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이 단독 확보한 삼성물산의 ‘율현터널 터널기둥 보수 및 보강계획 제출’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터널 좌굴에 따른 보강계획을 2015년 4월 27일 최종 승인받았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그보다 4일 전인 23일에 이미 좌굴 발생 기둥을 잘라내고 휘어진 철근을 이어 붙인 것으로 확인됐다. 수도권고속철도 노반 5, 6-1공구 감리단이 2015년 4월 27일 “시공계획을 검토해 승인하니 시공시 정밀시공이 될 수 있도록 관리를 철저히 해달라”고 승인한 것과 대조된다.
수도권고속철도 율현터널 내에서 발생한 기둥 좌굴 모습. 사진=정의당
율현터널은 총연장 52.3㎞에 달하는 터널이자 시속 300㎞ 이상 고속철도 터널로는 세계 최장으로 꼽힌다. 총사업비만 3조 1197억 원이 들었다. 삼성물산은 전체 구간 중 동탄역 부근 5·6-1 공구 2.6㎞를 시공했다. 당시 해당 구간은 설계변경이 15회 이뤄졌으며, 당초 1027억 원이었던 공사비는 3200억 원으로 47% 증액됐다. 터널 굴착 등 시공 단계에서 단층파쇄대 출현 등 불량한 지반 조건으로 설계 변경 시공이 불가피했다는 게 국토교통부 설명이다.
업계에선 2016년 12월로 예정된 수도권고속철도 개통을 맞추기 위해 삼성물산이 보강계획 승인보다 앞서 중앙 기둥 좌굴 보강에 나선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실제 삼성물산이 주장한 동탄역에서 수서역 방향 2아치(Arch) 10번 중앙 기둥 좌굴은 터널이 굴착 중이던 2015년 3월 발생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한 전문가는 “보충 조치를 의미하는 보수의 경우에는 일부 승인보다 먼저 진행하는 경우가 있지만, 더 튼튼하게 하는 보강은 승인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율현터널 기둥 좌굴 이후 보강계획 승인이 나기 전부터 공사를 시작해 당초 설계와 달리 기둥과 기둥 사이 공간을 모두 메우는 방식으로 보강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탄역에서 수서역방향 확폭 2아치 터널 중앙 기둥(59m)은 4m 기둥과 1m 통로로 설계됐다가 통로를 모두 메우는 방식으로 보강됐다. 기둥 좌굴 원인이 터널 상부에서 내리는 하중을 버티지 못하면서 발생한 만큼 기둥과 기둥 사이 빈틈을 막아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힘을 막은 것.
문제는 삼성물산이 발 빠르게 보강계획을 세우고 공사를 진행하면서 절차상 허점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삼성물산은 좌굴 이후 변경설계를 요청하고 보강계획을 내면서도 변경설계에 대한 외부 기술자문을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철도건설과 같은 대규모 공사에서 보강이 필요한 문제가 발생해 설계를 변경할 경우에는 기술자문을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기술자문 없이 비상주 감리 전문가의 검토의견서로 대체해 좌굴을 보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 2월 국토교통부 철도건설과가 진행한 현장점검 결과 한 전문가는 ‘피복콘크리트를 절삭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판단된다’는 자문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강관을 먼저 보강한 이후 중앙 기둥을 절삭했다”면서 “일부 절차상 문제가 있었지만, 터널은 굴착 단계가 가장 위험한 만큼 안전을 위해 취한 신속한 조치로 봐 달라”고 했다.
일각에선 좌굴 원인에 대한 파악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1월 현장을 둘러본 정의당 공정경제민생본부는 지난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율현터널 기둥 좌굴 및 균열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콘크리트 타설과 철근 배근 문제를 지적했다. 이혁재 정의당 공정민생본부 집행위원장은 “좌굴 원인에 대해 명백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강이 진행됐다”면서 “정부 합동부패예방감시단에 시설물정밀안전진단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