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프레스센터 전광판. 최준필 기자
# 트럼프-김정은 예상 뛰어넘는 ‘빅딜’ 이뤄낼까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국제사회, 특히 미국 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실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런 부분을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은 제재를 약화시키고, 무기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할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을 이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NYT)는 “1차 정상회담 후 북한은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약속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만남 전부터 회의론이 파다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를 풀어주고 싶지만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선행 조치를 요구하는 동시에 장기전을 언급한 것으로 읽힌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에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무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잭 리드 의원은 “북한은 그들의 핵 장소와 핵 물질, 핵 시설 등에 대해 밝힌 것이 없다. 무엇인가 구체적인 결과가 도출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하노이 현지에선 양측 최고 지도자가 직접 만나는 만큼 1차 정상회담보다 한층 진전된 내용을 발표할 것이란 기류도 감지된다. 정상회담 의제 합의를 위해 하노이에서 만난 양측 특별대표 비건과 김혁철을 취재하고 있는 한 언론인은 2월 21일 “긍정적인 얘기들이 속도감 있게 오가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이 적극적이라고 들었다. 트럼프의 선물 보따리를 기대해도 좋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전했다. 북핵 프로세스와 관련해 안팎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는 트럼프와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는 김정은 위원장 간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이행을 약속하고,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경제 완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빅딜’이 성사될 때 가능한 그림이다. 하지만 미국 측이 ‘선 비핵화 후 보상’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미국의 전향적인 양보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쉽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대신, 현지에선 ‘단계적-동시적 접근’ 방법이 거론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이라도 개별 이행 사항에 대한 맞춤형 보상을 미국이 제공한다는 게 그 골자다.
# 노벨평화상 공동수상? 정상회담 앞두고 나온 설설설
2차 정상회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흥미로운 뉴스들이 연일 국제사회를 달궜다. 우선 김 위원장은 반대파 숙청설에 휩싸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월 19일 북한 인권 단체인 북한전략센터 보고서를 인용, “김 위원장이 미국과 한국에 대한 외교에 반대하는 인사를 추방, 수감하거나 처형했다. 숙청당한 인사는 50~70명으로 이 과정에 이들의 재산도 압류됐다”고 보도했다. 회담을 불과 일주일가량 남긴 시점에서 나온 기사라 그 배경을 두고 수많은 억측이 오갔다. 국내 정보 당국자는 “보도 내용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귀띔했다.
두 정상이 정상회담을 발판으로 노벨평화상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화제를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15일 백악관에서 연설을 하다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신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줬다고 공개했다. 아베 총리도 이를 시인했다. 여러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아베에게 전화를 걸어 “6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날아간 적이 있느냐”며 노벨상 추천을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선거 유세 집회에서도 청중들이 노벨평화상을 뜻하는 ‘노벨’을 외치자 미소를 지으며 청중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기도 했다.
북한에서도 김 위원장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을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서 노벨평화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평양의 한 소식통은 “노벨평화상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싱가포르 회담 직후인) 지난해 6월 말부터”라면서 “당국이 배포한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에 노벨평화상에 대한 선전이 담겨 있었고, 수상 대상으로 김 위원장을 지목했다”고 전했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도 “배포한 강연 자료에 따르면 ‘세계가 김 위원장을 노벨평화상 수상 대상자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선전하고 있다”고 했다.
# 정상회담 결과, 국내 정재계에 어떤 영향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국내 정치권과 재계에도 적잖은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점쳐진다. 우선 정치권에선 여야 온도차가 확연히 감지된다. 여권에선 반색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회담 결과가 좋을수록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이 김정은 답방으로까지 이어지길 기대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과 당 지지세가 좀처럼 반등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만난 대형 이슈를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여권의 총선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반대로 성과가 나지 않을 경우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떨떠름한 반응 속에 부정적 전망이 주를 이룬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미국과 북한은 각자 이득 챙기고, 우리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도 모자라서 돈까지 써야 되는 이런 상황이 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황교안 전 총리도 “국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아우성인데 북한에 돈 퍼줄 궁리만 하고 있다.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경협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힌 것을 공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이런 문제에 있어선 적어도 초당적 협력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고개를 든다.
재계는 ‘신중 모드’다. 문 대통령이 적극적인 경협 의지를 밝히긴 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회담 결과에 따라서 경협 논의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경협’에 대해서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왔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나더라도 남과 북은 또 경협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경협을 둘러싼 남북의 줄다리기는 여러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 역시 ‘당분간 지켜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협 수혜 분야로 꼽히는 에너지 업체의 한 임원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현대그룹처럼 잘 되다가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대승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고 할지라도 기업 입장에선 신중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이 달라지는 것도 기업으로선 부담이다. 괜히 친정권 기업이라는 소문이 났다가 나중에 보복이라도 당할까 걱정이다. 이래저래 대북 사업은 될 수 있으면 시간을 두고 관망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라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