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랑지구’ 포스터
하지만 요즘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드는 국가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13억 명이 넘는 인구와 엄청난 ‘차이나 머니’를 바탕으로 할리우드 못지않은 스케일을 자랑하는 중국 영화 속 배경은 단연 중국이다. 그리고 그 속의 주인공들은 할리우드 영화가 그랬듯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돌고 있으며, 중국이 세계를 구한다는 세계관을 제시한다. 애국주의에 뿌리를 둔 중국판 ‘국뽕’영화라 할 만하다. 왜 이처럼 영화를 활용한 국뽕 마케팅과 전략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 흥행 기록 새로 쓰는 중국 국뽕 영화
2월 초 중국에서 개봉된 SF 영화 ‘유랑지구’(流浪地球·The Wandering Earth)는 현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제 기간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지난 17일에는 누적 매출액 37억 위안(한화 약 6160억 원)을 돌파했다. 이는 역대 중국 영화 흥행 기록 2위에 해당된다. 이런 수치에 도달하기까지 불과 2주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그 바탕에는 ‘유랑지구’는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분위기를 조성한 중국 언론의 힘이 컸다. 이 영화의 배경은 우주. SF물이 일반화된 할리우드와 달리 아직은 SF물이 생소한 중국에서 과감하게 도전했다는 측면에서 현지의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중국이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에 인민들은 열광했다. 태양의 수명이 다해가는 상황 속에서 중국인 비행사들이 세계의 전문가들을 진두지휘하며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는 우주선을 띄운다는 내용은 과거 할리우드 SF물에서 봤던 미국 중심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수부대 전랑(戰狼) 2’ 포스터
그렇다면 ‘유랑지구’보다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영화는 무엇일까? 2017년 개봉된 ‘특수부대 전랑(戰狼) 2’가 그 주인공으로, 이 영화는 아프리카 내전 속에서 중국 군인들이 민간인을 구출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국군의 정의로움과 용맹성을 강조하고 세계 평화에 앞장선다는 측면에서 전형적인 국뽕 영화라 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역시 중국군이 치밀한 작전과 남다른 전투 능력을 앞세워 내전 중인 예멘에서 중국 교민들과 현지인들을 구출해내는 영화 ‘오퍼레이션 레드씨’가 인기를 끌었다.
한때 중국은 사상으로 무장한 영화를 다수 제작했다. 영화를 보는 인민들에게 부지불식간 국가가 강조하는 사상을 주입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스케일을 키워 ‘재미’에 방점을 찍으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또한 이런 영화의 제작을 중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모양새다.
인민일보는 ‘유랑지구’에 대해 “중국의 첫 SF 대작으로 대담한 상상력과 중국다운 스토리 전개로 세계에 독특한 시각을 제시했다”고 평했고, 신화사 통신은 “만듦새가 할리우드와 맞먹는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흥행 스코어를 고려했을 때, 중국 영화 시장의 계산은 딱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다.
# 한국의 국뽕 영화는 어땠나?
충무로에도 국뽕 영화는 있었다. ‘명량’(1761만 명)을 필두로 ‘국제시장’(1426만 명), ‘인천상륙작전’(705만 명)과 ‘덕혜옹주’(559만 명) 등이 대표적인 국뽕 영화로 분류된다. ‘명량’과 ‘국제시장’은 각각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 3위를 차지했고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역시 손익분기점을 크게 뛰어넘은 것을 고려할 때, 국뽕 코드가 영화 흥행에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항거:유관순 이야기’ 포스터
반면 국뽕 영화로 분류되며 오히려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까지 폄하된다는 반박도 적지 않다. ‘명량’과 ‘국제시장’은 각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재미있는 영화 한 편으로 충분히 즐길 만하다는 평이 많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 흥행은 단순히 영화의 완성도만으로 점칠 수 없다. 사회적 분위기나 시대적 요구 등이 영화 흥행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처럼 영화는 영화 안팎의 모든 상황을 고려해 평가해야 옳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과 ‘항거:유관순 이야기’ 등이 개봉됐다. 각각 일제 강점기 민족혼을 일깨운 엄복동과 3·1운동의 선구자와 같은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그려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영화의 만듦새와 재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는 분위기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이 세상에 의미가 크기 때문에 무조건 봐야 하는 영화란 없다. 그런 논리야말로 국뽕 영화로서 폄하될 수밖에 없는 지름길”이라며 “일단 개봉된 뒤 평가는 직접 눈으로 영화를 확인한 관객들의 몫”이라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