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 팀추월 경기에 출전한 노선영과 김보름. 당시 ‘왕따 논란’으로 시작된 둘 사이의 진실 공방은 2019년이 되도록 결론이 나질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김보름과 노선영의 진실공방이 이제 2년 차에 접어 들었다. 2018년 2월 ‘팀추월 왕따 논란’으로 발발한 양측의 진실공방은 장기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 가운데 김보름은 노선영을 향한 적극적인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쉴 틈 없는 공세다. 2월 21일 ‘제100회 전국 동계체전’ 일정을 마친 김보름은 태릉국제빙상장 로비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보름은 “노선영으로부터 사람이 듣기 힘든 폭언을 들었다. 폭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김보름은 “폭언과 관련된 자료는 앞으로 차근차근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노선영과의 진실공방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가 엿보인 대목이었다.
이에 대해 노선영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으면 하겠다”고 말하며 김보름 폭로와 관련해 ‘무대응 원칙’을 고수했다.
진실 공방의 결론이 쉽사리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자연히 대중의 관심은 김보름이 공개를 예고한 증거 자료에 쏠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김보름-노선영 이슈’ 관련 대중의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보름이 법적으로 ‘노선영의 위법 행위’를 증명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이슈의 폭발력은 확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동시에 김보름은 역풍을 맞을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 진실공방의 핵심 쟁점: 노선영은 김보름에게 ‘위법 행위’를 저질렀나
‘제100회 동계체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에 출전한 노선영. 김보름은 “노선영이 상습적인 폭언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김보름이 자신의 주장을 팩트로 입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증거 제시다. 단, 증거엔 ‘노선영의 위법 행위’를 증명할 결정적 단서가 포함돼 있어야 한다. 김보름이 노선영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안이라면 이는 개인적 갈등에 불과한 까닭이다.
첫 번째 쟁점은 ‘노선영이 김보름에게 폭행을 행사했느냐’ 여부다. 폭행죄 성립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쟁점이다. 김보름의 기자회견 내용에 따르면 노선영이 김보름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낮다. 2월 21일 김보름은 ‘노선영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까지 했다”고 답했다.
만약 김보름이 노선영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면, 양측의 진실공방은 벌써 결론이 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살펴봐야 할 대목은 ‘폭언의 사실관계와 수위’다. 법률적으로 모욕·강요죄가 성립할 수 있는 경우다. 여기서 김보름과 노선영의 입장이 엇갈린다. 김보름은 “노선영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언을 일삼았다”고 주장한 반면 노선영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폭언 장소를 나열하는 과정에서 김보름은 구체적인 예시를 들었다. 김보름이 “폭언을 들었다”고 주장한 장소는 선수촌 숙소, 식당, 훈련장, 라커룸 등이었다. 하지만 김보름의 폭로에서 빠진 것이 있다. 바로 ‘폭언 내용과 수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다. 다음은 2월 21일 김보름이 태릉국제빙상장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폭언 관련 인터뷰 전문이다.
2월 21일 태릉국제빙상장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김보름. 사진=일요신문 –소셜미디어에서 언급한 ‘지옥같은 나날’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지난 인터뷰에서 말씀드렸듯이 스케이트를 타는 도중은 물론이고 숙소에서, 밥을 먹는 식당에서도, 스케이팅 라커룸에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언을 들었던 것 같다.” –노선영으로부터 물리적인 폭력을 받은 적이 있는가. 폭언을 들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냥 폭언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비언어적 언어폭력’이었다. (침묵) 주먹을 들어서 때리는 시늉까지 했었다. 사람이 듣기 힘든 언어폭력이 대부분이었다.” –둘 사이에 감정이 안 좋아지고 언어폭력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 –어떤 내용에 대해서 폭언을 한 건가. 조금만 알려줄 수 없나. “뭐 운동을 하는 도중에 지난 인터뷰에서도 말씀드렸었는데, (스피드)스케이트는 기록경기이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랩타임(Lap-time: 400m 트랙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제시하면 저는 선생님이 내어주신 랩타임에 맞게 운동을 했다. 나는 거기(랩타임)에 맞게 운동을 했지만, (노선영은) 나보고 천천히 타라고 하는 이유에서 폭언을 했던 것 같다.” –팀 추월 훈련에서 폭언을 한 건가. “평소 개인적인 훈련이든… 항상 훈련은 하기 때문에 같이 스케이트를 타는 도중에도 그랬고… 가만히 밥을 먹고 있는데도 폭언을 했고… 그랬던 것 같다.” –7년 동안 노선영과 대표팀에 있었다. 폭언 빈도는 어느 정도였나. 일상이었나. 아니면 1년에 한두 번이었나. “시합이 있을 때는 시합 전날에도 컨디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밤에 방으로 불러서 몇 시간이고 폭언을 했었고… 시합이 없었던 훈련 기간에도 하루에도 여러 번씩 그랬던 것 같다.” –증거들이 있다고 했다. 폭언과 관련한 녹취인가? “그런 자료들은 앞으로 다 공개하도록 하겠다.” –증거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지금 증거를 가지고 있는 건가. “(잠시 침묵) 뭐 거짓말에 대한 자료들은 예전부터 다 준비돼 있었던 자료들이고, 그 자료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공개하도록 하겠다.” |
기자회견에서 김보름은 ‘노선영의 폭언에 대한 구체적 정황 및 예시’는 들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김보름의 답변에선 유난히 ‘~한 것 같다’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단순한 말버릇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것 같다’는 표현은 분명 ‘폭언 사실에 대한 사실관계를 당사자조차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길 수 있는 요소다.
전반적인 기자회견 내용을 살펴봤을 때 김보름이 제시해야 할 증거의 방향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김보름이 자신의 주장을 사실로 입증하려면, 주변인의 증언이 아닌 노선영의 폭언이 고스란히 담긴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빙상계에선 “김보름이 ‘노선영 폭언 녹취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많다. 인터뷰 전문 마지막을 보면 김보름은 “(노선영의) 거짓말 관련 자료들은 예전부터 준비돼 있었다. ‘그 자료’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증거가 폭언과 관련한 녹취인지’ 여부에도 김보름은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빙상계 복수 관계자는 “결국 김보름이 제시할 증거는 동료 선수들의 확인서, 진술서 등 ‘3자 증언’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조심스레 주장했다. 빙상인 A 씨는 “3자 증언으로 노선영의 상습 괴롭힘을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론 노선영의 폭언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김보름이 ‘노선영의 괴롭힘’과 관련한 위법성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폭로의 진정성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위법성이 없을 때 ‘김보름-노선영 진실공방’은 개인적 갈등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둘 사이의 진실공방이 국민적 이슈로 부상할 만한 동력 역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을 했다”는 김보름의 주장이 ‘노선영의 상습 괴롭힘’을 증명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어 보인다. 김보름이 노선영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역시 물음표다. 과연 김보름이 진실공방 국면을 180도 전환할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