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조민호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15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조민호 감독은 “만 17살의 소녀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고문이 가해질 거란 걸 알면서도 어떻게 이런 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을) 그의 18년 인생에서 서대문감옥 투옥 후 단 1년 동안으로 축약해 보여준다면 더 효과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의 말대로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가 아닌, 그가 1919년 3‧1 운동 후 서대문감옥에 투옥되면서 이듬해 9월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기까지 1년간의 시간을 다룬다. ‘만세 운동’ 그 후 유관순의 역할에 방점을 둔 셈이다.
조 감독은 “영화 제작 전 우연하게 서대문형무소를 갔다가 그곳에서 유관순 열사의 얼굴을 보았다. 17살 소녀의 슬프지만 강렬한 저 눈빛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열사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런 의문에서 영화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고아성은 복받치는 감정을 참기 어려웠는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고아성은 “열사의 일대기가 아닌 1년이라는 감옥에서의 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해서 처음에는 겁을 많이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연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멀리에 있다고 느꼈던 유관순 열사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었다”라며 “성스럽다거나, 존경이라는 것 외에 어떤 감정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 인간으로 표현을 하는 일이 가장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재미있기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고아성은 가장 기억에 남는 씬으로 후반부의 독립선언문 낭독을 꼽았다. 그는 “그 장면을 촬영하는 날을 하루하루 카운트했다. 제가 해본 연기 중에 가장 대사가 길었고, 문어체였지만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되뇌면서 결국 외우게 됐던 것이었다”라며 “촬영 당일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왼쪽 가슴에 차고 촬영하는데 조감독님이 ‘레디’ 하자 마자 오디오 감독님이 뛰어오시면서 마이크를 오른쪽에 바꿔 끼우시더라. 제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실 정도로 제가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시대적 배경에는 필연적으로 민족 배반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도 유관순 열사와 대척점에 있는 친일파 헌병 보조원 시마다(조선명 정춘영)가 나온다.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는 영화 속에서 세 번 등장하는 열사의 고문 씬을 앞장서 주도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배역을 맡은 류경수는 “시마다라는 인물이 같은 조선인으로서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왜 이렇게까지 밖에 할 수 없었나 하는 무거운 고민을 갖고 영화에 임했다”라며 “정말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건 역시 고문 씬이었다. 연기를 하면서 심장이 너무 빨리 뛸 정도”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배우 류경수는 친일파 헌병보조원 시마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사진=박정훈 기자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독특한 점은 대부분의 씬이 흑백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컬러가 입혀지는 씬은 영화 속 현재(3‧1운동 후)가 아닌 과거(3‧1운동 당시)에 한정됐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좁은 감옥 속에서 인물들이 가진 감정이 부딪치고, 드러나는 아주 미세한 결들을 흑백으로 표현할 때 더 잘 부각될 것이라 생각했다”라며 “또 취조 장면이나 고문 장면이 컬러로 나올 경우, 그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느낌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흑백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열사에 대한 고문 씬은 우려에 비해 다소 절제되고 순화됐다. 인터넷 등에서 덧붙여진 잔인한 고문 사례 등은 적용되지 않았고, 사료를 통해 확인된 고문만을 다룬 것도 자극성을 피하고자 한 제작진의 의도로 보인다.
조 감독은 또 이 영화를 통해 여성들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자 했다는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서대문감옥 여자 옥사 8호실에서부터 시작된 2차 만세 운동 사료를 접하고, 그 안에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들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라며 “목숨을 건 싸움, 그 의식을 실천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고 유관순 열사(고아성 분)가 1919년 충남 병천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주모자로 지목된 뒤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고 서울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한 1년 동안의 일을 다룬다. 열사 외에 ‘여옥사 8호실’에서 함께 만세를 부른 25명의 ‘만세 여성’들의 면면도 주목할 만하다. 27일 개봉, 12세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