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전제품에서 금속자원을 추출하는 도시광산 프로젝트. 일본에선 수십 년 전부터 주목받아왔다. 사진출처=도쿄베이게이자이신문
“혹시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 휴대전화 등을 집에 고이 모셔 두고 있진 않은가?” 처분하고 싶은데 귀찮아서, 또는 왠지 버리기 아까워서 폐가전을 짐처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주목한 프로젝트가 최근 일본에서 화제다. 일명 ‘도시광산에서 만드는 메달 프로젝트’다.
‘도시광산’이란 말은 1980년대 일본에서 탄생했다. 도시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폐가전제품 안에 재생 가능한 금속자원이 많다는 뜻이다. 특히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의 전자기기에는 금, 은, 동을 비롯해 플라티늄, 팔라듐, 코발트, 니켈 등 희귀한 금속 물질들이 탑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휴대전화 한 대에서는 금 0.05g, 은 0.26g, 구리 12.6g 등을 뽑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최소 3000원 이상의 가치다. 아울러 “폐 컴퓨터 15대가 모이면 금 1돈(3.75g)이 추출된다”고 한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일본은 수십 년 전부터 ‘폐기된 전자제품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방식’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그렇다보니 특허 기술을 여럿 보유하게 됐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도 많다. 요컨대, 버려진 전자제품에서 새로운 ‘노다지’를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산업폐기물도 줄이고 금속도 캐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이처럼 발 빠른 행보 덕분에 일본은 세계 6위의 희소금속 보유국이 됐다.
2017년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에 쓰일 메달을 모두 재활용으로 만들겠다”는 참신한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일반 국민들에게 오래 되어 쓰지 못하는 소형가전들의 기부를 요청했다. 앞서 리우올림픽에서도 메달의 일부를 재활용으로 제작했지만, 전 국민이 참여하는 형식으로 100% 재활용 메달을 제작하는 것은 도쿄올림픽이 처음이다.
참여방법은 간단하다. 지방자치단체와 우체국 등 일본 전역에 소형가전 회수박스를 설치해 둔다. 여기에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등 폐가전을 갖다 놓으면 이를 분해해 금속을 추출하는 것이다. 단 부피가 큰 컴퓨터의 경우 관련업체가 무료로 집을 방문해 회수해간다.
도시광산에서 만드는 모두의 메달 프로젝트.
난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삐걱거렸다. 수집량이 기대보다 훨씬 못 미쳤으며, 일각에서는 “제국주의 시대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일본 정부가 공립 초·중등학교에 회수용 박스를 설치하고, 무리하게 참여를 독려한 것이 화근이었다. SNS에서는 “마치 태평양전쟁 준비를 위해 냄비나 솥을 강제로 회수했던 것이 생각난다” “학교 조직을 사용해 금속을 모으려는 사고방식이 무섭다” 등의 비판도 이어졌다.
당초 일본 정부는 “다 쓴 전자제품도 페트병이나 플라스틱처럼 자원으로서 회수돼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목적이 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참여율이 저조하자 관련 홍보를 대폭 강화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못 쓰는 컴퓨터를 무료로 회수해준다’는 정보가 트위터로 확산되면서부터다. 전자레인지, 데스크톱 등 처치곤란 가전제품을 버리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잇따랐다. 또 자신이 쓰던 물건이 누군가의 메달이 되는, 가슴 벅찬 감동도 누릴 수 있는 기회였다. 프로젝트는 점점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에 따르면, 지금까지 회수한 소형가전은 무려 5만 톤에 육박한다. 휴대전화만 500만 대 이상이 모였다. 이에, 조직위는 “메달 프로젝트에 필요한 금속량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면서 “회수 접수를 오는 3월 31일에 종료한다”고 전했다. 참고로 추출한 재활용 금속을 사용한 메달 제조가 지난 1월부터 이미 시작됐다.
일본 환경성은 “버리지 않고 여전히 집에 남아 있는 소형가전이 약 65만 톤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안에 있는 유용금속을 전부 추출한다고 가정하면, 약 8400억 원에 상당하는 가치다. 이에 대해, 환경성 담당자는 “엄청난 금액의 도시광산이 집 안에 잠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면서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소형가전 리사이클은 별도로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쿄 이타바시구에 설치된 소형가전 회수 박스.
한편, 이번 프로젝트는 해외 언론에서도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영국 BBC 방송은 “일본이 21세기 연금술을 통해 폐기된 전자기기를 빛나는 메달로 만들 예정”이라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2016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전자쓰레기는 4470만 톤이다. 매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회수나 재활용은 여전히 20%에 머물러 경종을 울린다. 매체는 “이번 프로젝트가 국민들이 잠자는 자원에 눈뜨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해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온라인 매체 ‘토우티아오’는 “도시광산을 유용하게 활용한 아이디어만큼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전했다. 관련 기사의 댓글을 살펴보면 “일본은 밉지만, 환경보호 의식이 높다는 점은 부럽다”는 의견도 찾아볼 수 있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의 테마는 단연 ‘친환경’이다. 이와 관련, 도쿄올림픽조직위는 “전 대회장을 100%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운영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 자원 낭비를 줄이기 위해 대회에서 사용하는 물품은 99% 임대 등으로 조달하거나 재사용할 예정이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올림픽선수단의 공식 유니폼 공급업체인 아식스가 ‘선수와 관계자를 위한 용품과 유니폼도 재활용 섬유로 만든다”고 한다. 과연 이 목표들을 무사히 달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휴대폰 1톤에 금 350g’ 도시광산 효율성 높다 최근 ‘도시광산’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니라 효율성 때문이다. 가령 금광석 1톤을 채취해 얻는 금은 평균 3~4g에 머무는 데 비해, 휴대전화 1톤에는 약 350g의 금이 포함돼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도시광산의 규모는 세계 최대에 달한다. 일례로 일본의 도시광산 금 축적량은 약 6800톤으로, 이는 전 세계 매장량의 16%에 달하는 규모다. 또 “LCD TV나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희소금속인 ‘인듐’은 약 1700톤으로 세계 매장량의 61%가 일본에서 잠자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새로운 ‘노다지’ 도시광산에서의 금속을 적극 회수하기 위해 일본은 2013년 4월부터 소형가전 리사이클법을 시행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