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니메이션은 비바람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어찌된 영문인지 홀로 남아 파도를 넘어 바다를 건너가고자 안간힘을 쓰는 청년이 주인공이다. 그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가 어쩐지 갈피모를 열정에 시달렸던 젊은 날의 나 같기 때문이다. 거기엔 우리 젊은 날의 자화상이 있다. 자기 계획대로 뭔가를 하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비바람에 부딪쳐 계획이 틀어지고 삶이 틀어지고, 그럴 때마다 자아가 깨져나가며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나’의 생을 발견하게 된, 우리 젊은 날의 자화상이.
별 총총한 달밤, 하늘을 이불삼아 잠들 수 있는 것은 축복일 텐데, 그것을 고립이라 느끼는 남자에게 바다는 벽이다. 배를 만들어 파도치는 바다를 건너 문명의 땅에 닿는 것이 남자의 꿈이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 남자는 열심히 대나무를 베고 깎아 배를 만든다. 그런데 남자가 만든 배는 바다에 띄운 족족 난파된다. 누가 남자의 배를 부수는가? 포기를 모르는 남자의 배는 점점 커지고 점점 견고해진다. 마침내 남자는 배를 부수는 누군가에 대항하는 창까지 만든다.
배가 바다를 건너지 못하게 배를 난파한 것은 거북이었다. 붉은 거북이었다. 붉은 거북이 창을 가진 남자와 싸우다 뒤집힌다. 붉은 거북이 죽은 자리에서 거북의 껍질을 깨고 한 여인이 태어난다. 붉은 머리카락이 풍성한 한 여인이. 아, 이 장면!
작가는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여자는 바다에서 왔다고. 바다에서 바다를 건너가는 누군가가 마음에 들면 동물적 본능으로,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감추듯, 그의 배를 빼앗는다고. 그리하여 사랑은 투쟁이라고. 삶에 대한 것이나 상대에 대한 것이나 투쟁 없는 사랑은 없다고.
남자는 여자로 인해 바다를 넘어가는 꿈을 포기하고, 여자는 남자로 인해 바다를 버린다. 여자로 인해 남자가 더 이상 바다를 벽으로 여기지 않고, 남자로 인해 여자가 더 이상 바다를 그녀의 집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니,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바다를 건너려는 남자의 진짜 꿈은 바다를 누벼온 붉은 거북이었고, 여자의 진짜 꿈은 껍질을 벗는 것이었다고.
말없는 세계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꿈꾸면서 저리 아름다운데, 말의 세계에서 남자와 여자는 어찌 그리 지지고 볶으며 사는지. 혹 말을 버려야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오랜만에 여운이 긴 화면을 만났다. 그 화면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을 이고 잠들어 본 적이 있는 지.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를 건너겠다고 ‘나’만의 배를 만들어본 적은? 머리카락 풍성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본 적은? ‘나’라고 믿고 있었던 욕망의 붉은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난 적은? 섬 전체를 집어삼키는 해일을 경험해 본 적은? 모두 생의 기적이고, 생의 꿈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