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일요신문] 김현술 기자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돼 3~5월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3.1운동은 신분, 사상, 종교를 넘어선 우리민족의 독립과 자유의 투쟁이었다. 또한, 3.1운동은 4월 11일 임시정부 설립으로 이어졌고 비로소 헌법이 만들어지게 됐으며, 헌법에는 모든 권력의 주체가 국민임이 명시됐다.
2019년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3.1운동은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3.1운동은 종교를 넘어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신분을 넘어서 하나가 된 일대 거사라고들 한다. 3.1운동 이후인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임시정부는 헌법을 제정하고, 헌법에는 그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지향했던 나라, 조선이 원했던 나라가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올지는 알 수 없다. 100년 전에는 어떠했을까? 당시에 거리에 나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 일본헌병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2천만 우리 국민들은 총칼 앞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1500여명이 넘게 죽고, 2만여 명 가까이 부상을 입었는데도 3월에서 5월까지 계속 됐다. 무엇이 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총칼의 위협을 넘어서게 했을까?
1910년 황제가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넘기더니, 일본이 왕이 돼 거리에서, 학교에서,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곳에서 걸핏하면 잡아가고, 죽이고 때린다. 쌀도 빼앗고, 산에서 긁어다 때던 나무도 빼앗고, 농사에 필요한 물도 빼앗는다. 나중에는 말도 빼앗고, 이름도 빼앗았고, 거의 모든 물자를 빼앗더니 문화 또한 착실하게 뭉개버렸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는데, 나라를 내 준 황제가 죽었고, 황제가 준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국민이 일어섰다. 독립을 선포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황제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고 선언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3.1운동은 위대한 평민의 거사였다. 한 줌도 안 되는 양반의 세상에서 90퍼센트의 평민이 상놈이 아니라 국민이 되기 위한 거사였다. 대한독립만세는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는 말의 다른 버전이었다. 황제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를 원했던 평민의 외침. 민주주의를 원했던 평민의 바람이 일으킨 폭발력이 전국으로, 전 세계 모든 동포에게로, 그리고 3월에서 5월로,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게 했다. 반상을 뒤집은 평민들이 선언한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유민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서 첫 문장의 키워드는 그래서 ‘독립’과 ‘자유’다.
마치 현재완료형처럼 자유민들은 독립이 됐다. 독립된 나라는 정부가 있고, 헌법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임시정부가 만들어지고, 여느 나라처럼 군대도 만들고, 행정부도 만들고, 국회도 만든다. 국회는 최초로 헌법을 만들어서 제일 앞장에 반상이 아닌 국민의 정부임을 명시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주인이 바뀌고, 그것이 법으로 인정됐던 것이다. 3.1운동의 위대함은 평민의 거사였다는 점과 실제로 상해임시정부와 헌법제정을 통해 민주공화국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독립기념일이다.
이러한 3.1운동에는 숨은 주역들이 있다.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몽양 여운형 선생이다. 신한청년당을 조직해서 파리로 보내고, 동포들이 있는 곳곳으로 보내 김규식을 응원하자고 제안한다. 3.1거사의 기폭제 역할을 한 몽양 선생과 신한청년당은 100주년을 맞으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손병희 선생도 있다. 선생은 국내 3.1거사의 여러 계통성을 하나로 통일시킨 주역이다. 자본금도 거의 선생한테서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