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1월 1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한 모습. 고성준 기자
“여권 잔혹사 국면에서 이 지사 지지도를 눈여겨봐라.”
정치권 한 관계자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추세를 언급하며 던진 말이다. 여권 대선주자들의 연이은 위기로 잠룡이 다 없어질 판이지만, 이 지사 지지도는 의외로 탄탄하다는 의미였다.
실제 그랬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인터넷신문사 ‘오마이뉴스’ 의뢰로 조사한 최근 두 달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조사 당시는 전 국무총리) 뒤를 바짝 추격했다. 1월 21∼25일 전국 성인 남녀 251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발표는 같은 달 29일)를 보면 이 지사는 9.0%로, 이 총리(13.9%)와 황 대표(13.5%)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는 이 지사와 함께 ‘여권 잔혹사’를 쓴 박원순 서울시장(8.0%)과 김경수 지사(7.3%) 등보다 앞선 수치다. 지지층이 일부 겹치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5.7%)과 여권 경쟁자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4.3), 야권의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3.4%),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2.5%)와는 큰 격차를 보였다.
특히 이 지사는 지난해 11월 조사(26~30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2513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는 12월 4일)와 비교하면 되레 2.0%포인트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박 시장은 0.7%포인트, 심 의원은 1.3%포인트 각각 하락했다. 김 지사는 0.4%포인트 상승했지만, 여전히 이 지사보다는 낮았다. 두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였다.
9%대인 이 지사 지지도는 2016년 말 촛불정국 당시 ‘신드롬’을 일으켰던 시절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하지만 이 지사가 ‘대권주자 아웃(OUT)’의 정점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가 남다르다. 야권 한 의원은 이와 관련해 “여의도 정가가 ‘진보진영 대권주자 이낙연’ vs ‘보수진영 대선주자 황교안’ 양강 구도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이 지사 지지도 추세가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사직조차 위험하다고 보는 ‘여의도 문법’과는 거리가 먼 민심이 드러난 셈이다.
이 지사의 최대 강점은 친문(친문재인)계 못지않은 ‘핵심 지지층’이다. 2017년 5·9 대선 과정에서 이 지사 지지 모임인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은 한때 문재인 대통령까지 위협했다. 이 지사 원조 지지층과 일부 비문(비문재인)계, 진보성향 개미군단 등이 한데 묶인 손가혁은 친문 지지층에 버금가는 결집력을 자랑했다. 여의도 정치는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아웃사이더에 불과했던 이 지사가 신드롬을 일으켰던 것도 손가혁의 힘이 컸다.
약점은 가족사다. 이 중 최대 아킬레스건은 ‘친형 강제입원 의혹’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친형 강제입원 의혹이 이 지사의 구속 여부 및 정치적 생명을 판가름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 변호사는 “혜경궁 김씨나 김부선 스캔들 등은 정치적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친형 강제입원 사건은 차원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실제 대중적 파급력이 컸던 ‘혜경궁 김씨’나 ‘김부선 스캔들’ 등은 법적 책임에서 한발 비켜섰다.
그러나 친형 강제입원 의혹은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 등을 받는다. 이 지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다면, 즉시 직을 잃는다. 공장 노동자에서 검정고시, 사법시험 등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오른 ‘흙수저 이재명’의 정치 인생도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은 이 지사가 2017년 작고한 이재선 씨의 강제 입원 등을 위해 당시 보건소장 등에게 강압적 지시를 했느냐다. 검찰은 이 지사의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할 다수의 관계자 증언을 확보했다. 이 지사 측은 “강제입원 시도가 아닌 대면 진단을 위한 입원 절차였다”고 맞서고 있다.
이 지사를 둘러싼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문 대통령 복심이자. 포스트 문재인으로 불린 김 지사마저 사법부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여의도 문법으로만 보면, 다음 타깃은 이 지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사 측이 친형 강제입원 관련 공판을 이틀 앞둔 2월 26일 입장을 내고 “법정 거짓 증언은 사건의 실체를 왜곡하고 사법 질서의 신뢰를 저해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재판에서 왜곡 거짓 증언을 할 경우 해당 증인을 고발 조치할 방침”이라고 강경 대응을 천명한 것도 이 같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 형법 제152조는 법률에 의해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이 지사 측의 재판 전략이다. 이 지점은 이 지사의 ‘위협요인’이자, ‘기회요인’이 될 전망이다. 앞서 김 지사 법정 구속은 사실상 재판 전략 미스도 한몫했다. 법조계 출신의 야권 한 의원은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김 지사 측이 실기한 ‘재판부 기피 신청’이다. 1심 재판부였던 성창호 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키즈’로 불린다. 양자가 ‘특수관계’ 의혹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기소나 구속됐을 때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면서 재판 지연 작전을 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여권 고위 관계자도 “(김 지사 실형 선고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며 실책을 자인했다. 또한 김 지사 측은 ‘드루킹 진술만 무너뜨리면 된다’는 식으로 드루킹만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드루킹 개발자인 ‘둘리’ 우 아무개 씨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법조계에선 “특검팀이 김 지사 측의 허를 찔렀다”고 평가했다.
다른 하나는 매머드급 변호인단의 딜레마다. 거물급 인사의 변호인단은 통상적으로 10여 명에 달한다. 이 지사도 지난해 말 9명으로 구성한 변호인단을 띄웠다. 김 지사의 변호단은 7명이다. 야권 한 의원은 “대형 사건에서 매머드급 변호인단을 구성하는 게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라며 “사공이 많으면 내부 결집도가 약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10여 명에 달하는 변호인단 중 다수는 이름만 올리는 공적 쌓기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변호사 출신의 이 지사가 김 지사의 재판 전략 미스를 되풀이할지는 미지수다. 이 지사는 친형 강제입원 사건의 재판 전략에 대해 “정신보건법 제25조에 의해서 임시 입원조치를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라며 “언제나 사필귀정과 대한민국의 사법부를 믿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지사가 재판 과정에서 검찰 법리를 뒤집는다면, 재기의 발판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살아있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연대설’도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이 지사에 대한 제명·출당 요구가 당 내부에서 분출할 당시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당 대표가 사실상 비주류인 ‘이재명 구하기’ 작전을 개시한 셈이다. 차기 총·대선 과정에서 이 대표와 친문계가 정면충돌 양상을 보인다면, 이 지사가 양측 간의 틈새를 파고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4대 의혹이 불거진 이후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를 결정한 백의종군도 마찬가지다. 박시영 윈지코리아 부대표는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의 흠집으로, 포스트 후보의 예측은 그야말로 안갯속”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