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는 지분 31.6%를 보유한 지주회사 현대중공업지주다. 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 25.8%를,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지분 5.10%를 갖고 있다. 2017년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겠다는 명목으로 지주회사를 설립한 결과다. 이때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오일뱅크 등 수익성 좋은 회사의 주식과 자기주식을 현대중공업지주에 전부 편입했다. 제조업 기반인 현대중공업의 현금수종사업으로 불리는 현대글로벌서비스도 현대중공업에서 분리돼 지주사에 편입됐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연합뉴스
재계 관계자들은 현대중공업의 선박 A/S 사업부였다가 100% 자회사로 설립된 현대글로벌서비스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제조업에서 A/S 사업부는 현금이 도는 핵심 사업부”라면서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지주에 편입되면서 정몽준 이사장 등 최대주주에 최대 이익을 안겨줬고 대우조선 인수는 A/S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최종 인수할 경우 현대중공업의 조선·해양 사업 부문 연결 매출액은 1.8배로 늘어난다. 대우조선 A/S 사업부를 현대글로벌서비스에 통합할 경우 총수 일가가 챙길 수 있는 재원도 1.8배가량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A/S 부문 통합 이후 현대힘스 등 조선기자재 공급 회사를 현대중공업지주의 직접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기자재 공급을 현대힘스로 통합해 대우조선 물량까지 조달하면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의 이익으로 귀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통합이 조선업 생태계에는 긍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빅3 중심이던 국내 조선산업이 ‘슈퍼 빅1’으로 재편되면 대형 조선소 쏠림 현상이 더욱 커지고 산업 기반 자체가 약화할 수밖에 없는 우려가 나온다. 안재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은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원·하청의 수직 구조로 향후 조선사가 납품가 인하를 요구하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기자재 등 생태계는 망하고 현대중공업 지배구조만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수주잔량 합계는 세계 3위인 일본 이마바리 조선소 수주잔량의 3배가 넘는다. 특히 최근 3년간 국내 수주량 기준 시장점유율은 현대중공업그룹이 57%, 대우조선이 23%로, 둘을 합하면 80%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안는다면 독점적 수익은 물론 조선기자재 업체에 압도적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허민영 경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주주 이익 중심으로 기업 경영을 집중하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조선산업 독점력을 얻으면 장기적으로 국내 조선산업이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에 투입한 국민혈세의 수혜를 현대중공업그룹 총수 일가가 얻는다는 점이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을 물적분할해 조선합작법인을 만들고, 대우조선 지분을 현물출자해 산업은행이 조선합작법인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매각을 진행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에 1조 2500억 원 상당의 전환상환우선주와 약 8200억 원의 보통주만 넘겨주면 된다. 2015년 4조 2000억 원을 시작으로 영구채 발행, 출자전환 등을 통해 총 13조 원가량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를 현대중공업은 2조 원에 인수하는 것이다.
특히 대우조선 주식 현물출자 확정가액은 2016년 작성된 경영정상화 방안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영정상화 방안은 대우조선의 부실 정리를 위해 매출과 수익 추정을 보수적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3분기 경영정상화 방안에서 추정한 대우조선 영업이익은 875억 원에 불과했지만, 실제로는 705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실제 실적과 차이가 큰데도 보수적 추정치에 입각해 매각가를 산정한 것이다. 송덕용 회계법인 공감 회계사는 “국민 세금으로 대우조선 부실을 정리하고 그에 따른 수익 효과를 현대중공업에 주고 있다”면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부실 정리에 7조 원 넘는 돈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대우조선 매각으로 당장 얻을 수 있는 현금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치권도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이 필요한 매물을 어떻게 해서라도 매각하겠다는 의지만 앞세워 매각 후 불거질 문제는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 실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인수자로 사실상 현대중공업을 낙점하고 밀실 논의를 거쳐 거래구조 등을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공적자금이 재벌 특혜로 가는 것은 분명히 막아야 한다”면서 “산업은행은 일방적인 독주를 멈추고 조선산업이 당면한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산은, 수의계약으로 현대중 입찰 제한 피했다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을 대우조선 인수자로 선정하면서 법적 제한을 피하는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매각에 속도를 내면서 현대중공업을 인수 후보자로 낙점, 수의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7조의 5에 따르면 조세포탈 세액이나 환급공제 받은 세액이 5억 원 이상인 자는 국가를 상대로 입찰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 국세청 세무조사로 불거진 304억 원 조세 포탈 혐의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대우조선의 대주주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니만큼 현대중공업은 이 소송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입찰자격이 없는 셈이다. 다만 산업은행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 경쟁 입찰의 참가자격에 대한 규정인 데 따라 매각을 수의계약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매각 공고를 내고 매각 방식을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한 것에 위배된다. 당시 한화그룹은 이번 대우조선 매각대금의 3배가 넘는 6조 3000억 원을 인수가액으로 제시했다. 배동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