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흑표 사업은 1995년 ‘우리 손으로 만든 새 전차’를 목표로 시작됐다. 1959년 생산된 미국산 구형 전차들을 도태시키고 그 자리에 국내기술로 설계‧제작한 전차를 배치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다. 군은 청사진은 그린 지 15년 뒤인 2010년 계획을 확정했고, 총 3번에 걸쳐 각각 양산‧배치하기로 했다.
현재는 2차 양산 사업이 진행 중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2월 말 마지막 주행시험과 영하 32도의 저온 시동 시험 등을 끝으로 모든 검증이 끝난 만큼 순차적으로 야전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2차 양산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양산 물량 등이 포함된 마지막 3차 양산 방안도 최근 확정됐다.
최근 K2흑표 전차 2차 양산이 확정된 가운데, 100% 국산화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한강 도하 훈련하는 K2흑표 전차. 사진=연합뉴스
겉으로 보기에 문제될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K2흑표 사업은 군이 추진해온 무기 국산화 사업 가운데에서도 논란과 뒷말이 가장 많은 사업으로 꼽힌다. 실제 당초 군이 계획한 마무리 시점은 2020년. 사업이 여러 차례 지연된 끝에 이제 막 2차 양산이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확한 종료 시점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완전한 국산 전차도 아니다. 국산 명품이란 별칭이 무색하게도 핵심 부품에 해외 기술이 들어가 있다. 전차의 ‘심장’으로 불리는 파워팩(엔진+변속기)인데, 국산 엔진과 독일산 변속기로 구성됐다. K2흑표 1‧2차 양산분은 모두 ‘혼혈 심장’을 달고 달린다.
군의 처음 목표는 100% 국산으로 구성된 파워팩 탑재였다. 하지만 개발초기단계부터 최근까지 약 10여 년 동안 국산 파워팩, 정확히는 변속기 성능 미달 논란이 생산 계획의 발목을 잡았다. 사업 마무리 시점이 불투명해진 것도, 1‧2차 양산 전차에 혼혈 심장이 달린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3차 양산까지도 국산화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방위사업청은 최근 2차 양산을 재개하면서 “K2 전차 3차 양산 분에는 온전한 국산 파워팩을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방산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K2흑표 사업 전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3차 양산도 다를 게 없다. 국산화 사업은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S&T중공업 “군 요구 기준 가혹하다”
K2흑표 사업은 방위사업청(정부), 현대로템, 두산인프라코어·S&T중공업이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종 완성품을 만드는 체계 종합 업체 현대로템이 방사청과 계약을 맺고, 두산인프라코어와 S&T중공업이 협력업체로 현대로템과 계약을 맺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S&T중공업은 K2흑표 사업의 핵심 업체다. 파워팩 개발을 담당한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엔진을, S&T중공업이 문제의 ‘변속기’를 개발했다.
사실 S&T중공업은 국산 변속기 개발에 ‘성공’했다. 군의 개발 평가를 통과했고, 전력화 적합 판정도 받았다. 발목을 잡은 건 양산 평가다. 2016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여섯 차례 진행됐는데 한 번도 통과하지 못했다. 양산 내구도 평가에서 9600km를 고장 없이 달릴 수 있어야 했는데, 7110km에서 볼트 한 개가 망가졌다. 평가 기준에서 2490km 미달한 것이다. 그밖에 오일 순환펌프가 파손되거나 변속장치가 닳는 현상도 발견됐다.
S&T중공업은 “군이 제시한 기준이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내구도 시험 자체가 결함이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가혹하다는 얘기다. 실제 9600km는 전차 한 대가 폐기되기 직전까지 달리는 거리다. 방사청의 기준대로라면 전차가 일생 동안 한 번도 고장 없이 달릴 수 있어야하는 셈이다.
여기에 1‧2차 양산분에 장착된 독일산 파워팩은 이 평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도 S&T중공업이 반발하는 이유다. ‘해외 양산 실적’이 있어 이 평가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S&T중공업과 K2흑표 협력업체가 모여 있는 창원 방산업체, 일부 학계 관계자들은 독일산 변속기가 같은 조건으로 평가를 받았다면 통과가 불투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요신문이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방사청과 S&T중공업, 협력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1차 내구도 평가 시점부터 현재까지 양 측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 방사청은 기준(국방 규격)을 지켜야한다는 입장이고, S&T중공업은 현재 기준대로라면 3차 양산에서도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실전 배치된 K2흑표 1차 양산분과 오는 하반기 이후부터 진행될 2차 양산분은 ‘혼혈 심장’을 달고 달린다. 사진=연합뉴스
2차 양산이 약 2년 동안 지연되면서 S&T중공업은 ‘개점휴업’ 상태다. 일감이 없어 직원 120여 명이 지난해부터 순환휴직 중이다. 여기에 변속기 설계 담당자 등 핵심인력과 엔지니어 일부는 회사를 떠났다. S&T중공업 관계자는 “3차 양산이 확정되면 직원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내구도 평가를 통과할 품질 개선은 당장으로선 쉽지 않다.
지난해 말부터는 S&T중공업의 ‘원청업체’인 현대로템과의 소송전도 벌어졌다. 현대로템은 2차 양산에 S&T중공업의 변속기가 들어가지 않게 된 만큼 개발 선급금으로 지급했던 돈 등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S&T중공업은 현대로템의 요구에 반발하기 어렵다. 방사청이 K2흑표 2차양산 지연에 따른 ‘벌금’격인 지체상금을 현대로템에 부과해서다. 최초 부과 금액은 1조 원 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계약대로라면 방사청과 직접 공급계약을 맺은 현대로템이 지체상금을 내는 게 맞지만 사업이 지연된 앞서의 ‘과정’을 보면 현대로템으로선 억울할 수밖에 없다.
방사청이 사정을 감안해 지난해 11월 현대로템과 수정계약을 체결하면서 지체상금은 약 1500억 원 대로 줄었지만, 이 역시 현대로템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치다. 현대로템도 사업지연으로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했다. 현대로템과 방사청은 앞으로도 추가 협의를 할 방침이다. 그러나 결과에 따라 현대로템이 져야할 ‘책임’은 고스란히 S&T중공업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S&T중공업의 변속기 납품 실패 여파가 K2흑표 사업에 참여한 중소 협력업체들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S&T중공업과 변속기 개발 사업 계약을 맺은 창원 지역 중소협력업체들 역시 현대로템-S&T중공업 소송 결과에 따라 선급금을 토해 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미리 부품을 만들어뒀던 업체들은 납품도 하지 못하고 폐기물로 처리해야한다. 일부 중소업체는 2년 동안 겪던 자금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최근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K2흑표전차의 완전한 국산화는 전적으로 업체에 달렸다는 입장이다. 사진=연합뉴스
방위사업청도 S&T중공업 입장은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3차 양산 물량은 정해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정해지지 않았다”며 “국산화는 업체의 변속기 성능 개선 등 추이를 지켜보고 협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3차 양산 국산화가 전적으로 업체에 달렸다는 얘기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방사청으로서는 정해진 국방규격(기준)을 낮춰줄 수는 없다. 국산화 사업이고 업체 사정을 감안한다고 해도, 특정 업체를 상대로 기준을 완화해주는 건 특혜에 가깝다. 한 군 관계자는 “방사청은 이미 내구도 평가 과정에서 업체 측에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줬다. 그 이상의 다른 조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업체가 어떤 주장을하든 결과적으로 개발한 부품이 기준 미달인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나온 ‘진화적 개발론’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방사청이 덜컥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진화적 개발론은 처음부터 완벽한 무기를 만들 수 없으니, 일정 수준까지 개발한 뒤 조금씩 양산하면서 수정‧보완하는 방식이다. 2017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주장하면서 방산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사고라도 나면 책임은 온전히 정부에게 돌아간다. 실제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만든 헬기인 ‘수리온’은 진화적 개발을 거쳐 만들어졌는데, 지난해 7월 발생한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 여파로 수리온에는 ‘불량무기’ ‘방산비리’라는 딱지가 붙었다. 마린온은 수리온을 개조한 헬기다.
이에 대해 창원지역의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군이 수출까지 염두하고 수십 년 동안 추진하는 무기 국산화 사업에서 우수한 품질을 요구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다만 K2흑표 사업은 결국 국산화가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실적으로 S&T중공업이 품질을 개선하거나 방사청이 한 발 물러서는 식의 드라마 같은 반전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양 측 모두 물러설 곳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해외에서 무기를 수입해오는 것 보다 국산화 사업의 이점이 더 크다. 정비, 후속지원 등이 원활한데다 사업 하나로 수백 개의 업체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서도 “다만 사업이 한 번 무산되면 그 여파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 모습을 현재 K2흑표 사업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