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 슬라이더’ 연마에 힘쓰고 있는 LA 다저스 투수 류현진. 일요신문DB
[일요신문] 오승환(37·콜로라도 로키스)과 류현진(32·LA 다저스)이 MLB 스프링캠프에서 보이는 모습 중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서로 선발과 불펜이라는 보직 차이는 있지만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것. 바로 좌타자 공략법이다. 오승환은 좌타자를 상대할 변화구로 체인지업을, 류현진은 슬라이더를 연마하며 구종 추가를 선언했다. 그동안 오승환은 직구와 슬라이더를, 류현진은 직구, 체인지업, 컷 패스트볼(커터), 커브를 주로 구사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 오승환과 류현진은 새로운 구종을 장착하면서 더욱 강력한 레퍼토리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2월 25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캐멀백 랜치 글렌데일 스타디움에서는 류현진의 시범경기 첫 등판이 펼쳐졌다. LA 에인절스와의 시범경기에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1이닝 동안 13개의 공을 던지며 무실점을 기록했다. 류현진의 등판이 마무리된 후 시범경기 동안은 경기 중에도 클럽하우스에서 선발투수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이어진 미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다저스 전담 기자들은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관련된 질문을 이어갔다. 모두가 그 구종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는데 미국 기자들이 가장 관심을 나타낸 부분은 류현진이 도대체 어느 투수로부터 그 슬라이더 그립을 배웠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그때 류현진의 입에서 ‘윤석민’이라는 KIA 타이거즈 선수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미국 기자들은 처음 들어본 선수 이름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러자 류현진의 통역을 돕는 브라이언 리가 윤석민의 영어 스펠링을 알려줬다. ‘Suk-Min Yoon’이라고.
류현진과의 인터뷰를 마친 미국 기자들은 기자실로 돌아오자마자 저마다 ‘윤석민이 누구냐’고 물었고, 한국 기자들을 통해 윤석민이 던지는 슬라이더 영상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 누구도 윤석민이 201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트리플A 팀인 노폭 타이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류현진은 오른손보다 공을 던지는 왼손이 작은 편이다. 윤석민은 슬라이더 그립을 잡을 때 엄지와 검지 사이가 완전히 공에 밀착되고 심을 피해서 잡지만 류현진은 손가락이 길지 않아 엄지와 검지가 붙지 않고 심을 걸쳐서 잡는다.
류현진이 기존의 레파토리에 새로운 구종을 추가하는 건 분명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타자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의 구종을 대비해서 타석에 들어서야 하기 때문에 투타의 맞싸움은 투수가 훨씬 유리하다. 류현진은 바로 그런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슬라이더는 상당히 좋은 구종이다. 그러나 아직은 실전 경기에서 던질 만큼의 연습은 되어있지 않다. 시범경기 동안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이룰지 모르겠지만 확신이 서기 전에는 실전 경기에서 던지진 않을 것 같다.”
류현진이 슬라이더를 연습할 때 주로 배터리를 이뤘던 다저스의 포수, 오스틴 반스는 류현진에게 “나는 그 슬라이더보다 너의 컷 패스트볼이 더 좋다”는 의견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류현진의 좌타자 상대 타율은 0.250, 우타자 상대로는 타율 0.213을 기록했다.
콜로라도 로키스 오승환은 ‘변형 체인지업’으로 좌타자 공략을 노린다. 일요신문DB
메이저리그에서 네 번째 스프링캠프를 맞이한 오승환도 새로운 실험에 나서며 신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돌직구’와 제2의 구종 ‘슬라이더’로 일본과 메이저리그 불펜투수로 자리매김한 그는 자신의 장점을 가다듬으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해 오승환은 우타자를 상대로 한 피안타율이 0.166이었다. 그러나 좌타자 피안타율은 0.291로 다소 높았다. 좌타자를 공략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고, 그런 고민 속에서 택한 구종이 체인지업이었다.
오승환이 연습 중인 체인지업은 일반 체인지업과 차이가 있다. 그립은 체인지업인데 궤적은 투심으로, 자신의 팔과 손가락에 맞게 변형시킨 구종이다. 오승환은 “굳이 따진다면 투심이라고 하기도, 스플리터라고 하기도 애매한 변형된 체인지업”이라고 설명했다.
체인지업이 아직까지는 완벽한 단계가 아니다. 오승환은 투구의 다양성을 늘리고, 좌타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체인지업 추가는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2월 27일(한국시간) 오승환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올 시즌 시범경기 첫 등판에 나섰다. 투구수 13개 중 11개의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는데 이중 단 한 개의 체인지업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가 중점을 뒀던 좌타자 상대가 아닌 우타자 상대의 체인지업이었다. 오승환은 “일부러 오른손 타자가 나왔을 때 던져봤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아직은 좌타자를 상대할 만큼의 체인지업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불펜투수인 오승환이 마운드에서 던질 수 있는 투구수는 20여개 안팎이다. 선발투수처럼 다양한 공으로 타자들을 상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 그도 이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스프링캠프 동안 체인지업을 연습하는 건 사실이지만 막상 정규시즌에 들어가서 시범경기 때처럼 다양한 구종을 던지기란 쉽지 않다. 내가 노리고 있는 건 타석의 타자들이 슬라이더가 들어올 타이밍이라고 생각할 때 다른 변화구를 던지는 것이다. 직구, 슬라이더라는 획일화된 패턴에서 벗어나는 레퍼토리를 보여주고 싶다.”
오승환이 체인지업 구종을 연마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에선 37세라는 오승환의 나이, 그리고 지난 시즌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전년 대비 93마일에서 91.6마일(MLB.com)로 감소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나 오승환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시범경기에서부터 너무 자신 있게 말하면 자칫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작년보다 구속이 더 나올 것이란 사실이다. 몸 상태도 지난해보다 훨씬 좋아졌다. 느낌이 아니라 다양한 검사를 통해 나온 결과에 근거한 내용이다. 올 시즌 구속만큼은 걱정보다 기대를 해도 될 것 같다.”
KBO리그를 경험하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후배는 비슷한 고민과 숙제를 안고 해결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이들의 노력과 열정이 올 시즌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궁금할 따름이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류·오 신무기를 보는 주변 시선 다저스 감독 “굿” 로키스 감독 “굳이…” 스프링트레이닝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 류현진. 사진=일요신문 류현진과 오승환의 신무기 연마 관련해서 각각의 소속팀 감독, 코치들, 그리고 전담 기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 20일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류현진이 슬라이더를 가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류현진의 슬라이더는 다저스 취재진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의 구종 추가에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류현진이 매우 영리한 투수이기 때문에 새로운 구종을 섞게 되면 마운드에서 더욱 강렬한 투구를 선보일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로키스의 버드 블랙 감독은 오승환의 체인지업 추가에 다소 의문을 나타냈다. 27일, 오승환의 첫 시범경기 등판이 있은 후 가진 인터뷰에서 버드 블랙 감독은 “오승환이 4가지 구종을 모두 던질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 좋을 것이다. 그가 기존에 던지는 투구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가 갖고 있는 패스트볼과 커브가 아주 훌륭하다. 불펜투수가 굳이 4가지 구종을 던질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다저스 전담 기자들한테도 류현진의 슬라이더 추가에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MLB.com’의 캔 거닉 기자는 류현진이 제대로 슬라이더를 던지려면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 선수는 슬라이더 그립을 잡는 게 어색하다고 말했다. 그가 그 그립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류현진 스스로 자신의 슬라이더에 만족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류현진이 슬라이더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지금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르지만, 슬라이더를 제대로 던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의 빌 플런켓 기자는 류현진의 구종 추가에 높은 점수를 줬다. “류현진의 장점 중 하나는 모든 구종을 제대로 쓸 줄 안다는 것이다. 직구면 직구대로, 체인지업은 체인지업대로 상대 타자들을 향해 던진다. 그런 공이 하나가 더 늘어나는 건 당연히 장점이 될 수밖에 없다.” 빌 플런켓 기자는 슬라이더를 던지게 되면서 어깨나 팔꿈치에 무리가 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깨 상태는 선수 자신이 제일 잘 알 것”이라고 답변했다. “모든 투수들이 어떠한 구종을 던질 때 마다 사람들은 투수의 몸 상태를 걱정한다. 커브를 던져도, 커터를 던져도 팔꿈치에 무리가 가지 않을지를 염려한다. 그러나 선수의 어깨는 선수 자신이 제일 잘 안다. 무리하면서까지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류현진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캔 거닉 기자는 류현진이 많은 구종의 공을 던지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류현진처럼 여러 구종을 마스터해서 타자들을 상대하는 걸 즐기는 선수가 있는데 류현진도 그런 유형의 투수인 것 같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영미 기자 |
김용일 트레이너의 ‘괴물 길들이기’ ‘특급 조력자’ 김용일 전 LG 트레이닝 코치와 류현진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일요신문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 올 시즌부터 류현진의 전담 트레이너로 다저스 캠프에 합류한 김용일 전 LG 트레이닝 코치다. 28일(한국시간)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 코치는 취업비자 절차가 지연되는 바람에 예상보다 늦게 애리조나에 입성했다. 김 코치와 류현진의 인연은 2016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어깨 수술은 물론 팔꿈치 수술까지 받았던 류현진은 어느 때보다 재활 훈련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류현진은 대표팀에서 친분을 맺은 김 코치에게 연락을 취했고, 당시 LG 트레이닝 코치였던 김 코치는 구단의 허락을 받은 다음 류현진의 재활을 도왔던 게 해마다 겨울만 되면 훈련 파트너로 만남을 이어갔다. 김 코치는 KBO에 처음 트레이닝 코치가 도입된 이래 이 부문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1989년 MBC청룡에 입사 후 LG 트윈스로 팀이 바뀌었고 LG의 1990년, 1994년 우승을 함께 했다. 2002년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는 국내 최초로 트레이닝 코치 직함을 달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트레이너’로 한정된 신분이 김 코치 이후 비로소 ‘코치’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류현진은 김 코치를 전담 트레이너로 두기 위해 다저스 구단에 특별한 부탁을 했다. 선수 개인이 고용한 전담 트레이너지만 선수단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터라 구단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했다. 다저스의 프리드먼 사장은 고민 없이 바로 허락해줬다는 후문. 김 코치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가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으로 야구했다면 다저스 입단 후에는 지독한 훈련과 연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용일 코치의 합류로 인해 류현진의 표정은 훨씬 밝고 몸은 더 가벼워졌다. 이영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