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황창규 KT 회장이 2018년 4월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KT는 회사자금을 동원해 상품권을 구입한 뒤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 깡’으로 11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중 4억 4190만 원을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 사이 19대와 20대 국회의원 97명 등 모두 99명에게 각각 100만~1200만 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은 황창규 회장 지시로 사내 대관업무 부서인 CR 임원들을 중심으로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돈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도 금지되어 있다. KT는 이러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전·현직 임원들 명의로 입금하는 편법을 활용해 국회의원들에게 후원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 사건이 불거지기 훨씬 전 KT 임원 명의의 정치후원금을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해 입금된 직후 바로 반환했고, 이후 받은 정치후원금의 일부나 전액을 반환하는 의원들도 나타났다. 그러다 지난해 초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일부 또는 전액을 반환한 것으로 파악됐다.
KT는 현재 회사 공식계좌를 만들어 임원들 이름으로 의원들에게 건넨 돈을 회수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후원금을 제공한 임원 계좌로 반환하면 이 임원이 회사 공식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어느 의원이 어느 임원에게 얼마큼의 돈을 돌려줬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KT가 정치자금을 제공한 의원들에게 “돌려달라”고 독촉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KT는 국회의원들에게 제공한 돈을 돌려받는 상황임에도 ‘잡이익‘ 계정에 포함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의혹들이 불거지자 황창규 KT 회장은 지난해 4월 경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경찰청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현재 서울중앙지검이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황 회장의 소환조사 일정을 조율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KT 새노조와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일부 임원들의 배달사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임원들이 자신에게 반납된 돈을 그냥 꿀꺽한 것은 물론 뒤늦게 회사 계좌로 반환한 경우에도 ‘횡령’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황창규 회장이 회사 차원의 조사나 부정행위를 한 임원들에 대한 제재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최근 서울중앙지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반환한 돈을 일부 임원들이 횡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결제대금이 밀렸다거나 급전이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당초 KT가 조성한 자금도 회사 공금을 상품권 깡으로 마련한 불법이었다. 임원들이 금액이 많든 적든 엄연히 회사 공금을 부당하게 썼다면 횡령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약탈경제반대행동 관계자도 “검찰은 국회의원들의 자금 반환 과정과 KT 임원들의 사적인 사용 여부를 밝혀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검찰은 임원들의 2차 횡령 가능성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통해 규명하고 혐의가 드러날 경우 엄중히 처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이 제공된 시기는 KT가 여러 복잡한 현안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터라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2014년과 2015년은 소위 ‘합산규제법’ 저지, 2015년과 2016년은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합병 저지, 황창규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 문제와 K뱅크와 관련된 은행법 개정 등이 대표적인 현안이었다.
이에 대해 KT는 관계자는 “의혹은 의혹일 뿐이다. 임원들의 횡령 가능성도 없고, 구제적으로 증명된 것도 없다. 검찰 수사와 기소여부에 따라 재판에서 가려질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