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에셋의 허위정보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홈페이지 캡처.
엄일석 대표는 호남의 신흥 기업인으로 급부상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 투자의 귀재’가 엄 대표 이름 뒤에 따라 붙은 수식어다. 엄 대표는 비상장주식 투자회사, 엔터테인먼트, 크라우드펀딩, 항공사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항공사 대표라는 직함은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피해자들은 ‘항공업까지 하는 회사라 신뢰가 갔다’고 입을 모았다. 엄 대표의 저서와 주식방송 출연 등은 그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엄 대표의 사업 수완은 남달랐다. 엄 대표는 과거 다단계 판매조직을 통해 알로애(愛)주를 팔던 업체 ‘청강월’을 이끌었다. 호남의 지역주류란 점은 마케팅 효과로 이어졌고, 알로애주 매출도 증가했다. 엄 대표는 5단계의 직급구조로 판매조직을 꾸리고 실적에 따라 다양한 보너스를 지급했다. 하지만 등록을 하지 않고 다단계 사업을 전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이밖에도 엄 대표는 다수의 사기 전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청강월 이후 엄 대표는 필립에셋으로 재기했다. 반드시 일어난다는 ‘필립(必立)’, 뜻 그대로 성장세는 눈부셨다. 다단계 조직망을 활용해 수백억 원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필립에셋은 비상장주식을 다루며 ‘상장 정보’를 미끼로 삼았다. 조만간 상장이 될 거라는 내용을 토대로 투자자들을 포섭했다.
조직은 크게 매니저-팀장-이사-국장-본부장의 직책으로 구성됐다. 매출에 따라 직급이 올라가는 체계다. 주식 판매가 이뤄질 때마다 수수료와 성과급 등으로 돈을 버는 구조라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망은 계속해서 넓어졌다.
한 피해자는 “고등학교 선배가 딜러를 해서 주식을 소개 받았다. 7개 종목 상장정보를 믿었지만 실제로 1개만 상장됐고 그마저도 비싸게 구매해 상장 후에도 도리어 값이 떨어졌다”며 “이밖에도 딜러들이 코인을 팔아 1000만 원어치 샀다”고 말했다.
엄 대표는 비상장기업의 주식을 추천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헐값에 주식을 매입해 허위정보를 유포한 뒤 투자자에게 비싸게 되팔기도 했다. 이렇게 올린 수익만 해도 20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사기 당했다’고 호소하지만 투자의 경우 손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피해를 구제받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필립에셋 관계자들이 영업에 활용한 비상장회사의 ‘기업검토서’에서 허위 날조된 사실이 여럿 발견됐다.
한 제약사 주식의 경우 상장이 예상된다며 투자를 권유했다. 필립에셋이 작성해 유포한 기업검토서에는 상장주관사까지 선정돼 있다. 바이오종목인 데다 상장예정인 Y 제약 주식은 고가에 팔렸다. 하지만 얼마 뒤 Y 사는 홈페이지에 “최근 회사와 관련한 루머가 있다. 우리는 상장을 위한 어떤 절차나 협의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공지했다. 뿐만 아니라 상장주관사로 선정됐다는 증권사 관계자는 “Y 사 상장과 관련해 어떤 협의과정도 없었는데 주관사로 회사명이 기재돼 놀랐다”고 말했다.
허위사실은 엄 대표의 경력에서도 발견됐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는 학력은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국제항공운송사업 신청을 하겠다던 에어필립의 포부 역시 기업 규모를 과장하기 위한 홍보용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어필립은 국제선 취항을 목표로 경력직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파격적인 임금과 조건을 내세웠다. 에어필립은 최근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결국 엄 대표는 투자자에게 비상장주를 비싸게 팔고, 수수료를 챙김으로서 실질적 수익을 거뒀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당초 비상장주는 투자기회가 많지 않고 상장 정보를 일반인이 알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100가지 중 하나의 사실만 허위여도 투자 사기”라고 설명했다.
결국 엄 대표는 장외주식 시장에서 허위정보로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등)로 구속됐다. 그럼에도 딜러로 활동하며 투자자를 속여 이득을 올린 매니저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간판만 바꿔달고 투자자 유치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의 피해자는 “영업조직에서 직접 투자자들에게 허위정보를 흘린 딜러들도 처벌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