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빙상계에서 불거진 논란에 또다시 ‘빙상 대통령’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짬짜미 의혹’ 배후로 전 교수의 복심 소릴 듣는 B 코치가 거론된 까닭이다.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빙상계가 ‘짬짜미 의혹’으로 다시 한번 논란에 휩싸였다. 그 가운데 ‘빙상 대통령’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의 이름이 또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이번 논란의 중심 배후로 ‘전명규 복심’으로 알려진 B 코치가 지목되고 있는 까닭이다.
논란의 도화선에 불이 지펴진 건 2월 21일 목동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 동계체전’ 남자 고등부 1,000m 결승에서였다.
논란의 장면은 레이스가 두 번째 바퀴에 접어드는 순간 발생했다. 신송고 안현준이 아웃코스 주행으로 추월을 시도하는 과정이었다. 그때 A 선수가 팔꿈치를 이용해 안현준의 추월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 찰나 A 선수의 스케이트 날이 안현준 스케이트 날에 부딪혔다. 두 선수는 넘어졌다.
그러자 경기장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관중석에선 “심판! 경기 다시 해!”라는 아우성이 난무했다. 경기는 속개됐고, 남자 고등부 1,000m 결승의 메달 주인공이 가려졌다. 남자 고등부 1,000m 결승 경기엔 선수 5명이 출전했다. 안현준과 A 선수가 넘어지면서 나머지 세 선수가 메달을 차지하게 됐다.
‘짬짜미 의혹’이 불거진 결정적인 장면. A 선수가 안현준의 몸쪽에 팔꿈치를 집어 넣은 뒤 두 선수의 스케이트 날이 부딪혔다. 두 선수는 모두 넘어졌고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사진=일요신문
이 경기가 ‘짬짜미 의혹’ 중심에 선 이유는 따로 있다. 5명 가운데 안현준을 제외한 선수 4명이 같은 지도자에게 스케이팅을 배우는 까닭이다. 이들의 지도자는 B 코치다. 빙상계 복수 관계자는 B 코치를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의 오른팔이자 행동대장”이라고 표현했다.
B 코치는 지난해까지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개인 강사로 활동하다, 12월 말 목동실내빙상장으로 거점을 옮긴 지도자다. B 코치의 목동행을 두고 일부 빙상인은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을 중심으로 여러 논란이 불거지자, 잠시 자리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앞서 ‘일요신문’은 <[단독] ‘조재범 전임자+성추행 의혹’ 빙상코치, 목동빙상장 개인강습 둘러싼 뒷말 무성한 내막> 제하의 기사를 통해 B 코치 관련 여러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일요신문’은 짬짜미 의혹 관련 내용을 질의하려 B 코치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끝내 응답이 없었다.
‘짬짜미 의혹’과 관련한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남자 고등부 1,000m 결승 경기 내용이다. 빙상계 복수 관계자는 “경기가 처음 2바퀴 동안 상당히 치열하게 펼쳐졌다. 그런데 안현준과 A 선수가 넘어진 뒤 경기 템포 자체가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1등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움직임이 몇몇 선수에게서 보였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한 빙상 지도자는 “이 경기를 통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빙상 캐슬의 실체가 드러난 셈”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빙상 지도자는 “고등부 선수들이 동계체전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대학 진학에 동계체전 메달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특정 선수를 밀어주기 위한 짬짜미는 암묵적으로 횡행했다. 하지만 이번 동계체전 경기를 통해 불거진 논란의 경우 사안의 심각성이 더하다. ‘특정 선수의 성적을 위해 한 선수를 고의로 넘어뜨렸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안현준 선수의 부친 안기원 씨는 문체부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문체부는 ‘짬짜미 의혹’ 진정 내용을 대한체육회 클린센터로 이관했다. ‘짬짜미 의혹’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관계는 대한체육회 클린센터의 자체 조사를 통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 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연맹은 대한체육회 클린센터 자체 조사에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면서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일환으로 이번 조사에 참여할 비디오 분석관 선임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포츠의 뿌리는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모두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빙상계에서 불거진 ‘짬짜미 의혹’은 페어플레이 정신과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각종 논란에 몸살을 앓은 한국 빙상계는 쇄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자꾸만 반복되는 사건사고는 ‘한국 빙상계에 정말 쇄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만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빙상계 주변에선 “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됐음에도, 여전히 빙판엔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고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번 ‘짬짜미 의혹’ 배후로 전명규 교수의 복심 코치가 지목받고 있는 것도 이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짬짜미 의혹’ 해당 경기 심판 “규정상 경기 멈출 수 있는 근거 없었다” – 빙상 지도자 “짬짜미 규제할 수 있는 로컬 규정 신설해야…” ‘제100회 동계체전’ 쇼트트랙 경기를 진행 중인 심판. 사진=일요신문 최근 빙상계에서 불거진 ‘짬짜미 의혹’을 두고 해당 경기 심판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빙상계 관계자 및 학부모들은 “일반인이 봐도 알 수 있을 만한 짬짜미를 심판이 걸러내지 못했다. 심판이 안현준과 A 선수의 충돌 이후 경기를 속행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요신문’은 2월 27일 저녁 ‘짬짜미 의혹’이 불거진 경기 주심을 맡은 최용구 심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 심판은 “최근 논란과 관련해 마음이 무겁다”면서 “규정에 따라 경기를 진행하려 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최 심판은 “안현준이 선두권에서 레이스를 하고 있거나, A 선수의 몸이 안현준 선수의 몸과 접촉이 생겨 넘어졌으면 규정상 경기를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A 선수와 안현준이 넘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스케이트 날의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규정상 경기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빙상계 심판 관계자 역시 비슷한 입장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규정상 경기를 다시 시작하면, 또 다른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도 “두 선수가 넘어진 이후 경기 내용은 누가 봐도 명백한 짬짜미였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심판 관계자는 “선두 주자가 넘어지면 경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안현준은 후미에서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가려는 과정이었다. ISU 규정상 경기를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용구 심판에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경기가 끝난 뒤 A 선수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한 뒤 옐로카드를 꺼내는 게 맞지 않았나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하지만 ISU 규정이나 KSU(대한빙상경기연맹) 로컬 규정을 봐도 ‘짬짜미의 정황이 드러났을 때 경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 심판 입장에선 알고도 경기를 속개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한 빙상 지도자는 “KSU 로컬 규정에 짬짜미와 관련한 내용 추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지도자는 “경기 내용에서 짬짜미가 의심될 때 심판이 경기를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ISU 규정에 ‘짬짜미 관련 내용’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에서 봤을 때 짬짜미는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페어플레이를 저해하는 행동이 경기에서 나올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국내 대회 결과에 학생 선수들의 진학 성패가 달려 있는 상황이다. 짬짜미를 규제하지 못한다면, 한국 쇼트트랙에서 ‘공정한 경쟁’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