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48기가 지난 1월 수료한 가운데, 변호사 취업 시장의 한파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 서초동(법조계)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취업률이 50%가 채 되지 않는 등, ‘발에 차이는 게 변호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월수입이 3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반면 판검사 출신 전관들의 시장은 요지부동이다. 퇴임한 지 3년이 지난 고위직 법조인들이 대형 로펌에 속속 합류하며 ‘전관은 끄덕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원 앞 거리에 변호사 사무실 간판들이 빼곡하다. 박은숙 기자
지난 1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법조인은 모두 117명. 로스쿨 제도 도입에 따라 사법시험 합격생 규모는 이제 100명 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연수원 성적 상위권 수료생이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러브콜을 받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성적 최우수자인 김진수 씨(대법원장상)과 차우수자(법무부장관상)인 이제하 씨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취업했고, 대한변호사협회장상(3등)을 받은 이하린 씨는 대법원 법률조사관으로 법조인의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취업률은 50%에 미치지 못했다. 수료한 법조인 중 취업에 성공한 경우는 53명(47%). 그마저도 군입대 예정인 5명을 제외한 수치다. 지난해 취업률 50.3%보다도 3%p 떨어진 수치다.
법조계는 늘어나는 변호사 수가 경기 침체와 맞물려, 취업한파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소형 로펌 대표는 “최근에는 월급을 많이 주지 않아도 근무하겠다고 하는 변호사들이 많다”면서 “전반적으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법조계 시장도 침체된 분위기다. 돈을 제대로 주고 일을 잘하는 변호사를 고용하자는 분위기이지 그냥 인건비가 덜 든다고 신입 변호사들을 많이 뽑아서 쓰자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다”고 귀띔했다.
최근 개업한 전관 출신 변호사 역시 “새로 사무실을 내면서 로스쿨 출신 신입 변호사들을 뽑았는데 의외로 일을 잘하는 데다 비용이 예상보다 적게 들어 두 번 놀랐다”며 “나는 대우를 해주자는 편이었지만,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월 300만 원을 못 받아도 일하는 변호사들이 꽤 있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 변호사 2만 5000명 시대, 기업 들어가기도 ‘경쟁’ 치열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등록 변호사는 2만 5880명에 달한다. 2015년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매년 가파르게 증가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매년 1500명 넘게 시장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 업계는 2022년에는 등록 변호사 수가 3만 명이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불황의 배경으로 로스쿨의 과대 배출이 지목되기도 하다. 실제 지난 11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집계한 2018년 기준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사건 수임건수는 1.2건에 불과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대우 역시 악화됐다.
대한변협이 7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1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반수(52.2%)가 ‘소속 변호사 10인 미만 규모의 법무법인’에서 실무수습을 하고 있다고 답했고, 보수 역시 10명 중 4명(38.7%)가량이 ‘세후 140만 원 이상 200만 원 미만’을 받는다고 답했을 정도다.
기관이나 기업들의 변호사 대우 역시 현격히 낮아졌다. 경찰청은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를 경정으로 채용하던 선발방식을 바꿨다. 경력 2년 이상 변호사에 대해서 2014년부터 경감으로 채용하고 있다.
대기업 법무팀 역시 막 수료한 변호사를 과장급 이상, 연봉 7000만~8000만 원에 대우하던 관행을 없애고 대리급으로 채용하고 있다. 채용하는 곳에 비해 쏟아져 나오는 변호사들이 많다보니 ‘변호사 자격증 우대’라는 모집요강을 보고 지원하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한 언론사 인사팀 관계자는 “과거 기자 채용 때 ‘변호사 자격증 우대’라고 되어 있어도 지원자가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중에서 기자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고, 정치권 관계자 역시 “변호사들의 지원이 적지 않다, 특히 로스쿨 출신들이 늘면서 7~8급 비서관에 지원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여전히 잘나가는 전관들 “‘억’은 우습죠.”
반면 전관들은 여전히 높은 수익을 버는 구조다. 변호사 업계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는 구조라는 얘기다. 전관 혜택이 사라진다지만, 아직 시장 수요자들에게는 어필하는 요소가 있다는 얘기다.
변호사업계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검찰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처음 2~3년 동안 수임료가 높은 것은 여전히 시장에 유효하다”며 “검찰 출신은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실수입이 2억~3억 원 이상 버는 것은 당연하고 조금 실력이라도 있을 경우 5억 원 이상도 우습다”고 설명했다.
퇴임 후 3년간 대형 로펌에 들어갈 수 없는 고위직 판검사 출신들이 여전히 대형 로펌의 러브콜을 받는 것도 여전하다. 2015년 퇴임 후 소규모 법무법인에 몸을 두고 있던 김진태 전 검찰총장은 최근 법무법인 세종 고문변호사로 갔고, 조성욱 전 대전고검장은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낸 이성보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법무법인 동인의 대표변호사로 자리를 옮겼다. 황교안 전 총리의 수임료 1억 원이 논란이 되는 것을 놓고도 “그 정도면 무난한 수임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관에 대한 시장 수요는 여전하다는 얘기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예전보다 전관에 대한 법원, 검찰의 예우는 없어진 게 맞지만, 여전히 기업들을 중심으로 원활한 소통을 원하는 수요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전관 변호사들 중 서초동에서 소문난 사람들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이다, 지난 2015년 홍만표 변호사가 욕심을 앞세워 100억 원을 벌어들였다가 구속됐지만 10억, 20억 원 정도 매출을 하는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많다”고 귀띔했다.
이를 활용하는 로펌들의 관행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10대 로펌 소속 변호사는 “나도 모르게 로펌에서 ‘피고인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B 판사와 친하다‘고 영업을 했다가 그 얘기를 피고인이 흘리고 다녀서 해당 재판부로부터 항의를 받고 사과 끝에 사임을 한 적이 있다”며 “로펌에서 그렇게 전관을 팔아가며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더라. 로펌들이 수익을 쫓는 것은 이해하지만, 전관이라고 모든 게 가능할 것처럼 영업을 하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