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일까. 2014년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 또한 “그 시대로 돌아가 단 몇 초만이라도 장군님을 직접 보고 싶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배우가 느끼는 고통이 이 정도인데, 이제 27세인 연기자 고아성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고아성은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를 통해 1919년 3·1 만세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유관순을 연기했다. 그 작업을 시작하면서 고아성은 “무서웠다”고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마구 뛰었기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마침 3·1 만세운동 100주년이 맞물리고, 작품의 완성도 역시 탄탄해 ‘항거’는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2월 27일 개봉해 3월 1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7일 현재 누적관객 90만여 명을 모았다. 물론 개봉과 동시에 몇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들과 비교하면 그리 탁월한 성적은 아니지만, 제작비 10억 원의 저예산 흑백영화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뜨거운 열기가 짐작된다.
# “따뜻한 리더가 진짜 리더”
고아성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연기를 시작했다. 드라마 등을 통해 간간이 얼굴을 비추던 그가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은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다. 한강에 움튼 괴물에 잡혀가고도 특유의 기지와 용기를 발휘하는 송강호의 중학생 딸 역을 통해 존재를 알렸다. 2013년 봉준호 감독, 송강호와 또 다른 영화 ‘설국열차’를 함께하면서 역량을 키웠다. 연기자로 활동하면서도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학에서 연기 전공을 택하는 대신 성균관대 심리학과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쉬운 길을 마다하는 고아성의 도전은 이번 ‘항거’로도 이어진다. 20대 배우가 선뜻 소화하기 어려운 역사의 인물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1919년 충남 병천의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뒤 겪은 1년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비좁은 감옥에 육체가 갇혔어도 영혼만큼은 자유로웠던 유관순과 여옥사 8호실에 함께 갇힌 여성 항일운동가들의 이야기다.
울분에 찬 시대를 지극히 먹먹하게 그린 영화, 그 안에서 숨 쉬는 고아성은 소리 없이 강한 저력을 드러낸다. 그는 “일제강점기 배경의 시대극이지만 ‘주인공 대 제국주의’의 구도가 아니어서 더 반가운 영화”라고 했다.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100년 전 인물인 유관순을 스크린에 부활시킨 주역이지만 고아성에게 유관순은 “감히 손댈 수 없는, 엄청난 존재 그 자체였다”고 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공부도 했지만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는 그는 “그 무렵 ‘인간사에 완전한 진지함은 없다’는 플라톤의 글귀를 읽게 됐는데 평소 같으면 와 닿지 않았을 그 문구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고아성은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여 동안 ‘항거’ 촬영에 몰두했다. 예산이 그리 크지 않은 작품이라 촬영 기간도 다른 극영화와 비교해 짧았다. 집중적으로 준비하고 나선 촬영이었지만 “정신이나 마음가짐으로만 100% 표현할 순 없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고 돌이켰다.
“촬영하면서 유관순의 마지막 모습은 조금 달랐으면 했어요. 내면은 물론 외적인 변화까지 필요했으니까요. 감독님도 그러길 바랐죠. 제 선택은 금식이었어요. 마지막 모습을 담는 촬영을 앞두고 5일간 금식했어요. 유관순 열사를 단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충직하다’는 말이 적합한 것 같아요. 인간적인 의지, 끝내 놓지 않는 신념도 있고요.”
# “나의 10대 시절, 생각만 비대한 시기”
10대 때 이미 봉준호 감독의 영화 등을 통해 주목받은 고아성처럼 유관순 열사가 태극기를 들고 일제에 맞선 나이 역시 17살에 불과하다. 감옥 안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끝내 옥사한 때가 18살이었다. 영역은 다르지만 일찌감치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드러낸 과정은 고아성도 비슷하다.
“나의 10대 시절은 마음껏 행동할 수 없어서 생각만 비대해진 시기였어요. 오히려 성인이 되고나서 10대 시절이 뚜렷하게 다가오는 듯해요. 어른이 되니 좋아요. 실천을 하게 되니까.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인생의 또 다른 챕터에 접어든 기분입니다.”
어릴 때 활동을 시작해서인지 고아성이 ‘친구’로 부르는 이들의 나잇대는 다양하다. 또래인 배우 박정민과 친하고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과도 친구로 지낸다. 심지어 50대 배우 김의성 역시 나이를 떠나 그에겐 친구다. 이런 친구들 이야기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 그는 “‘어른 친구’가 많다보니 일찍부터 존경하면서 좋아하는 법을 배웠다”며 “특히 김의성 선배는 유교의식이 없는 편이어서 더 편하다”고 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