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지난해 연간 기금운용 수익률 마이너스(–) 0.92%를 기록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10년 만에 마이너스 수익률이자 1988년 기금 설립 이후 최악의 운용 실적이다. 2008년 당시 수익률은 –0.18%였다. 지난해 운용 손실 규모는 5조 9000억 원 달했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가장 많이 깎아 먹은 건 국내 주식으로, 수익률은 –16.77%를 기록했다. 대체투자에서 12% 가까운 수익률을 냈음에도 손실을 막지 못했다. 전체 자산에서 대체투자의 비중은 11.8% 수준인 반면 국내를 포함한 주식 비중은 32%에 이르기 때문이다.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본사 전경. 연합뉴스
국민연금은 배당 확대 요구를 통해 국내 주식에서 기록한 손실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배당을 늘리라는 의견을 개진하는 동시에 배당 관련 정관 변경을 직접 제안했다. 국민연금이 배당 관련 정관 변경을 요구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배당 성향이 낮을 시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실제 국민연금은 지난 2월 짠물배당으로 유명한 남양유업에 ‘배당정책 심의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정관 변경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당 확대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국민연금 수익률 회복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이 남양유업에 정관 변경 등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나서자 현대그린푸드 등 배당 성향이 낮았던 기업들이 배당 성향을 높이는 등 선제 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는 지난 2월 말까지 결산 배당을 공시한 상장사는 지난해 전체 결산 배당 상장사의 56%에 불과함에도 이미 지난해 전체 현금배당액 27조 4310억 원을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금융업계 한 전문가는 “증권 시장 변화가 크지 않고 국민연금 자산 배분 역시 비슷했던 만큼 기업 배당이 국민연금의 수익률 회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를 담당했던 책임투자팀을 수탁자책임실로 격상하고 인력 강화까지 진행하고 있어 압박을 느끼지 않을 기업은 없다”고 했다.
실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정관 변경 등을 추진하는 부서인 책임투자팀을 지난해 수탁자책임실로 격상, 9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자산 배분을 담당하는 투자전략팀 인원이 6명에 불과한 것과 대조된다. 올해 채용 계획에서도 투자전략팀은 3명인 반면 수탁책임실은 책임투자팀과 주주권행사팀 각각 2명, 3명 총 5명을 뽑을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는 수탁자책임실 인원을 올해 안에 30여 명까지 확대한다는 방침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무기로 한 배당 확대 요구가 단기적인 효과를 내는 데 그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의 돈을 임시로 운용하는 곳이니만큼 잘 굴려서 더 큰 이익으로 국민에게 돌려주는 게 국민연금의 역할인데 단기적 성과를 통한 비판 벗어나기에만 급급한 모양새”라며 “기금 수익성의 90% 이상을 좌우하는 자산 배분을 통한 대체투자 등 장기 투자 방안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전부터 캐나다연기금(CPPIB)과 같이 수익률이 높은 대체투자로 자산을 배분해야 한다는 얘기는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CPPIB는 자산 내 주식 비중이 국민연금과 비슷함에도 대체투자 중심의 투자를 진행, 지난해 8.4%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반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대체투자 비중을 12.5%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도 못했다. 국민연금은 2006년 사모투자와 부동산투자, 인프라투자를 포함한 대체투자 자산 비중을 늘리는 자산 배분을 진행한 이후 10년 넘게 다변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한 전문가는 “국민연금도 자산 배분 및 대체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또 늘리고 싶어 하지만, 기금운용본부가 전북 전주시로 옮긴 이후 전문 인력이 대거 유출됐다”면서 “고위험투자로 분류되는 대체투자는 우선 전문 인력을 중심으로 투자 정보를 얻어 와야 하는데 국민연금은 현재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정원은 278명이었지만, 실제 근무 인력은 240여 명에 불과했다. 2019년 정원이 280명으로 늘었지만, 지난 2월 기준 근무 인력은 여전히 240여 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채용한 만큼 다시 떠나 정원 미달 상태”라고 했다.
안효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 2월 연간 기금운용 수익률 설명회에 나와 “대체투자가 목표를 하회한 것은 사실”이라며 “실질적인 직원 처우개선을 이끌어 우수인력을 유치하고 대체투자 확대를 위해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배당수익률은 다른 나라 비해 낮은 편이라 배당수익률을 통해 수익률이 향상될 가능성은 크다”고 덧붙였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사전공개 첫 번째 기업은 어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사전 공개 방침을 정하면서 첫 번째 대상 기업 선정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주주총회 후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개해왔지만,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후 주주총회 전 의결권 행사 방향을 공개하기로 했다. 의결권 행사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게 국민연금의 설명이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의결권 행사 사전 공개 대상 기업은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10% 이상이거나 보유 비중이 1% 이상인 100여 개 기업(지난해 12월 말 기준)이다. 이에 3월 중 주주총회를 앞둔 기업 중 LG하우시스(12월 말 보유지분 12.63%), 현대글로비스(10.19%), 유니드(11.28%), 신세계 I&C(11.32%)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사전 공개 첫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동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