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점증된 한일 갈등의 뿌리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이고,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이 평화헌법 개정이다. 자위대가 아닌 정식 군대를 보유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든다는 것이다.
여론을 결집하는 방법으로 인접국을 적국으로 만들어야 효과적인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부추긴다.
우경화의 배경에는 ‘잃어버린 20년’의 일본 경제침체기에 겪은 좌절감도 있다. 이 시기에 일본은 제2 경제대국의 지위를 중국에 빼앗겼다. 경제적으로 한중관계가 한일관계를 압도하게 되자 일본은 한국을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인접 적국’으로 만들려는 형세다. 한국에서의 징용자 재판, 초계기 갈등, 문 의장 발언 등이 좋은 빌미가 됐고, 북한의 핵개발은 안보위기를 부추겨 개헌의 명분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같은 아베의 계략은 일본경제의 회복조짐을 타고 일본 사회에서 먹히고 있다. 아베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50%대를 유지하면서 메이지(明治), 쇼와(昭和) 시대를 통틀어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되려하고 있다.
오는 4월 지방선거와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 개헌도 가능하다. 이 같은 아베의 전략을 묵시적으로나마 견제를 해 온 것이 아키히토(明仁) 일왕이다. 연호인 헤이세이(平成)가 ‘평화의 달성’을 뜻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는 재위 30년 동안 평화를 많이 얘기했다. 역사학자들이 그의 재위 기간을 ‘헤이세이 평화주의시대’라고 평가하는 까닭이다.
오는 4월 30일 퇴위하는 그는 지난 2월 24일 재위 30주년 마지막 기념식에서도 “평화를 희구하는 국민들의 의지로 근·현대에서 처음으로 전쟁을 경험하지 않는 시대를 가졌다”면서 “성의를 갖고 타국과의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요구된다”고 회고했다.
그는 특히 한일관계와 관련,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통석(痛惜)의 념(念)’을 표시했고, 일왕가의 백제 혈통을 밝히기도 했다. 대부분의 한국 대통령들은 방일 때 그를 예방했고, 그의 방한을 초청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그의 방한이 성사될 뻔했다.
74년간 국교가 단절됐던 미국과 북한도 만났다. 국제화 시대의 개방 사회인 한국이 누군가에게 74년 동안 금단의 땅이 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여당 내에서 드물게 일본과 소통할 수 있는 경륜의 문 의장이 일왕의 사과를 요구하기보다 그를 초청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가 왔더라면 맨 먼저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을 잡지 않았을까?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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