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3연임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사진=KEB하나은행 제공
이들에게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강연회 전날 오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감독원 은행 담당 부원장보와 일반은행검사국장 등은 하나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 멤버인 윤성복 이사회 의장, 백태승, 차은영 사외이사 등 3명을 긴급 면담했다. 금감원은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함 행장 3연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바로 다음날 윤석헌 금감원장과 함 행장이 만나게 된 것이다.
이날 강연회에서 윤 원장과 함 행장은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별다른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함 행장은 강연회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 없이 행사장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함 행장은 하나금융 임추위에서 스스로 3연임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곧바로 고향 부여로 내려갔다.
이날 하나금융 임추위는 회의를 열고 차기 은행장 후보를 2명으로 압축한 뒤, 이 가운데 한 명을 오는 21일 주주총회에서 행장으로 선임할 계획이었다. 금융권에서는 함 행장이 1차 후보에 포함되고 결국 3연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결과적으로 금융당국이 함 행장 연임에 제동을 건 모양새가 된 셈이다.
# 금감원 “해야 할 일 했다”
함 행장 연임 포기 직후 업계 일각에서 “금감원이 과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옮겨 붙었고,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은 최근 “3월 임시국회에서 윤 원장을 불러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이에 맞서 여당 측 의원들이 금감원 판단에 힘을 싣고 맞불을 놓으면서 정쟁으로도 번지고 있다.
금감원은 논란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함 행장의 현재 상황을 볼 때 금융당국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강조한다. 함 행장은 지난해 6월 채용비리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돼 8월부터 재판을 받고 있다. 지인으로부터 아들이 하나은행 신입 공채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인사부에 잘 봐줄 것을 지시해 서류 전형 합격자 선정 업무를 방해한 혐의와 공채를 앞두고 남녀 비율을 조정해 남자를 많이 뽑으라고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올해 말쯤 1심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재판을 받고 있는 은행 수장이 법정을 오가며 경영하는 건 부담도 크고, 유죄가 선고되면 지배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우려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함 행장의 연임 강행은 은행 경영에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라며 “다른 은행의 경우 스스로 불안 요인을 걷어내고 큰 이슈를 처리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다른은행’은 우리은행이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채용 비리에 연루돼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은행장에서 물러났다. 이 전 행장은 지난 1월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지만, 이후 우리은행은 숙원사업이었던 금융지주를 출범했다.
금감원은 또 금융이사 사외이사 면담은 금감원이 일상적으로 진행하는 업무 가운데 하나라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 2015년부터 주요 금융회사 지배구조 이슈 등과 관련한 사외이사 면담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1월에도 신한금융지주 이사진을 만나 조용병 회장 유고시 승계 계획을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현재 채용비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감독당국으로 해야 할 일을 했다”며 일각에서 주장하는 관치금융 논란을 일축했다. 사진=연합뉴스
하나금융 측은 금감원의 압박 등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1년 전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셀프 연임’ 논란이 불거지면서 금감원과 갈등을 빚었던 때와는 크게 다른 분위기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당시 금감원장은 박근혜 정부 ‘창조 경제 1호’기업 특혜 대출 의혹 등에 대한 검사가 진행 중이고, 금융지주 CEO들의 선임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연임을 사실상 반대했다. 하지만 하나금융 측은 금감원 회장 선임 절차를 계획대로 진행했고, 김정태 회장은 3연임에 성공했다.
반면 이번 함 행장 연임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앞서의 금감원 임원과의 면담 과정에서 하나금융 사외이사 측은 금감원의 우려에 ‘공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면담 과정에 대해 잘 아는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 임원들은 이 자리에서 함 행장의 ‘법률 리스크’를 강조하고 사전에 사외이사들이 회사 등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제공 받았는지를 확인했다”며 “사외이사진은 이번 사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는 했다. 행장 자리가 공석이 될 경우 직무대행 선임과 같은 계획은 마련했지만, 함 행장이 재직하는 동안 발생하는 경영안정성, 신뢰도 훼손 등 리스크에 대한 마땅한 대비책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감원은 하나금융이 추진하는 해외 진출 사업과 관련해서도, 현지 국가에 경영진 법률 리스크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만큼 분명한 대비책이 있어야한다고도 강조했다”며 “그동안 하나금융 사외이사들은 다른 은행 채용비리 사건들과 비교하면 함 행장의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면담에서 금감원의 설명에 외압이나 압박을 느꼈다기 보다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함 행장은 지난 4일 사내 이메일을 통해 행장 후보직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함 행장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은행 미래를 고민했고, 지난해 초부터 구체적으로 조직의 세대 교체와 차세대 리더에 대해 많은 검토를 해왔다”며 “새로운 은행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의 안정적 승계라는 하나금융그룹의 훌륭한 전통을 이어갈 수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외부 시각과 관계없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함 행장의 ‘고별사’로 이번 논란은 가라앉는 모양새다. 금감원은 앞으로도 금융사 이사회와 소통을 이어갈 계획이다. ‘소통’에는 지배구조에 대한 의견도 포함돼 있다. 금융사는 국민의 예금으로 운영되고, 주주도 있는 만큼 감독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자유한국당은 이번 함 행장의 연임 포기는 일종의 ‘금융권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3월 임시국회 때 금감원장을 상대로 집중 추궁하겠다고 나서면서 여전히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한편 하나은행은 차기 행장 후보로 지성규 글로벌사업그룹 부행장과 황효상 KEB하나은행 부행장을 복수 추천했다. 이후 임추위는 지성규 부행장을 차기 은행장 후보로 최종 추천했다. 지 후보자는 오는 3월 21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결을 거치면 차기 행장에 오르게 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