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제로페이존으로 선정한 영등포역 지하상가 입구.
제로페이는 자영업자 카드 수수료 부담을 ‘제로(0)’로 낮추기 위해서 만든 결제앱이지만 시중에선 사용자가 ‘제로’라 제로페이라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서울시가 선정한 제로페이존인 영등포역 지하상가를 방문해 제로페이 사용실태를 직접 확인해봤다. 제로페이존답게 영등포역 지하상가는 입구부터 제로페이 광고가 가득했다. 대부분 가게에도 제로페이 가맹점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제로페이로 결제가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안 된다’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한 상인은 “상인회에서 하라고 해서 가맹점 스티커를 붙여놓기는 했는데 제로페이로 결제하겠다는 사람은 처음이다. 어떻게 쓰는지도 잘 모르고 번거로워서 (앱을) 안 깔았다”고 했다.
상가를 돌다 한 커피숍에서 제로페이 결제에 성공했다. 결제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지만 커피숍 주인도 제로페이 결제에 익숙하지 않아 실제 결제가 된 것인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커피숍 주인은 “지금까지 제로페이 결제 건수는 10건도 안 되는 거 같다”고 했다. 제로페이 서비스는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됐다. 주인은 “솔직히 바쁠 때 누가 제로페이로 결제해달라고 하면 불편할 거 같다. 일반 결제는 자동으로 총금액이 나온다. 제로페이는 포스(POS·바코드 인식 결제 단말기)와 연동이 안 된다. 만약 음료를 여러 잔 주문하고 제로페이로 결제하려면 제가 계산해서 총금액을 손님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제로페이 사용이 저조한 것은 기존 결제방식과 비교해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도 소비자가 얻을 특별한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소득공제 40%, 지방자치단체 시설물 이용 할인 등 혜택을 내세웠지만 소비자 반응은 싸늘하다. 제로페이 결제금액 40%를 소득공제 하는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만든 ‘더미래연구소’조차 “소비자로서 신용카드에 비해 누리는 혜택이 적기 때문에 제로페이를 사용할 동기가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가맹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시는 무리하게 공무원을 동원해 가맹점 유치에 나섰다가 내부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부는 서울시에 “강제 제로페이 실적 할당, 인센티브사업, 구청별 평가, 강제 공무원 동원 등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상인들도 불만이다. 한 상인은 “제로페이 가맹점 하라고 공무원이 찾아왔더라.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더니 세금이 어쩌고 해서 협박하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고 했다. 상인들도 제로페이로 얻을 실익이 별로 없다. 이미 연매출 3억 원 이하 자영업자는 카드수수료가 0.8%로 0%대 수수료를 적용받고 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이전에는 택시호출앱 지브로를 출시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는 당초 지브로가 목적지를 택시기사에게 알리지 않는 방식이라 승차거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홍보했다. 지브로 개발과 시스템 구축 등에 약 10억 원이 소요됐다. 지브로는 지난 2017년 출시됐지만 이용자가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
평일 낮 지브로를 이용해 택시를 호출해봤다. 의외로 5분 만에 택시가 잡혔다. 택시기사는 “지브로가 깔려있긴 하지만 손님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지브로는 택시 카드 단말기에 자동 설치되어 있다.
목적지로 이동하며 택시기사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택시기사는 “만약 출퇴근 시간이었다면 절대 지브로 콜에 응하지 않는다. 목적지가 표시되지 않는데 누가 가겠나. 손님이 없는 낮 시간대라 콜에 응해봤다. 이 시간에는 손만 들어도 택시가 쉽게 잡히기 때문에 택시앱으로 콜 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기사는 “지브로 처음 출시되고 몇 번 콜이 오긴 하더라. 바쁜 시간대라 다 무시했다. 그 후로는 지브로 콜이 오는 걸 못 봤다”면서 지브로에 10억 원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기사는 “예산낭비 한 거지. 카카오랑 티맵(택시호출 앱)이 이미 있는데 왜 세금을 써서 이런 걸 또 만들었느냐”면서 “목적지 표시 안하면 아무도 안 간다. 공무원들이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외에도 서울시가 추진한 사업 현주소를 살펴보면 2015~2018년까지 제작된 서울시 공공 앱 60개 중 25개가 이용률 저조와 실효성 등을 이유로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시가 승객 골라 태우기, 승차 새치기 등을 막기 위해 운영한 ‘택시 해피존’도 흐지부지 사라졌다. 해피존에서 승객을 태우는 택시에 3000원씩 인센티브를 줬는데도 이용객이 적었다.
시가 서울역 인근에 약 18억 원을 들여 만든 ‘관광버스 전용 주차장’은 개설 2년 만인 지난해 2월 폐쇄됐다. 명동이나 강남 등 주요 관광지와 거리가 멀어 예견된 실패였다는 평가다.
연이은 사업실패가 박원순 서울시장 대권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한 자유한국당 인사는 “민주당에서는 ‘황나땡(황교안 나오면 땡큐다)’이라고 했는데 한국당에서는 대선에 ‘박나땡(박원순 나오면 땡큐다)’이다. 후보자 토론할 때 박 시장이 지금까지 실패한 사업만 나열해도 유권자들 마음이 돌아설 것”이라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