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네덜란드의 한 청년이 획기적이고 기발한 형태의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장치를 개발해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이름은 보얀 슬랫(22). 19세 때 비영리단체인 ‘오션 클린업’을 설립한 슬랫이 개발한 거대한 U자 모양의 이 장치는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한데 모아 수거한 후 다시 재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사실 이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기술적인 문제도 문제거니와, 또 다른 식으로 바다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는 비난과 우려 때문이었다. 가령 이를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라며 비난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기 전에 먼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이 청년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전세계 환경공학자들을 비롯한 환경단체, 그리고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충분히 화제가 되고 있다.
네덜란드 청년 보얀 슬랫은 19세 때 ‘오션 클린업’을 설립하고 바다 쓰레기 수거 아이디어를 구현해나가고 있다.
트위터 계정에서 자신을 가리켜 ‘항공우주학과 전공 학생에서 청소부가 됐다’라고 소개하고 있는 슬랫이 처음 플라스틱 환경오염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16세 때였다. 바다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찬 바닷속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 계기였다.
그후 바다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슬랫은 18세 때 처음으로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 장치’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당시 그의 아이디어는 ‘바다 쓰레기를 일일이 찾아다면서 수거할 것이 아니라, 쓰레기가 우리에게 오도록 하면 어떨까’라는 것이었다. 해류에 따라 흘러가는 쓰레기들을 한 곳에 모아보자는 것이었다.
슬랫의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던 것은 18세 때 TEDx 강연을 통해서였다. 당시 슬랫은 “해류는 장애물이 아니라, 해결책이다”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 강연을 통해 많은 후원금이 들어왔으며, 전세계 160개국에서 200만 달러(약 22억 5000만 원)가 모금됐다.
결국 델프트공과대학 항공우주학과에 입학했지만 1학기 만에 중퇴하고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에 집중하기로 한 슬랫은 19세인 지난 2013년, 비영리단체인 ‘오션 클린업’을 설립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역대 최연소로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지구환경대상을 수상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 있는 디자인 상인 ‘덴마크 인덱스 상’으로부터는 10만 유로(약 1억 원)의 상금을 수령하기도 했다. 당시 ‘덴마크 인덱스 상’ 측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인 청년의 아이디어가 수백만 명의 목숨뿐만 아니라 지구의 위대한 천연자원을 구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현재 ‘오션 클린업’의 직원은 80명으로 늘어났으며, 환경자선재단, 네덜란드 정부, 익명의 유럽 부호들, 피터 틸(페이팔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세일즈포스닷컴 CEO)와 같은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로부터 4000만 달러(약 450억 원)의 투자금을 지원 받으면서 본격적인 개발 및 설치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2016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첫 번째 시범 모델을 만들어 실험을 시작했으며, 2017년에는 첫 번째 장치를 완성한 후 일반에 공개했다. ‘떠다니는 장벽’이라고도 불리는 이 구조물은 거대한 U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오션 클린업’의 연구팀은 이 장치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이는 톰 행크스 주연의 조난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등장하는 배구공 ‘윌슨’에서 따온 것이었다.
기본 아이디어는 해류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바다 쓰레기를 한 곳에 모으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물에 뜨는 친환경 소재로 만든 원통형 튜브에 촘촘한 망 형태의 가림막을 부착한 후 바다 아래로 늘어뜨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만든 장치를 쓰레기가 모이는 소용돌이 길목에 설치하면 해류에 따라 부유물이 한데 모이게 되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쓰레기 해안선이 형성된다.
거대한 장벽을 형성한 U자 형태의 이 인공 해안에 모인 쓰레기들은 선박을 이용해서 주기적으로 육지로 운송한 후, 다시 재활용된다. 이렇게 수거된 플라스틱으로 선글라스, 스마트폰 케이스, 의자 등을 만들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다시 추가적으로 ‘윌슨’을 제작하는 데 사용된다.
‘오션 클린업’의 바다 쓰레기 수거 장치. 기본 아이디어는 해류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에 착안해 쓰레기를 한 곳에 모으는 것이다.
첫 번째 구조물은 캘리포니아 해변과 하와이 섬 사이에 있는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GPGP)’으로 옮겨져 설치됐다. 이곳은 ‘바다 소용돌이’, 즉 환류로 인해 형성된 인공섬으로 인근 해역에서 몰려온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 섬을 이룬 곳이다. 남한 면적보다 무려 열다섯 배 이상 클 정도로 규모가 크며, 지금도 매일 쓰레기가 모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발표된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이 섬을 이루고 있는 쓰레기 개수는 1조 8000억 개가량이며, 무게는 8만 톤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 쓰레기를 전부 처리하는 데만 7만 8000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예측하고 있다.
‘윌슨’에 걸린 플라스틱 쓰레기들 가운데는 1995년식 게임보이, 1977년산 플라스틱 병상자 등도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바다 위에 떠다니면서 결국 미세 플라스틱으로 서서히 분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GPGP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것은 플라스틱 환경오염 연구 분야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인 미국인 찰스 무어였다. 원예학자이자 해양학자인 무어는 지난 1997년 요트로 태평양을 횡단하던 중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거대한 섬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 섬은 다름아닌 플라스틱이 쌓여 이뤄진 섬이었고, 이에 충격을 받았던 무어는 그 길로 해양오염 전문가로 활동하게 됐다. 2001년 그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먹이 사슬의 근간이 되는 동물성 플랑크톤보다 여섯 배나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환류에 쌓여 있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오랜 세월 바다에 떠있는 플라스틱이 태양으로 인해 잘게 분해된 후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바다의 스모그’라고 부른다. 지난 2014년, 미국의 해양환경과학자인 마커스 에릭슨, 무어, 그리고 다른 일곱 명의 공동 저자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결과를 온라인 잡지 PLOS 1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5조 2000억 개 이상의 플라스틱 미세 입자들이 바다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해양 생물들과 인간을 포함해 물고기를 섭취하는 모든 생물들이 다시 섭취하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가령 북극에서 녹아내리는 빙하에도, 소금에도, 맥주에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한 연구에 의하면 전세계 수돗물 샘플의 83%에서 미세플라스틱의 흔적이 발견됐으며, 특히 미국에서는 94%의 샘플에서 미세먼지가 발견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과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몸 안으로 들어온 미세 플라스틱의 독성물질이 소화가 진행되는 동안 동물과 인간의 세포 조직에 점차 축적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전세계에는 북태평양 환류, 북대서양 환류, 인도양 환류, 남태평양 환류, 남대서양 환류 등 다섯 가지의 대표적인 환류가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쓰레기가 많이 모이는 환류가 바로 북태평양 환류다. 이렇게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는 칫솔, 페트병, 우산 손잡이, 장난감총, 플라스틱 병, 세탁 바구니 등 다양하며, 가장 문제가 되고 또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선원들이 ‘유령 그물’이라고 부르는 엉킨 채 버려져 있는 거대한 뭉치의 어망이다. 바다표범이나 바다거북이 어망에 걸려 죽는 일도 다반사다.
‘오션 클린업’의 목표는 앞으로 5년 안에 GPGP에 모여있는 쓰레기 가운데 절반 정도인 4만 톤의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10년 안에는 태평양 쓰레기의 절반을 치울 수 있다는 사실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오는 2020년까지 전세계 환류에 60개 이상의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목표라고도 말했다. 만일 이것이 예상대로 성공만 거둔다면 오는 2040년까지는 북태평향 환류의 쓰레기 가운데 90%를 수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장담했다.
하지만 이 장치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대부분 해저로 가라앉기 때문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박테리아 같은 해양 유기물이 장치에 들러붙을 경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또한 해양생물이 가림막을 지나가지 못하고 튜브에 걸려 갇힐 경우,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치우는 만큼 또 쌓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꼬집는 학자들도 있다.
에릭슨은 ‘오션 클린업’이 전세계가 펼치고 있는 플라스틱 퇴출 운동과 같은 진정한 해결책에서 시선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예방책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하는 에릭슨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의 1%만이 북태평양 환류에 떠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 나머지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릭슨은 이 쓰레기들이 해저로 가라앉았었거나 미세 플라스틱으로 바다 위를 떠다니거나 혹은 해안으로 다시 씻겨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령 2011년 일본 쓰나미 때 발생했던 잔해를 추적한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파도에 의해 바다로 떠내려간 1000여 척의 배 가운데 100척만이 여전히 해류를 따라 항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미 바다에 떠있는 플라스틱들이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슬랫은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할 경우 큰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모두 작고 위험한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 입자로 변하기 전에 바다에서 플라스틱을 제거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오션 클린업’의 임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슬랫은 “쓰레기는 빨리 치우면 치울수록 좋다”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과연 한 청년의 이 단순한 아이디어가 몸살 앓는 지구의 바다를 구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케냐 비닐봉지 휴대만 해도 징역4년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각 나라에서는 저마다 해결책을 내놓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가령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쓰레기 처리 문제만 개선돼도 바다로 흘러가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45%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펩시코, 다우, 유니레버, 코카콜라 등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관련 재활용 기업에 1억 달러(약 1120억 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들도 속속 늘고 있다. 케냐의 경우 지난 2017년,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극단의 조치를 내려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비닐 봉지를 생산 및 판매, 심지어 소지하고 있다 붙잡힐 경우 징역 4년형에 처해지거나, 혹은 최고 4만 달러(4500만 원)의 벌금형이 부과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유럽연합은 지난해 10월부터 일회용품 접시 및 식기류 사용의 전면 금지령을 내렸으며, 미국에서는 비누, 치약 등 세면용품에 주로 사용되는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2018년부터 전면 금지했다. 뉴욕시의 경우에는 폴리스틸렌 음식용기 사용을 금지했으며,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빨대 사용이 금지됐다. 이에 따라 스타벅스는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매장에서 빨대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플라스틱 장난감의 대명사인 레고 역시 현재 친환경 제품인 식물성 플라스틱을 사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바다로 흘러가기 전에 아예 강에서부터 플라스틱을 걸러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볼티모어에서는 미스터 트래쉬 휠, 프로페서 트래쉬 휠, 캡틴 트래쉬 힐 등 다양한 플라스틱 거름장치가 설치되어 성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