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진관동 아파트 단지내. 여러 세대에 걸쳐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을 둘러싼 은평구청과 은평구 주민들의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 과정에서 “은평구청이 일방적으로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 반대 현수막 철거를 지시했다”는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은평구청과 진관동 주민들은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을 두고 깊은 갈등을 겪어 왔다. “은평·서대문·마포 등 3개 구 협의에 따라 재활용 처리시설을 건립하겠다”는 은평구청과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 악취로 생활권 내 막대한 환경오염이 우려된다”는 진관동 주민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진관동 주민들은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백지화 투쟁위원회(이하 은백투)’를 구성해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은백투는 진관동 주민들에게 ‘은평구 쓰레기장 건립 반대’ 현수막을 배포하고 게시를 독려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많은 주민이 현수막 게시에 동참했다. 실제 은평뉴타운 내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 동의 없는 광역쓰레기장 결사반대’란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의 발단은 은평뉴타운 단지내 여러 세대에 걸쳐 걸려 있는 현수막이었다. 2018년 12월 24일 은평구청 도시경관과는 은평뉴타운 단지별 관리사무소장과 입주자 대표회장들에게 공문을 한 건 발송했다. 제목은 ‘공동주택 단지내 법규위반 현수막에 대한 자진정비 사전 안내’였다.
2018년 12월 은평구청이 진관동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장, 입주자 대표들에게 발송한 공문. 사진=일요신문
“법규 위반 현수막 게첨(게시·첨부)으로 인해 많은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강풍 등 기상 변화 시 지역 주민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이를 예방하고자 법규위반 현수막을 1월 23일까지 자진 정비하길 바란다. 향후 현수막을 다시 게시할 경우 관련법규에 따라 행정조치를 이행할 것이다. 공동주택 단지내 해당 현수막은 법규위반 현수막으로 게첨을 원칙적으로 금한다.” 공문의 내용이다.
이 공문을 수신한 진관동 일부 주민들과 은백투 측은 반발했다. 은백투 관계자 A 씨는 “공문에 해당 현수막이란 단어가 나온다. 해당 현수막이 어떤 현수막인지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은평구청이 발송한 공문이 언급한 현수막은 사실상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 반대 현수막’을 콕 짚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은평구 전체에 대한 ‘일제 정비 지시’가 아닌 진관동을 대상으로 한 정비지시인 까닭”이라고 A 씨는 덧붙였다.
A 씨는 “사실상 은평구청이 구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주민으로선 화가 많이 나는 상황”이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힘으로 일어났다. 은평구청장은 대통령과 같은 정치 성향을 공유하는 민주당 소속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김미경 은평구청장 이야기다. 그런데도 은평구가 구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일방적 공문을 발송했다. 아이러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은평구가 ‘공동주택 단지 내 법규위반 현수막에 대한 자진정비 사전 안내’ 공문을 발송한 근거는 무엇일까. 공문은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 진흥법) 제2조, 제3조, 시행령 제3조에 따라 해당 현수막은 법규위반 현수막에 해당한다”고 언급했다.
옥외광고물 진흥법 제3조는 ‘도시지역 지역·장소 및 물건에 광고물 또는 게시시설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광고물들을 표시하거나 설치하려는 자는 자치구의 구청장에게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련 근거를 살펴보면, 은평구청 측은 은평뉴타운 내 ‘구청장 허가를 받지 않은 현수막’에 대한 자진 정비(철거) 지시를 내렸다.
이와 관련해 은평구청 도시경관과 관계자는 “공문에서 언급한 ‘해당 현수막’은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 반대 의사를 밝힌 현수막’이 맞다”면서 “아파트는 일반주거지역이기 때문에 일반 현수막을 게시하면 안 된다. 법적으로 허용된 게시대에만 현수막을 걸 수 있게 돼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일부 주민들은 똑같은 법률을 근거로 ‘은평구청이 발송한 공문의 역설’을 지적했다. 진관동 주민 B 씨(57)는 “같은 법률 제2조의 2 항목을 읽어보라. 은평구청이 제시한 법적 근거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B 씨가 제시한 법적 근거는 옥외광고물 진흥법 제2조의 2 ‘적용상의 주의’ 항목이었다. 이 항목은 ‘이 법을 적용할 때에는 국민의 정치활동의 자유 및 그 밖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B 씨는 “법적 근거로만 따져본다면 ‘옥외광고물 진흥법’이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앞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거주지에 걸어 놓은 현수막까지 구청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궁금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은평자원광역순환센터 조감도. 사진=은평구청
이와 관련해 은평구청 도시경관과 관계자는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난 사안이고 법률 검토도 완료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법률 검토를 마친 사안이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 진관동 주민 대표 측에도 ‘법률 검토 결과 문제없다’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과 관련해서도 지역 주민들과 은평구청의 입장은 계속 쌍곡선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을 건립해야 하는 지자체와 해당 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갈등은 낯설지 않은 일이다. 서로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더라도, ‘소통 절차’에 따라 갈등의 결말은 달라질 수 있다. 은평구청과 은평구 주민들의 갈등 중심에서 ‘소통 절차’는 생략된 것처럼 보인다.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 추진 논란의 결론은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번 갈등으로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은평구청을 향한 ‘불신의 싹’이 트고 있다. 갈등의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날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를 향한 은평구 주민들의 ‘불신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지 모른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