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진 씨에게 피해를 봤다는 A 씨의 말이다.
곽호진 씨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곽 씨는 ‘연평도 포격 도발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의류 브랜드 ‘Yes, I‘m Right’ 대표를 맡기도 했다. Yes, I’m Right 티셔츠는 젊은 보수 인사들이 착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알려진 것과 많이 달랐다. 지인들도 ‘어디까지가 그의 진짜 모습인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지인들의 돈 약 3억 원을 빌려 해외로 도피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의 행적은 2015년 네이버가 만든 소셜미디어 ‘폴라’부터 시작한다. 네이버는 폴라 홍보를 위해 가장 많은 ‘좋아요’와 ‘댓글’을 모은 사람에게 네이버 인턴 기회와 10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곽 씨는 사비를 털어 이 이벤트에 ‘좋아요와 댓글을 달면 기프티콘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1등을 했다.
일각에서는 ‘돈으로 사람을 모은 건 반칙’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곽 씨는 학교 홈페이지에 “본래 마케팅은 비용을 들여 성과를 내는 게 기본이고, 저도 저 나름의 비용을 치르고 마케팅의 효과를 얻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만약 제가 이렇게 비용을 치렀음에도 1등 혹은 순위권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그건 분명히 실패한 마케팅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곽 씨에게 피해를 입은 A 씨는 “그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폴라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의 유명세는 2017년 초 한 세차업체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차업체 마케팅을 하면서 앞서 말한 윾머저장소와 협업을 하게 됐고, 광고에 곽 씨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그의 이름도 알려지게 된다.
세차업체에서 같이 일했던 한 직원은 “세차하시는 분들에게 평이 안 좋았다. 여름에는 두껍게 입고 에어컨 틀고, 겨울에는 반팔 입고 히터 켜고 있어서 밉상이었다”며 “마케팅으로 본인 SNS와 유머저장소를 이용했지만 세차 주 타깃과 맞지 않았다. 프라이빗한 세차업체 서비스를 지향했기 때문에 여성이 주 타깃이 되어야 하는데 유머저장소는 맞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세차업체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9월 그가 ‘문재인 죽었으면’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다. 회사는 그의 성을 따 ‘곽세차업체’라고 불리기까지 했던 시점이었다. 발언 수위가 높은 정치적 글로 인한 구설수는 회사에 치명적이었다.
즉각 회사는 “해당 직원의 발언 수위가 지나쳤다는 것에 공감하고 개인 행동으로 회사에 끼친 피해를 책임지겠다는 해당 직원의 자진 퇴사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사과문을 올렸다. 사실상 퇴출당한 곽 씨는 이후 행보에서 점점 정치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유한국당 뉴미디어 팀을 돕기도 했고, 보수 성향의 연구소에서 활동했다고 알려졌다. 또 다른 보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영상을 만들 때 내레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곽 씨가 에어비앤비 사업을 권유하는 대화 내용.
사람들의 말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지만 비교적 암호화폐 초기 시장일 때 관심을 둔 만큼 그도 한몫을 챙겼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피해자 B 씨는 “워낙 암호화폐 시장이 좋을 때고 그땐 누구나 돈을 벌었기 때문에 돈을 번 게 맞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 입으로는 7억을 벌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실제로 돈을 많이 벌었는지 아닌지는 계좌를 본 사람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씀씀이는 훨씬 커졌다. 음식이나 파티, 차량, 시계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포스팅을 자주 올렸다. 다른 유명인과 어울리는 사진도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람들은 그의 행보를 보며 아무 의심 없이 명문대생, 금수저, 성공한 투자가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됐다. 그는 이런 이미지를 활용해 여러 여성에게 접근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인플루언서가 고가 명품 시계를 자랑하듯 올리면서 곽 씨가 사줬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비싼 음식을 곽 씨가 사줬다고 또 다른 인플루언서가 글을 썼다. 또 다른 날은 바 전체를 빌려 젊은 창업가들과 파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주머니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면 의심의 시선도 많아진다. 돈을 그렇게 벌었다고 했지만 15만㎞ 타던 소형 외제차는 바꾸지 않았다. 곽 씨가 정품이라고 하고 다니던 고가의 시계와 똑같은 시계를 찬 사람과 만나는 일도 생겼다. 재미 삼아 비교를 해보다 가짜인 게 들통났다. 곽 씨는 “티 많이 나? 이거 짭(가짜) 중에선 최고품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8년 초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호화스러운 생활을 자랑하던 곽 씨가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면서다. 2018년 1월 곽 씨는 Y팀 멤버였던 J 씨에게 “어머니가 아프시다.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당시 암호화폐 시장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현금이 묶여 있다고 생각한 J 씨는 선뜻 2100만 원을 곽 씨에게 입금한다. 2월에도 곽 씨는 J 씨에게 “암호화폐에 더 투자해야겠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J 씨는 다시 2000만 원을 추가로 송금한다.
4월 이번에도 Y팀 소속 K 씨에게 접근한 곽 씨는 “어머니가 병환이 있다. 학창시절 받은 대출 상환일도 임박해 어렵다”며 3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호소했다. K 씨는 부유하던 곽 씨 모습을 생각해 당일 바로 3000만 원 가치의 비트코인을 전송한다. 얼마 뒤 곽 씨는 ‘P 암호화폐의 ICO에 참여하고 싶다’며 1000만 원을 추가로 빌려달라고 했다. K 씨는 이번에 이더리움으로 1000만 원을 전송했다.
7월 곽 씨는 B 씨에게 접근해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어머니가 대장암 4기’라며 “내가 이런 얘기를 다 하네요. 까놓고 얘기해서 5000만 원 빌려줄 수 있느냐”라고 했다. B 씨는 ‘돈이 너무 크다며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곽 씨가 에어비앤비 사업을 권유하며 제시한 사업계획서. 단속을 피하는 방법을 적어뒀다.
B 씨에게 접근하면서도 곽 씨는 K, J 씨에게 상환을 위해서 에어비엔비(Airbnb) 사업을 해보려고 한다며 “연이율 20% 혹은 수익의 20%를 주겠다”고 말한다. 방을 20개 이상 돌린다면 1달에 1600만 원 이상 수익이 날 수 있다며 권했다고 한다. 투자를 권유받은 K 씨가 “(에어비앤비가 한국에서 불법이라서) 이거 단속 돈다는데”라고 말하자 곽 씨는 “단속 오면 ‘야 이거 한국에서 법 제정이 안 됐다’고 적당히 잘 말하면 된다. 회색영역이다”라고 설득했다.
S 씨도 곽 씨에게 이같이 권유받았지만 거절했다. 하지만 곽 씨는 오히려 “S 씨가 나한테 돈 넣겠다고 했다”는 거짓말을 K와 J 씨를 설득하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 B 씨에게도 병원비와 별개로 ‘에어비앤비 사업을 해보겠다. 5000만 원을 투자해 달라’며 ‘부담되면 월에 1000만 원씩이라도 좋다’고도 했다. B 씨는 투자를 고민하다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에어비앤비 제안은 확인된 사람만 최소 5명 이상에게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8월 곽 씨는 소셜미디어로 알던 L 씨에게도 돈을 요구했다. 곽 씨는 과거 L 씨에게 암호화폐를 추천했다가 해당 암호화폐가 급락하며 큰 손실을 보게 했다. 이에 미안함을 토로하며 “내게 돈을 빌려주면 투자해 불려주겠다. 3주 안팎의 시점에 갚겠다”고 했다. L 씨는 곽 씨에게 3000만 원을 빌려줬다.
L 씨에게 투자 제안이 먹혀들었기 때문인지 에어비앤비 제안이 먹히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시 암호화폐 쪽으로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8월 말 B 씨에게 곽 씨는 “코인 도박 사이트 바XX 사이트를 만든다”며 “12월 31일까지 원금을 보전하고 발생한 수익금으로 이자 25%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5000만 원을 요구한다. 9월 중순 결국 B 씨는 5000만 원을 곽 씨에게 보낸다.
9월부터 곽 씨는 더욱 빈번하게 대출이나 투자를 요구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상환일이 다가와 변제요구를 독촉하면 ‘더 크게 갚겠다’는 한마디로 일관한다.
L 씨는 곽 씨가 3주가 지나도 갚지 않자 “투자한 암호화폐 하락으로 투자금액이 반토막났다. 초기 약속한 변제시점이 지났다는데 왜 갚지 않느냐”고 말했다. 곽 씨는 “원금 보전을 해줄 텐데 무슨 걱정이냐”며 “내부 정보를 받았는데 곧 상승한다”고 변제를 연기했다. 10월 L 씨가 두 차례 변제를 요구했지만 곽 씨는 ‘12월 중순에 두 배로 갚겠다’며 재차 변제를 거부했다.
12월 곽 씨는 지인들에게 “코OO 거래소 대표와 친해 내부 정보를 받기로 했다. 무조건 10배 먹는 판이다”라고 소개했다. 여기에 곽 씨는 투자하면 약 30일 이내 상환, 수익금의 50% 분배도 약속했다. 곽 씨에게 1억을 요구받은 A 씨는 1000만 원을, C 씨는 4000만 원을 이체했다. S 씨는 계속되는 요구에도 돈을 빌려주지 않다가 곽 씨에게 생활비조로 300만 원을 이체했다.
12월 31일이 됐다. B 씨의 이자까지 포함한 돈 6250만 원의 변제기한이 다가왔지만 갚지를 못하자 곽 씨는 본격적인 돌려막기에 나선다. 일단 S 씨와 K 씨에게 ‘부모님이 부동산 투자를 하는데 일시적으로 현금이 없다’며 6250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또 곽 씨는 C 씨에게도 ‘카드론을 써서라도 빌려달라’고 했다. C 씨는 고민 끝에 거절한다.
1월부터는 본격적인 상환 요구에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변제 요구에 곽 씨는 “몸살 및 수면제로 연락을 못 받았다”거나 “코OO 거래소가 자신의 생일에 맞춰 상장공지를 하고 가격이 상승하면 갚겠다”, “부모님이 부동산 갭투자의 마지막 물건을 매도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채권자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했다. 곽 씨가 일관되게 유지한 건 “당신에게밖에 빌리지 않았다”라는 말이었다.
1월 말 A 씨와 B 씨가 “곽 씨가 돈을 빌려가 안 갚는다”는 대화가 우연히 나왔고 서로 “너도?”라고 답을 하면서 채권자가 혼자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2월이 되자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과 연락이 끊기기 시작한다. 연락을 끊은 시점은 채권자마다 다르다. 1월 말이 되면서 반절 정도 끊겼다. 2월 초 다른 사람보다 친분관계가 두터웠던 A 씨와 B 씨 그리고 곽 씨가 서울 강남 모처에서 만나 ‘어떻게 상환할 것이냐’고 물었다. 곽 씨는 ‘매달 일정액씩 상환하겠다’고 답했다.
곽 씨와 피해자의 카톡 내용. 곽 씨는 계속 상환이 힘들다고 하고 있다.
곽 씨가 사라지고 피해자가 모여 얘기를 나누자 진짜 정체가 드러났다. 앞서 곽 씨가 사줬다며 올라온 시계 사진은 곽 씨가 “재밌잖아. 한 번 그렇게 올려줘”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올린 사진이었다. 그가 친분이 있다며 소개한 사람들 다수가 사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곽 씨와 만났다는 아무개 씨는 “그가 페이스북에서 유명한 기자를 안다면서 성도 틀리게 말하더라”고 얘기했다.
그가 ‘Y팀을 이끌고 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었다. Y팀 멤버들은 그가 세차업체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나오고 할일이 없자 사무보조 정도로 썼다고 한다. 다만 그가 자존심이 세고 허세 부리는 걸 좋아해 소셜미디어에 ‘내가 이끈다’라고 해도 제지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한다.
곽 씨가 말한 명문대도 사실이 아니었다. K 대 경영학과를 다녔다고 알려진 곽 씨는 평소에 “학벌이 중요하다.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는 이유다”라거나, “(서울 중상위권 대학을 다니는 지인에게) 형은 그래도 나와 말은 통하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말한 것처럼 K 대 본교가 아닌 지방 캠퍼스를 다녔고 그마저도 중퇴했다고 한다.
곽 씨는 주변에 자주 스카이 다이빙이 실제 취미인 S 씨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취미도 ‘스카이 다이빙’이라고 말했다. 스카이 다이빙이 최근 재벌 3세 등 부유층이 즐기는 취미라며 “형도 해봐”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20번을 뛰어내려 조교 없이 혼자 뛰어내릴 수 있는 자격도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S 씨는 “곽 씨는 스카이 다이빙은 커녕 비행기에도 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아무개 씨는 “‘연고전이 아니라 고연전이죠’, 유명 인사를 두고 ‘K 대 선배님이죠’ 등 진짜 K 대 다니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말을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K 대 부심이 강했는데 호랑이 문신도 그런 의미에서 새기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지방 캠퍼스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한번 모르는 척 무슨 말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세 보여 차마 물어보진 못했다”면서 “진짜 세상 부유한 척, 혼자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 다른 세상 사는 것처럼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내는 것)인 척은 다 했다”고 덧붙였다. 곽 씨가 평소 여성들에게 접근할 때 자신의 K 대 야구점퍼를 자랑하듯 보여주며 어필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곽 씨와 3년 전 만났다는 박 아무개 씨도 과거 만남을 회상하기도 했다. 박 씨는 “3년 전 곽 씨를 만났는데 K 대를 다닌다고 했다. 같은 학교라 반가워서 ‘누구 아느냐’고 질문을 했는데 그 전까지 K 대 얘기를 열심히 하던 분이 잘 모른다고 했다. 워낙 큰 과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었서 ‘반은 어디였냐’고 묻자 다시 어물어물 대답을 못했다. 그때는 자퇴생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본인은 아무개 씨와 친하다, 누구와 안다고 해서 그럼 같이 뵙자고 했더니 다시 대답을 잘 못했다”고 설명했다.
B 씨는 ‘이제 곽 씨의 정체를 모르겠다’며 “어머니가 대장암이 맞는지 얘기했던 게 뭐가 사실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A 씨는 “자랑하던 인맥도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 피해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이름을 대고 다른 사람과 친해지려고 시도했다”며 “나와 정말 친했던 건지 아니면 페이스북에 친한 척 올려 다른 사람에게까지 사기치려고 했던 건지 이제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배신감만들 뿐이다”라고 털어놨다.
‘일요신문’은 곽 씨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취해봤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피해자들이 수금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고소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는 A 씨는 “금전적인 피해보다는 리플리였다는 게 더 큰 충격이다. 고소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