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증시가 공포에 떨고 있다. 연초부터 5개월간에 걸쳐 급등세를 이어왔던 증시에 비상등이 켜졌다. 엔론, 월드컴 분식회계 파문에서 시작된 뉴욕발 다우, 나스닥 침몰이 서울 증시를 강타하면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올들어 확산된 경기회복 기대감도 시간이 갈수록 무색해지고 있다. 당초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5% 이상으로 내다보고 계획을 짰고, 기업들도 이에 맞춰 실적상향 조정에 나섰다.
서울증시에 참여한 기관, 외국인, 개인 투자자들도 지난해 말부터 서둘러 주식 선취매에 나서 종합주가지수는 지난해 9·11사태 당시 주가에 비교해 100% 급등했다. 그러나 한·일월드컵 개막을 전후한 지난 5월 말부터 갑자기 미국증시가 급락하기 시작, 서울증시도 1개월 만에 20% 이상 폭락했다. 상당수 기업의 주가는 지난 4월 말에 비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이렇게 되자 증권가에서는 9월 금융대란설이 나도는 등 분위기가 흉흉해지고 있다. 특히 6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 손실 부담이 시중은행에 떠넘겨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금융대란설은 힘을 얻고 있다.
▲ 여의도 증권가에 ‘9월대란’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 고 그 징후도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 ||
일부 투자자들의 이 같은 시각에 증시 전체가 아연 긴장하는 것은 지난 98년 외환위기 사태 당시 주식 대폭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외환위기는 동남아 국가들의 금융시장 붕괴에서 시작된 여파가 밀어닥치면서 한국이 결정타를 먹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시장이다. 미국시장은 동남아 국가들보다 우리와 훨씬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고, 수출과 수입의 절대적 의존관계를 갖고 있다. 때문에 미국증시의 불안은 곧 서울증시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얘기.
투자자들이 금융대란에 대한 징후로 꼽는 것은 미국증시 폭락사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의 경제붕괴 등 외생변수 외에도 공적자금 회수불능 문제, 부동산 거품 붕괴, 금리속등, 기업실적 악화 등 내재변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중 주식투자자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부분은 60조원대로 추정되는 공적자금 회수불능 사태. 공적자금 문제는 공적자금이 투여된 은행, 기업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고 국민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공적자금 손실분담이 국민 개개인에게 전가될 경우 가뜩이나 IMF사태 이후 누적돼온 개인부채가 더 늘어나 신용파산 위험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빚을 내 주식, 부동산에 투자한 개인들의 주식투매를 불러올 것이고, 결국 ‘개인파산-주식시장 침몰-부동산 침몰-금리속등-개인파산’이라는 경제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증시의 침몰도 가깝게는 엔론 등 주요기업들의 회계장부 조작이 빚어낸 비극이지만, 근본원인은 개인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으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이나 유럽 경제도 개인부채 문제가 침몰의 발단이 됐다. 금리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졌다는 점에서 부동산 거품붕괴도 또다른 위기의 원인. 부동산의 경우 지난 98년 대폭락사태를 겪은 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상급등을 이어왔다.
부동산시장의 활황세는 경기회복을 끌어내기 위한 정부의 인위적인 부양책이 크게 작용했다. 아파트 표준가격 인상, 잇단 주택경기 활성책 도입 등이 부동산시장을 살린 것. 그러나 지나치게 풀려나간 시중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면서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값은 1년 사이에 평균 30% 이상 상승했다. 이 같은 부동산시장이 최근 다시 경색조짐을 보이고, 40 대 1 이상의 과열경쟁을 보이던 분양시장에서도 미분양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기업실적 악화. 당초 정부나 민간 연구소는 올해 국내 기업의 실적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우 올 상반기 실적이 사상 최대라고 포장됐지만 실질적인 경영 실적 바로미터인 영업이익은 다른 해와 비교해 썩 나은 편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자사주로 매입한 주식 평가이익 등이 실적상승의 환상을 가져온 부분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9월대란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3분기 실적이 거의 드러나는 시기가 9월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올초 정부나 민간기업이 예상했던 실적 예상치가 3분기까지의 누적실적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3분기 누적실적이 예상치를 웃돌 경우 금융시장은 별 탈이 없겠지만, 만약 예상치를 밑돌거나 크게 낮을 경우 금융시장이 요동을 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6월 말 현재까지 드러난 기업들의 상반기 실적을 보면 일부 우량기업의 경우에는 이익증가율 면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지난해 워낙 실적이 나빠 상승률 자체가 갖는 의미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6월부터 수출 증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고, 자동차 등 내수소비시장도 급격히 위축되는가 하면 금리나 부동산시장 등 다른 경제 요소들도 불안조짐을 보이고 있어 기업수익은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7월∼9월로 이어진다면 3분기까지의 누적실적은 상반기 순익을 까먹고도 남을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최악의 경우 우량기업들도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일본 금융시장이 계속 불안상태를 이어가고 내수시장마저 위축된다면 환율, 증시, 부동산 등 경제의 축을 이루는 3대시장에 집결된 악재가 9월을 기점으로 폭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난 97년에 터진 IMF사태도 그해 5월 한보사태를 시발점으로 차츰 분위기가 악화되다가 7월에 기아 부도사태를 맞자 크게 요동을 친 뒤, 2개월 후인 9월부터 환율이 급등하면서 3개월 만인 그해 12월에 금융시장 전체가 무너졌다.
이와 함께 끝없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코스닥 등록기업들의 경영불투명성도 주식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인위적 부양에 힘입어 거품이 낀 벤처기업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권 말기라는 정치적 불안요인도 금융시장 붕괴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