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이 2014년부터 생산한 로그는 2만 6468대를 시작으로 2015년 11만 7565대, 2016년 13만 6982대, 2017년 12만 2542대, 지난해 10만 7262대를 생산해 북미 지역으로 수출했다. 이에 2012년과 2013년 각각 15만 3891대, 12만 9638대에 머물렀던 르노삼성 부산공장 생산량은 2014년 15만 2138대, 지난해 총 21만 5809대를 생산했다. 특히 2017년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총 26만 4037대를 생산, 연간 생산 능력 27만 대(2교대 기준)에 근접한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미국서 닛산 로그가 인기를 끌며 46.4% 물량을 안겨준 덕이다.
2014년 9월 르노삼성이 닛산 로그를 부산공장에서 위탁 생산한 후 첫 수출 선적식을 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로그 없는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2012년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해 생산량 21만 5809대 중 로그 위탁 생산 물량은 10만 7262대. 이를 제하면 르노삼성이 르노삼성이란 이름으로 소화한 물량은 10만 8547대에 불과했다. 지난해 르노삼성 전체 판매량은 전년 대비 17.8% 줄었다. 로그를 제외한 생산물량 대부분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소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내 판매는 2년 연속 5개 국내 완성차 업체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1월 르노삼성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2.1% 감소했다.
업계에선 르노삼성 매각설까지 돌았던 7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선 로그를 붙잡는 게 좋지만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 있는 닛산 규슈공장에서 진행했던 로그 생산을 르노삼성 부산공장으로 위탁할 당시의 이점이 사라진 탓이다. 당시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그룹 회장은 판매량이 많아 생산이 달리는 로그를 미국 공장으로 이관하려다 부산공장에 위탁했다.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르노삼성을 활용할 경우 설비를 증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닛산의 미국 판매는 부진을 겪고 있는데다 일본 규슈공장 가동률은 낮아지고 있다.
규슈공장 인건비가 르노삼성 인건비보다 낮아진 것도 르노삼성이 로그 후속 물량을 가져가기 어렵게 하고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2012년 곤 회장이 로그 물량 배정을 밝히고 2014년 부산공장과 닛산 일본 규슈공장이 로그 물량 배정을 놓고 경합을 벌일 때만 해도 부산공장의 평균 인건비가 압도적으로 낮았지만 최근 조사에서 부산공장의 평균 인건비가 20%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연간 평균 2.7% 정도 임금을 올려왔는데 일본은 연간 평균 1%가 안 되는 규모로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르노삼성은 닛산 로그 위탁 생산 계약 종료 이후 본사인 르노그룹에서 가져올 수 있는 SUV 물량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르노삼성이 QM3·클리오 등 소형차를 그룹 내 다른 공장에서 수입·판매하는 대신 중형 SUV 등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르노삼성 내부 관계자는 “닛산 로그의 생산 계약을 할 때부터 시한은 2019년 9월까지로 했기에 연장 생산은 불가능하다”며 “2020년부터 신규 SUV 등 2종을 순차적으로 투입해 가동률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은 노조를 변수로 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르노닛산과 새 모델 연구개발(R&D), 신형 SUV 배정을 목표로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노조에서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고 나서는 바람에 르노닛산과 협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관련해 지난해 10월부터 모두 34차례, 총 128시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르노삼성은 파업이 지속되면 후속 물량 배정 협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 지난 1일 로스 모저스 르노그룹 부회장은 “파업을 멈추지 않으면 로그 후속 물량을 배정하기 어렵다”는 영상 메시지를 르노삼성에 전달하는 등 노조의 파업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노조는 “절대 임금 수준이 2017년 기준 현대차 임금 9200만 원의 85%에 불과한데다 부산공장은 생산성이 매우 높아 임금 인상 여력이 있다”며 “사측이 고정비 증가를 막기 위해 물량을 볼모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시간당 자동차 생산대수(UPH)가 66대(2017년 기준)로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자동차 1.1대를 만들 만큼 생산성이 높다. 2012년 구조조정 등 위기를 겪은 후 부품 자동공급 시스템 적용 비율도 30%에서 70%까지 높이는 등 생산성 향상에 주력했다. 2012년 UPH와 비교해 40%나 효율을 높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르노삼성 운명이 전적으로 르노그룹에 달렸다는 자조가 나온다. 르노그룹이 결정하는 물량 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르노삼성이 제2의 한국GM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자동차 산업이 변혁에 맞춰 기술 성장으로 전환하는 추세이니만큼 로노그룹이 ‘물량 배정을 통한 공장 가동률 유지’ 방식을 고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내 자동차 산업이 스스로 기반을 갖추지 못한 문제가 크다”면서 “르노삼성은 위탁 생산 계약이 끝난 후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기반이 없는데, 이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기형적 성장이 부른 결과”라고 말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또 “자동차 산업을 키우기 위해 일부 기업에 집중 지원했고 수요 독점을 유발했다”면서 “우리 자동차 산업은 변혁 순간마다 외부의 선택에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