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한 사찰부지 인근 토지를 둘러싼 부동산 사기사건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지는 네이버 항공 뷰.
기획부동산 H 사는 2009년 남양주 개발 호재를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전필지 배산임수형 남향, 뛰어난 북한강 조망, 한국토지신탁에 신탁등기돼 안전성 확보, 법무사 및 변호사가 책임분할등기 보증서 발급’ 등의 광고가 각종 언론에 보도됐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신문광고 등을 보고 H 사로부터 땅을 분양받았다. 쪼개기 땅매매는 하나의 필지를 여러 명이 소유하는 형식으로 기획부동산의 주요 판매 상품이다. 피해자들은 땅을 구매할 당시 부동산 직원이 함께 땅을 둘러보고 ‘D7’과 같은 방식으로 각자 땅 위치를 설명 받았다. 심지어 부동산에서는 구역별로 분필등기를 해주는 등 각자 소유한 땅의 위치를 확실히 해 줬다. 이 때문에 더욱 안심했다.
최근 남양주의 대대적인 그린벨트 해제로 개발을 꿈꾸던 사람들은 자신의 땅을 찾아보고 기겁했다. 평지에 있던 본인 소유의 땅이 산비탈에 올라가 있고, 요지 땅을 누군가 가로챘다는 것. 2009년 땅을 구매하고 해당 부지의 그린벨트가 해제돼 2015년 땅을 측량하러 나선 토지주들은 ‘측량이 이상하다. 측량할 수 없다’는 업체의 통보를 받았다. 사건의 시작이다. 자신의 땅은 주인이 인근 사찰의 주지스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산 입구 요지에 자리 잡은 피해자들의 땅은 야산 맹지로 등기상 위치가 옮겨졌다.
피해자 100여 명은 집단으로 농성을 벌이고 해당 사찰을 찾아가는 등 해결책을 모색했다.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문제의 부지에는 사찰의 조경이 꾸며지고 신식 사찰건물이 들어섰다. 피해자들은 땅을 되찾기 위한 소송에 돌입했다.
주지스님 손 아무개 씨는 2009년 7월 29일 H 사로부터 부동산 매매 계약을 맺었다. 이미 분양된 부지에 대한 매매 계약이었다. 손 씨는 11월 20일 H 사 등 토지공유자 125명이 자신에게 토지 일부를 매도했다며 ‘매매에 의한 토지분할 신청’ 서류를 남양주시에 제출했다. 손 씨가 제출한 신청서에는 ‘제출인연명부’가 첨부됐다. 명부에는 토지공유자 125명의 도장이 찍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피해자들의 땅이 산 위쪽 맹지로 옮아가고, 스님 손 씨는 요지 땅을 차지하게 됐다.
계약이 이뤄진 과정에서 수상한 정황이 속속 포착됐다. 토지를 판매한 공유자들의 도장이 같은 유형의 막도장인 것. 한 피해자는 “내 인감을 준 적 없으며 동의한 바도 없는데 저런 서류가 꾸며졌다”고 토로했다. 당시 제출된 제출인연명부가 제출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날인된 날조서류라는 것. 남양주시는 통상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인감증명서도 없이 해당 서류를 처리해줬다.
2009년 작성된 최초의 계약서에서는 매도인 이름조차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더군다나 특약사항에는 당시 존재하지도 않던 도면을 첨부한다는 내용이 기재돼있다. 도면 작성 용역은 부동산매매계약이 이뤄지기 하루 전인 2009년 7월 28일 이뤄졌고 도면 최종 납품도 한참 뒤에나 이뤄졌다.
해당 남양주 부동산 사업은 시행사의 주도 아래 정 아무개 법무사가 책임등기 및 자금관리를 맡고, 개별필지 분할은 L 법무법인에서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피해자들은 사기증여 피해도 입었다. 한 피해자는 L 법무법인으로부터 등기를 위해 인감과 등기비용 100만 원을 요구받았다. 자신의 땅 등기를 위해 제공된 인감과 비용은 스님에게 땅을 증여하는 용도로 왜곡돼 사용됐다.
피해자들의 원망은 자신의 땅을 소유한 스님에게로 향했다.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스님은 자신이 매매하려고 하는 땅이 이미 팔린 땅이란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신문 당시 스님은 “(절 부지가) 분양되고 있는 것을 보고 시행사 대표에게 당장 땅을 넘기라고 했고, 시행사 대표에게 일단 문서상으로라도 정리해 달라고 해 매매계약서를 썼다”며 “시행사 대표는 내가 매입하려는 절 부지 12개가 이미 분양됐지만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 책임지고 땅을 넘겨주겠다고 해 이를 믿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이미 검찰 조사를 통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이라며 “나 역시도 매입한 땅을 등기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라고 설명했다.
소송 끝에 기획부동산 대표는 현재 구속 상태다. 하지만 2009년 말경 부동산 회사 대표가 바뀌며 사업을 담당했던 당사자들은 죄를 피했다. 새로 바뀐 이 아무개 대표만 업무상배임 등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이 대표의 변호인은 “이중매매가 이뤄진 이후에 취임한 이 대표는 이번 사업에 개입하지 않았다”며 “남양주시에 대해서도 의혹이 남는다. 막도장으로 부동산 매매 및 토지분할을 해 주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17년 사실확인서를 작성했다. 사실확인서에는 “필지분할 과정에 제출된 인장과 서류는 당사자 동의 없이 날조된 것이며, 이를 날조해 필지를 분할하고 등기한 것은 법무사 정 씨가 담당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정 씨 측에 이와 관련한 질의를 남겼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투자금 300억 원이 어디로 갔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또 최종적으로 이익을 얻은 스님으로부터 자신들이 소유했던 본래의 땅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피해자들은 박민표 전 동부지검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한 피해자는 “돈을 달라는 게 아니다. 내 땅을 되찾고 싶다”고 토로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