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경수 경남지사가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사진 고성준 기자
김 지사는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지난 1월 30일 법정 구속됐다.
판결 이후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사법농단 세력의 반격’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성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로 있으면서 수사기록과 영장청구서 등을 내부 보고한 혐의로 지난해 9월경부터 피의자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이후 성 부장판사는 김 지사 지지자들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법원 앞에서는 한동안 1인 시위가 이어졌고, 항의전화도 빗발쳤다고 한다. 지지자들이 성 부장판사 앞으로 장례식장에 보내는 조화를 보내기도 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성 부장판사를 향해 “적폐 판사는 오함마로 대X통을 부셔버려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상에서는 성 부장판사 본인에 대한 신상털기는 물론이고 가족들과 관련된 정보도 공개됐다. 성 부장판사를 응징해야 한다거나 삼족을 멸해야 한다는 등의 게시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요즘 법원 내에서는 이른바 사법농단 세력으로 지목된 사람들과 말도 섞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하더라. 물론 사법농단이 있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할 일이지만 단순한 친소관계까지 문제 삼으니 문제”라고 했다.
일례로 민주당은 성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비서실 소속 판사로 근무한 이력을 적극 부각시켰다. 일부 김 지사 지지자들과 여권 인사들은 양 전 대법원장과 성 부장판사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온라인상에 사진을 게시하며 ‘성 부장판사가 양승태 키즈라서 김경수를 구속시켰다’는 논리를 폈다.
민주당은 판결 이후 법률전문가들을 앞세워 판결문 분석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경수 지키기 범국민 홍보 문화제’가 열렸을 땐 친문핵심 전해철 의원 등이 참여해 김 지사 무죄를 주장했다.
민주당이 김경수 구하기 총력전에 나선 것은 정권 정당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지사 유죄 판결 이후 야권에서는 ‘여론조작 대선이라면 정권 정당성이 없다’며 대선무효 주장까지 나왔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여당이 나서서 판사를 비판하다니 개탄스럽다. 유신시절에 국회를 입법부가 아니라 통법부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사법부를 통판부로 만들려 하는 거 아닌가”라며 “여당은 인사권을 쥐고 있지 않나. 야권이 항의하는 거보다 판사가 느낄 압박이 훨씬 심할 거다. 승진은 물 건너간 거 아닌가. 사직하고 변호사 개업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정권에 찍힌 변호사에 사건 의뢰를 하겠나. 로펌에 들어가려고 해도 내가 로펌 대표라면 그런 인물을 영입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3심 제도지 않나.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항소심에서 다퉈야지 판사 개인에 대해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불이익을 당할까봐) 다들 공개적으로 말은 안하지만 ‘여당이 나서서 저럴 수 있나’ 경악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했던 성 부장판사는 인사발령으로 지난 2월 25일부터 서울동부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좌천성 인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서울동부지법 측은 “성 부장판사가 동부지법으로 온 이후에는 신변보호 조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법원 앞 1인 시위 등 신변위협 사례가 없었다고 한다.
김 지사 항소심 재판 주심 판사는 당초 신종오 판사였으나 법원 정기인사에 따라 대구고법으로 전보됐다. 새로 배정된 주심판사는 진보성향 우리법연구회 출신 김민기 판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음모론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법원 정기인사로 주심 판사가 변경되는 사례는 종종 있는 일”이라면서도 “요즘에는 전산으로 무작위 판사배정을 한다지만 판사들 중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몇이나 되나. 하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배정됐다고 하니 ‘확률적으로 이럴 수 있느냐’는 뒷말이 나온다”고 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 지사가 무죄판결을 받아도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라 무죄가 나왔다’는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보수성향 변호사 단체인 ‘자유를 수호하는 변호사들’은 성명서를 통해 “왜 하필 김경수 지사 사건을 이념편향성 논란이 있는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에게 맡겨 스스로 재판 공정성을 의심받도록 하느냐”고 반발했다.
하지만 한 법조계 인사는 “성 부장판사를 사법농단 세력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잘못됐다면서 김 지사 항소심 주심이 우리법연구회란 이유만으로 프레임을 씌워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와 드루킹 항소심이 각각 다른 재판부에 배당된 것도 논란거리다. 김 지사 항소심은 서울고법 형사 2부에 배당됐고, 드루킹 김동원 항소심은 형사 4부에 배당됐다. 1심이 공범관계라고 적시한 두 피고인을 각각 다른 재판부에 배당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공범관계에 있는 두 피고인을 따로 재판하면 판결 결과가 일관성을 잃을 우려가 있다.
게다가 성 부장판사는 지난 3월 5일 사법농단 추가 기소자 명단에 올라 야권이 반발하고 있다. 야권은 “김경수 구속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이 100명이 넘는다고 하지 않나. 성 부장판사가 사법농단 혐의로 수사를 받긴 했지만 주요 혐의자는 아니었다”면서 “헌법재판소 내부 자료를 2년간 322건 대법원에 정보보고한 헌재 파견 판사는 불기소하고, 수사기록을 10차례 내부 보고한 성 부장판사는 기소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저도 검사 출신이지만 기소한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검사 출신인 주광덕 한국당 의원은 “성 부장판사 혐의가 명백했다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기소할 때 공범으로 기소했을 것”이라며 “이번 기소는 김경수 지사 판결에 대한 보복 기소로 볼 수밖에 없다. 성 부장판사를 기소함으로써 (김 지사 구속) 판결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사법농단 수사는 김 지사 재판 이전에 모두 완료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의 기소권 행사 역시 중요한 사법 작용인데 객관적 근거 없이 비난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사법농단에 책임이 있는 야당이 반성부터 해야 한다. (성 부장판사 기소를 문제 삼는 것은) 염치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개최했던 김 지사 판결문 분석 간담회가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야당이 만드는) 프레임에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다. 거기에 대해서는 답변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