리 없이 형제 경영을 이끈다면 장남인 조동혁 회장이 될 수도 있다. 이 고문의 지분과 한솔케미칼의 한솔홀딩스 지분을 합치면 총 9.37%로 조동길 회장(8.93%)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갖게 된다. 한솔그룹 관계자는 지분 상속과 관련해 “내부에 알려진 게 없어 특별히 아는 바가 없다”고 전했다.
다만 조동혁 회장의 한솔케미칼 경영권이 견고하지 않아 한솔홀딩스에 신경 쓸 여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동혁 회장 및 특수관계자가 가진 한솔케미칼 지분은 15% 수준으로 높은 편은 아니다. 실제 2015년 8월 KB자산운용이 한솔케미칼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는 등 경영권에 대한 위협도 적지 않았다.
이후 KB자산운용은 한솔케미칼 지분을 매각해 현재는 7.06%만 갖고 있다. 이밖에 한솔케미칼 지분 7.40%를 가진 베어링자산운용과 5.17%를 가진 한화자산운용도 조동혁 회장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일 수 있다. 조동혁 회장이 무리하게 상속세를 내고 이인희 고문의 지분을 상속받기 보다는 한솔케미칼의 경영권 확보가 더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러 상황과 한솔그룹 측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계열 분리 여부를 떠나 조동길 회장이 앞으로도 한솔그룹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반 한솔그룹은 재계서열 10위권을 유지했지만 현재는 60위권에 머물고 있다. 한솔홀딩스는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지난해 11월 해외계열사인 한솔덴마크와 독일 R+S그룹 지분을 296억 원에 처분하는 등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조동길 회장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