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박은숙 기자
여권 위기론의 진원지는 PK 지역이다. 이곳은 민주당 총선 승리 방정식의 ‘알파(처음)’와 ‘오메가(끝)’다. PK만으로 여권의 총선 승리를 담보할 수 없지만, ‘동남풍’ 없이는 제1당 수성이 어렵다. 20대 총선이 이를 증명했다. 민주당의 제1당 체제로 끝난 20대 총선에서 현 여권은 호남 참패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석권·PK 선전’으로 제1당 자리에 올랐다. 실제 민주당은 당시 호남 28석 중 3석밖에 얻지 못했지만, PK에서 8석(부산 5석·경남 3석)을 건지면서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핵심축은 수도권이었다. 민주당은 20대 총선 당시 수도권(서울·경기·인천) 122석 중 82석을 건졌다. 수도권에서 70% 가까운 점유율 기록한 셈이다. PK 방어선도 총선 승리에 한몫했다.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123석)과 한국당(122석)의 의석수 차이는 단 1석에 불과했다. PK 의석수가 2012년 19대 총선 수준(부산 2석·경남 1석)에 그쳤다면, 제1당과 2당의 자리가 뒤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부산 지역 한 의원은 이와 관련해 “예상보다는 적은 의석수였지만, 낙동강 벨트 구축의 전진 기지화를 위한 첫발을 뗀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그랬다. 부산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등판한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은 낙동강 벨트 구축에 사활을 걸었다. 이는 부산 북·강서와 경남 김해을 등 낙동강 인근 9개 지역구를 말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야권세가 강한 이곳은 ‘PK의 섬’으로 불린다”고 말했다. 공업단지가 주를 이루는 낙동강 벨트는 전통적인 보수층 중심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의 2012년 18대 대선과 2017년 19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 피날레도 ‘경부선’이 장식했다. 후발주자였던 18대 대선 땐 서울·대전·대구·부산을 찍는 ‘경부선 하행선’을, 대세론을 탄 19대 대선에선 ‘경부선 상행선’을 마지막으로 선거운동을 마쳤다. 그만큼 PK는 여권 선거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다. 당 안팎에서 “내년 총선의 PK 결과가 민주정부 4∼5기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PK가 ‘이해찬발 20년 집권론’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영남권 민심 이반은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이곳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이끈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의 한 축이었다. 영남권 지지율 하락은 한때 ‘데드 크로스(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현상)’로 이어졌다. 특히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친문(친문재인) 직계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법정구속은 PK 위기론에 불을 질렀다. 드루킹 댓글 공모 의혹의 몸통 찾기는 2월 임시국회의 퇴로를 틀어막는 악수로 작용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주목할 부분은 PK조차 ‘김경수 법정구속’에 대한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월 1일 전국 성인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같은 달 4일 공개한 결과를 보면, PK에서 김 지사의 법정구속에 대해 ‘적절하다’는 의견은 53.2%에 달했다. ‘과도한 결정’이란 의견은 28.4%였다. 전체로 보면 ‘적절한 결정’ 46.3, ‘과도한 결정’ 36.4%였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응답률은 7.2%(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다.
비상이 걸린 여권은 ‘PK 사수 작전’에 돌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PK 지역을 5차례나 방문했다. 청와대 공식 일정만 ▲지난해 12월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보고회(경남 창원) ▲1월 17일 수소경제 행사(울산) ▲2월 13일 스마트시티 전략보고회(부산) 등 3차례에 달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와 올해 설 연휴에는 부산의 노모 자택과 경남 양산 사저를 각각 방문했다. 민주당도 2월 18일 올해 첫 예산정책협의회를 창원에서 개최했다.
이뿐만 아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가 백지화한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에 군불을 땠다. 앞서 1월 29일에는 ‘24조 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했다. 김경수 지사의 1호 공약인 ‘남부내륙철도(4조 7000억 원)’를 비롯해 PK에만 4개의 예타 면제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민주당 투톱인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등은 재판 불복 토크쇼까지 열면서 연일 ‘김경수 구하기’에 올인하고 있다. 이에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지율 방어용·총선 대비용으로 풀면 살고, 안 풀면 죽는다는 식의 예산”이라며 “총선용 세금 퍼붓기로 측근 밀어주기를 한다는 의혹이 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당은 ‘수도권 전패론’에 휩싸였다. 서울·경기·인천은 보수 정당의 ‘아킬레스건’이다. 수도권 지역은 영·호남과는 달리, ‘스윙보터(정책과 이슈 등에 따라 지지를 달리하는 계층)’가 상대적으로 많다. 40대와 무당파 등과 함께 부동층을 이룬다. 한국당이 역대 총선마다 수도권에서 고전한 이유다. 한국당은 지난 총선 때 122석 가운데 35석(서울 12석·인천 4석·경기 19석)을 얻는 데 그쳤다. 152석으로 제1당을 차지하던 19대 총선에서도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은 ‘수도권 싸움’에선 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에 참패했다. 최종 스코어는 ‘43석(서울 16석·경기 21석·인천 6석) vs 65석(서울 30석·경기 29석·인천 6석)’이었다.
이번에는 ‘우경화 바람’까지 덮쳤다. 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에 동조하면서 당 안팎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김병준 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민주당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며 연일 공세를 취하고 있다. ‘박근혜 석방설’을 주장하는 태극기부대 8000여 명은 5·18 망언 논란의 중심에 선 김진태 의원 지지를 위해 한국당에 입당했다. 전대 초반 ‘박근혜 옥중정치’ 논란에 휘말린 한국당이 전체 선거인단(37만 8000여 명)의 2%에 불과한 태극기부대에 점령당한 셈이다.
전대 이후도 문제다. 현재 대세론을 탄 후보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다. 박심(박근혜 전 대통령 의중) 논란으로 대구·경북(TK) 표심 분산이 불가피하지만, 친박(친박근혜) 지지를 업고 출마한 만큼 이변이 없는 한 한국당 당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수도권 특성상 ‘황교안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그는 ‘친박 프레임’에서 단 한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전대 중후반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법률적으로 부당하다”고 밝히면서 친박 꼬리표를 떼는 데 실패했다. 비박(비박근혜)계 한 관계자는 “황 전 총리가 한국당 당 대표가 되면, 총선은 필패”라며 “총선용 인재영입 등 당 외연을 확장할 수 있겠느냐”라고 비판했다.
진보진영도 칼날을 갈고 있다. 한 관계자는 “민주당도 정의당도 한국당 전대 국면에선 황 전 총리에 대한 비판 수위를 조절하고 있지만 황교안 호가 출범하는 순간, ‘제2의 반기문’ 사태가 발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9대 대선 당시 진보진영의 흔들기를 끝내 버티지 못하고 조기 낙마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만에 하나 황 전 총리가 당권을 잡을 경우 2월 28일부터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논객으로 활동 중인 정두언 전 의원은 “황 전 총리가 당권을 잡으면 당은 찌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한 당직자는 “황교안 체제가 초반부터 흔들릴 경우 분당 사태가 발발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당 지지도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한국당의 우경화 논란은 당에 큰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지상 언론인
민주당은 아쉬울 게 없다고라? 손금주·이용호 ‘입당문’ 좁아진 까닭 “순혈주의를 어찌할꼬….” 무소속 손금주 의원(전남 나주·화순)과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임실·순창)의 더불어민주당 입당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두 의원에 대한 당내 반발 기류가 여전한 데다, 포스트 설 민심에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복당의 문이 한층 좁아졌다. 특히 자유한국당 3인방(김진태·김순례·이종명)의 5·18 민주화운동 모독 논란은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민주당 입당을 사실상 틀어막는 굴레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당 3인방의 5·18 민주화운동 모독 파문이 민주당의 정국 주도권 확보로 이어지면서 두 의원의 필요성이 한층 낮아졌다. 민주당 한 의원은 “당 (산하) 당원자격심사위원회가 두 의원에 대한 복당을 불허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논의하겠느냐”고 잘라 말했다. 야권의 호남 의원도 “민주당 지지도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민주당이 이들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민주당의 위기와 두 의원의 입당 여부는 반비례 관계인 셈이다. 실제 정치권 안팎에선 당·청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이른바 ‘손혜원 목포 투기’ 의혹 폭로 시점이 앞당겨졌을 경우 두 의원의 민주당 입당은 한층 수월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들이 민주당에 복당 신청을 한 것은 지난해 12월 28일이다. 당 당원자격심사위가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복당을 불허한 것은 올해 1월 13일이다. 민주당을 탈당한 손 의원의 ‘목포 투기’ 의혹이 처음 보도된 것은 이틀 뒤인 1월 15일이다. 간발의 차이로 이들의 복당 문은 열리지 않았다. 향후 전망도 어둡다. 이들의 복당 신청은 중앙당과 충분한 교감 하에 이뤄졌다. 여소야대 탓에 한 석이 아쉬운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애초 이들의 복당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두 의원의 지역구가 20대 총선에서 참패한 전남이라는 것도 복당의 추를 기울게 했다. 이들은 복당 기자회견 전날에도 홍 원내대표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020년 총선까지는 변화 없이 그대로 갈 것”이라며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선을 그었다. 친문(친문재인) 직계의 반발을 비롯해 신정훈 나주·화순 지역위원장 등과 당원들의 극한 반발도 이 대표가 복당 불허를 선택하는 데 한몫했다. 2월 27∼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 개각, 4·3 재보선 등 정치적 빅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입당 여부는 후순위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호남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도가 높은 상황에서 당내 분란을 일으키면서 두 의원을 받을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