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신임 대표가 선출됐다. 고물상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뒤 ‘공안검사’ ‘최장기 장관’ 등의 화려한 수식어로 엘리트 코스를 받아왔지만, ‘탄핵 총리’라는 올가미도 그에게 던져진 과제다. 사진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7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고물상의 아들에서 국무총리까지
제1야당의 대표가 된 그는 1957년 서울에서 고물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황 대표의 부모는 황해도 출신 실향민으로 1‧4 후퇴 때 월남했다. 황 대표는 그 뒤로 경기고등학교와 성균관대 법학과 학‧석사를 졸업했다. 그의 고등학교 동기는 5선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다. 노 의원과 이 의원은 학생운동을 했지만, 황 대표는 ‘학도호국단’의 연대장을 맡았다. 이들이 걷는 길이 갈라지게 된 계기다.
황 대표는 사법고시 23회(연수원 13기)에 합격해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엘리트 코스’였다. 검찰에서는 대검 공안 1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 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대구고검장을 지내며 공안검사로 자리매김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바로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다. 공안수사의 지침서라고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이라는 책을 내면서 얻은 별명이다. 이밖에도 ‘집회‧시위법 해설’도 발간했다.
당시 그는 칼(KAL) 폭파범 김현희 조사, 임수경 밀입북 사건 수사,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수사 등 굵직한 공안 사건을 맡으며 자타 공인 ‘공안검사’로 명성을 떨쳤다. 2011년 그는 부산고검 검사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으며, 이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활동했다.
변호사 생활은 잠시였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첫 장관으로 발탁됐다. 초기 내각 때 법무부 장관으로 들어왔고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사건’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성완종 리스트 사건’ 등을 처리했고, 나름의 성과도 냈다. 그렇게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에서 최장수(2년 3개월) 장관으로 재임했다.
장관직을 큰 탈 없이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던 2015년 ‘성완종 리스트’와 함께 이완구 전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그 자리를 황 대표가 채우게 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에는 약 5개월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황교안의 논란
황 대표를 따라다니는 논란은 세 가지다. 장관과 총리 인사청문회 때 제기된 의혹들은 이번 전당대회 때도 따라붙었다. 우선 ‘병역 기피 의혹’이다. 황 대표는 1980년 첫 신체검사에서 ‘만성 담마진’이라는 피부 질환으로 면제(5급) 처분을 받았는데 6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이에 장관 후보자였던 황 대표는 “입대가 안 되는 질병으로 4년가량 치료받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경위야 어찌 됐든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늘 마음의 빚으로 생각해 왔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 자신이 지휘한 안기부 ‘X파일’ 수사에 대한 ‘봐주기 수사’ 비판도 제기됐다. 그는 2005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 재임 당시, 국정원-안기부 도청 사건(일명 ‘X파일 사건’)을 맡아 사건을 폭로했던 MBC 기자와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만 기소했다. 반면, X파일에서 불법자금을 전달한 정황이 드러난 삼성그룹 이학수 전 비서실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전 사장, 이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계 인사와 검사들은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때문에 ‘대기업 눈치 보고 면죄부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았다.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당시 받은 수임료를 두고는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1년 7개월간 자문료와 수임료 15억 9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많은 급여를 받은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황교안의 사람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으로 시작해 권한대행까지 지냈다. 그의 곁에는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이 많다. 사진은 2015년. 연합뉴스
이들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황 대표의 선거 캠프 업무를 도왔다. 오균 전 차장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초기 때 국정과제비서관을 지냈다. 그는 황 대표 곁에서 정책 메시지 등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에선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거론된다. 그는 황 대표가 총리이던 시절,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이외에도 황 대표와 함께 장‧차관을 지내던 유기준‧윤상직‧정종섭‧송언석 의원도 황 대표와 가깝다. 이들 모두 친박계로 분류되던 인물이며 현재는 ‘친황(친황교안)계’라는 꼬리표도 달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대구에서 열린 대구‧경북(TK) 합동연설회에서 추 의원과 곽상도 의원 등 이곳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무대 앞에 모여들었고, 황 대표가 연설하자 ‘황교안!’을 외쳤다.
박완수 의원은 황 대표가 창원지검장으로 지내던 당시 창원시장이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외에도 민경욱‧김기선‧박대출‧박덕흠‧이채익‧곽상도 의원이 황 대표의 입당 즈음 물밑에서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시절 동문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황 대표가 법대 동문회장을 맡으며 동문들을 챙겨왔고, 그때의 인맥이 지금도 여전하다. 정홍원 전 총리는 황 대표에게 정계 진출을 적극적으로 권유했으며 황은연 전 포스코 사장도 성균관대 법대 동문으로 황 대표와 친분이 두텁다.
#“반듯한 성격이지만…”
성격은 반듯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홍준표 전 대표는 검사 초임 시절 1년 4개월간 황 대표와 방을 함께 썼다. 홍 전 대표는 황 대표에게 “반듯한 공무원이다. 하지만 정치인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과거 황 대표와 고등학교와 대학교 생활을 함께한 동기도 황 대표를 ‘반듯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미화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차분하고 착실하고 반듯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보통 친구들은 술과 담배를 하며 친해지는 편이었는데, 황 대표는 아니었다. 술, 담배, 당구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더라. 소심하다기보단 내향적이었던 것 같다”며 “그의 성격이 차분하니 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판사가 될 줄 알았는데 검사가 됐더라. 주변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었다. 도덕적으로 너무 정석이었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더라”라고 밝혔다. 또, “35년이 지났으니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성격을 두고 그가 당을 잘 끌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당 대표란 지도력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여 투쟁을 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과 수시로 부딪히는 당 대표는 대정부질문 등 정제되고 준비된 발언만 하던 장관의 입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사람’ 황교안
황 대표의 취미는 색소폰 연주다. 경기고 재학 당시부터 연주 실력이 유명해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정도라고 알려졌다. 색소폰에 푹 빠져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이때도 얻은 별명이 ‘색소폰 부는 검사’였다. 황 대표의 이 취미와 관련해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2003년 부산 동부지청 차장검사 시절, 황 대표는 부산의 한 식당에서 연주되던 색소폰 연주에 감명을 받았다. 이때 옆에 있었던 인물은 박영수 당시 지청장이었고, 그 뒤로 두 사람은 색소폰 연습을 함께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로부터 약 13년 뒤, 황 대표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박영수 지청장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특검’을 지휘하는 특검으로 다시 마주하게 됐다. 최순실 씨의 은닉재산 수사를 위해 박영수 특검팀은 황 대표에게 특검 연장을 요청했으나, 황 대표는 이를 불허했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상관이었기 때문에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진실규명을 원하는 민심에 반하는 선택으로,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웠다.
황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졌다.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에 수도침례신학대에서 공부한 침례교 전도사이며, 아내도 기독교 계열 대학을 나왔다.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과거 황 대표의 아내 최지영 씨는 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최 씨는 이 글에서 “남편은 어김없이 새벽 2시에 기상을 한다. 기도시간을 갖고 성경을 읽으면서 남편은 교회에서 가르칠 성경 교재를 만든다”며 “남편은 5시간의 수면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저녁 9시에 취침하고 새벽 2시에 기상하는 남편은 결혼 이후 한 번도 변화를 주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가족은 배우자인 최 씨와 1남 1녀를 뒀다. 최 씨는 현재 나사렛대학교 상담학과 교수이며 복음성가 가수로 알려졌다. 황 대표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 아들의 전세보증금, 총리 인사청문회 때 딸의 신혼집 임차보증금에 대한 증여세를 내지 않은 것이 문제가 돼 청문회 직전 서둘러 납부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황교안·노회찬 입학 동기의 ‘엇갈린 운명’ 황교안 자유한국당 신임 대표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이 둘은 한때 친구였고 한때 앙숙이었다. 두 인물은 매 사건에서 마치 교차편집 되듯 상반된 행보를 보였고, 사이에 있던 틈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다. 황 대표와 노 의원은 1973년 경기고에 함께 입학한 동기다. 그렇지만 둘이 걷고자 하는 방향부터가 달랐다. 고입을 한 해 재수한 노 의원은 “유신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열을 올렸다. 교실 문을 잠그고 수업 거부를 주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황 대표는 경기고에서 학도호국단 연대장이 됐다. 손에 꼽히는 모범생이었고 노 의원과 다른 길을 갔다. 대학교 때는 환경 반경부터가 달라졌다. 노 의원은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을 했고,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돼 옥살이를 했다. 황 대표는 성균관 법대에 들어가자마자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1983년 검사가 된 뒤 ‘공안검사’가 됐다. 그리고 그는 옆 방에서 노 의원을 만났다. 황 대표는 노 의원에게 안부를 물었고 노 의원도 걱정 말라는 뜻에서 “서울구치소가 새로 옮겨서 겨울에 덜 춥고 괜찮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고등학교 입학 동기였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7월 노 의원의 빈소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1992년 출소한 노 의원은 정치를 시작했다. 2004년 민노당 소속으로 초선 의원이 됐고, 이때도 황 대표와 조우하게 됐다. 노 의원은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떡값’을 받은 검사 7명의 명단을 폭로했다. 공교롭게도 황 대표는 서울지검 2차장으로 ‘삼성 X파일’ 특별수사를 총괄했다. 황 대표는 혐의를 받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다른 관계자들에게 서면조사만 한 뒤 무혐의 처리했다. 하지만 노 의원만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렇게 노 의원은 2013년 유죄를 선고받고 의원직을 잃게 됐다. 같은 해에 황 대표는 박근혜 정부 법무부 장관이 됐다. 이후 노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국회로 돌아왔고, 국회에서 황교안을 다시 만났다. 그는 이제 국무총리였다. 두 사람은 긴급현안질의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놓고 다툼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노 전 의원은 드루킹 측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휘말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금품 수수로 의심되는 시점은 2016년 3월, 노 전 의원이 ‘삼성 X파일’ 폭로로 의원직을 잃었을 때였다. 황 대표는 노 의원의 빈소를 찾아 “애석하기 짝이 없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안타깝다. (고인을) 잘 모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길고 긴 인연은 매듭지어졌다.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