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크기에 걸맞게 화려한 인수 후보자들이 뛰어들었지만, 투자은행(IB)업계의 관심을 받는 업체는 따로 있다. 인수전 전면에 나서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별다른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이 업체는 이번 거래의 최대 변수로 통한다. 바로 중국계 게임사 ‘텐센트’다.
넥슨 인수전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화려한 인수후보들이 참여한 가운데 최대 변수로 통하는 텐센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 세계 게임 시장의 ‘큰 손’ 텐센트
텐센트는 시가총액 400조 원에 달하는 대형 글로벌 업체다. 2017년 말 기준, 약 42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자산만 90조 원이 넘는다. 세계 게임 시장에서 알짜 매물을 사들이면서 몸집을 불렸다. 세계 e스포츠 열풍을 이끌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 개발사 라이엇게임즈(미국)와 모바일 게임 ‘클래시오브클랜’ 개발사 슈퍼셀(핀란드) 등의 인수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영향력이 크다. 이는 이번 넥슨 인수전에서 텐센트가 변수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2014년 CJE&M에서 물적 분할한 게임사업 부문(넷마블)에 텐센트가 당시 국내 게임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현재 지분율은 17.66%로 넷마블의 3대 주주다. 카카오 지분도 6.7%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밖에 ‘배틀그라운드’ 개발사 펍지의 모회사인 크래프톤에도 5000~6000억 원 수준의 투자를 단행, 지분 11.46%를 보유하고 있다.
넥슨과의 인연은 더 각별하다. 텐센트는 중국에서 넥슨의 온라인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서비스하면서 넥슨코리아 자회사 네오플에 연간 1조 원 가량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넥슨의 연간 매출은 2조 5296억 원. 한해 매출 절반에 가까운 규모를 텐센트가 담당하는 셈이다. 여기에 지난 2016년엔 던전앤파이터 중국 서비스 계약을 10년 연장했다.
텐센트는 넥슨 몸값을 한 번에 지불할 자금력도 갖춘 데다, 10년 동안 1조 원 가량의 로열티를 내는 만큼 직접 사들이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넷마블, 카카오 등 넥슨의 유력 후보자의 주요 주주라 두 업체 가운데 누가 넥슨 인수전의 승자가 되든 영향력은 크다.
하지만 텐센트는 이번 인수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번 예비입찰에서도 텐센트는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IB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텐센트는 지난 1월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인수자문사로 선정하고, 텐센트 투자를 총괄하는 샤오이 마 텐센트홀딩스 부사장이 지난 2월 21일 한국을 방한해 인수 관련 내용을 논의했지만, 다른 인수후보들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통상 M&A 협상 과정에선 업체들이 기밀유지협약을 맺고, 그렇지 않더라도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는 만큼 텐센트의 움직임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에선 넷마블-MBK-텐센트가 ‘연합군’을 꾸려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이마저도 관계자들의 추측일 뿐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번 예비입찰 직전까지도 텐센트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넷마블 쪽도 텐센트와의 ‘연합군’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 텐센트는 왜 나타나지 않을까
텐센트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게 아니라, 나서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중국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는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을 만큼 극심한데, 특히 텐센트는 대규모 게임 사업을 하는 만큼 규제 당국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게임산업이 청소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등을 이유로 한국 게임뿐 아니라 자국 게임까지 신규 유통까지 불허하거나 검열하고 있다.
해외 게임을 수입해 서비스하면서 몸집을 키운 텐센트는 지난해 8월 이미 허가받은 게임까지 유통권한을 뺏기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9개월 동안 신규 게임 판호(서비스 허가권) 발급을 중단했다가 최근 2달 동안 발급을 개시했지만, 텐센트는 여기서도 빠졌다. 큰 돈을 주고 사들인 한국 게임 배틀그라운드와 미국 게임 포트나이트 판호 발급이 무산된 것이다. 최근 텐센트가 중국 당국의 눈밖에 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텐센트는 중국에서 ‘유해 산업’으로 분류된 게임 산업의 큰 손인데다, 외국에 로열티 등으로 매년 1조 원이 넘는 외화를 유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0조 원이 넘는 돈을 주고 한국 게임회사를 사오는 건 쉽지 않다“며 ”한국 게임은 중국 자국 게임과 달리 2년 째 판호가 발급되지 않고 있다. 만약 텐센트가 넥슨을 전면 인수해 서비스를 하겠다고 해도 허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텐센트에 대한 한국 반감 여론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텐센트가 넥슨까지 인수하면 한국 게임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하게 된다”며 “국내 자본과 해외 자본과의 대결로 단순화 할 순 없지만, 게임 산업은 사용자들의 입김이 센 만큼 국내 최대 게임사를 해외 업체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파는 넥슨도, 사는 텐센트도 이를 무시한채 강행하긴 힘들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텐센트가 넥슨 인수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만큼 처음부터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이미 텐센트는 던전앤파이터로 이익을 챙기고 있고, 넥슨의 주인이 바뀌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여기에 넷마블이든 아마존이든, 글로벌 사모펀드든 인수 과정에서는 물론 넥슨의 새 주인이 정해진 이후에도 텐센트와의 ‘교통정리’는 필수다. 단독으로 넥슨 몸값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넷마블과 카카오는 주요 주주인 텐센트의 자금력이 필요하고, 다른 업체나 글로벌 사모펀드가 새 주인이 되더라도 자국 업체 중심의 중국 게임 시장에서 사업을 하려면 텐센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향후 넥슨 인수전은 텐센트를 중심으로 인수후보자들 간 협상 경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예비입찰 전부터 일부 인수후보자들이 텐센트와 협의를 마쳤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앞서의 IB업계 관계자는 “텐센트는 넥슨의 경영 부문에는 관심이 없고, 게임 부문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며 “당장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는 텐센트를 대신해 새 인수자가 미리 넥슨을 사두고, 향후 텐센트에 게임 부문, 특히 던전앤파이터 서비스를 하는 넥슨 자회사 네오플을 떼어주는 시나리오가 현재로선 유력하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