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
―북미 정상회담이 사실상 결렬됐다.
“결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타깝고 아쉽긴 해도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프로세스(process: 과정)’라는 말 그대로 과정이다. 북미 간 적대관계 70년, 남북 분단 70년이라는 켜켜이 쌓인 세월과 현실이 그 안에 들어있다. 당사국들의 여러 정치 상황과 복잡한 국제외교의 역학관계상 우여곡절이 수없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그 어떤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전쟁의 위기를 떠올렸던 한반도였다.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남·북·미 모두에게 평화는 지속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도 국회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려는 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신뢰구축을 통해 관계개선에 적극 임하도록 하려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게 ‘밝은 미래’가 있음을 확신시키는 것이 현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이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누차 강조해온 북한의 비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 미국과 북한 상호간 신뢰를 쌓는 일을 돕는 것, 중재하는 것, 전달하는 것, 그 어떤 표현이든 좋다. 막중한 역할이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 대한민국 국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3월 임시회가 열렸지만, 국회가 장기간 휴업상태였다. 민생 법안 처리도 지지부진하다.
“모든 의원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심기일전,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최우선적으로 입법부로서 그 본연의 역할부터 집중해야 할 것이다. 2월 말 기준, 제20대 국회에 들어와 1만 8332건의 법안이 제출됐다. 이중 29.5%인 5408건만이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9305건은 단 한 차례도 법안심사 소위조차 거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임기만료 폐기법안이 대량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의원 한 분 한 분이 입법발의뿐만 아니라 심사와 의결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발의수가 아니라 의결법안 숫자가 실질적인 입법성과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회의장이 매년 선정하는 우수의원 평가에 있어서도 기존의 정량평가를 대폭 개선해 정성평가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정치력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많다.
“정치의 본령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김대중 대통령님이 말씀하신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다. 다른 하나는 미래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다. 지금 너무 현실에 목을 매고 미래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그런 정치를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난파선에서 싸워서 이긴들 가라앉으면 다 죽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엄청난 시대의 변곡점에 있다. 한반도 평화, 촛불민심이라는 국면은 자주 오지 않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이를 놓치면 안 될 것이다.”
―후배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맹자 이루 편에 ‘자모인모(自侮人侮)’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스스로를 업신여긴 연후에 남도 나를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국회의 품격은 국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제20대 국회는 국민이 다당제를 만들어주며 협치가 숙명인 국회로 탄생했다. 20대 국회는 촛불민심이 명령한 개혁입법, 정치개혁, 개헌을 완수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촛불민심의 제도화는 행정부도 사법부도 아닌 국회의 책무다.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민생입법, 개혁입법, 정치개혁 그리고 개헌에 대한 입장까지도 여야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야 지도부의 통 큰 결단만 있다면, 제20대 국회가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다.”
문희상 국회의장.
―취임하면서 국회 개혁을 약속했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임기 초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특수활동비를 폐지했고, 국회혁신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인사‧예산‧조직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도록 했다. 일하는 국회, 신뢰받는 국회로 거듭나기 위해서 국회개혁을 위한 입법이 선행돼야 한다. 이미 꼭 필요한 대부분의 국회개혁 법안들이 마지막 단계에 올라있는 상황이다. 우선 법안소위를 두세 개 이상 복수로 운영하고, 그 개최를 의무화·정례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운영위에 계류 중이다. 활발한 소위 운영으로 상시국회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가장 시급한 국회개혁안이다. 국회 청원 시스템 개혁안도 운영위에 계류 중이다. 이외에도 패스트트랙 기간 단축을 포함한 국회선진화법 제도 개선, 법사위 체계와 자구 심사 제도개선, 인사청문회 제도개선,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등의 국회개혁안이 마련되어 운영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의원외교에 대한 불신이 높다. 세금만 축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의회외교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익을 위한 의회외교정책을 적극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월 21일 개선안을 발표했다. 사전심사를 통한 외유성 출장 전면 차단, 해외출장 결과보고 전면 공개를 통한 투명성 확보, 의회외교 평가 시스템 도입, 이를 뒷받침하는 의원외교 규정 개정 4가지 사안이다. 철저하게 지켜나간다면 의회외교의 새 지평을 열게 될 획기적인 개선안이라는 평이다.”
―최근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 추세다.
“전례와 비교한다면 지금의 지지율이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다만, 최근 지지율 하락세는 일종의 경고등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추락할 것인지 반등할 것인지는 개혁입법과 민생경제 회복이 중요하다. 촛불민심의 제도화와 시스템화에 달려 있다. 또한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실력과 성과를 보여줘야 개혁 동력이 유지될 것이다. 개혁과제의 모든 제도적 완성은 국회를 통해 이뤄진다. 정치개혁은 정당개혁·선거개혁·국회개혁 세 가지다. 정치개혁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경제민주화 무엇하나 제대로 제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지난 총선 어느 정당도 과반수가 안 되는 다당제로 구성된 것은 ‘협치를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놓고 공방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근대화, 민주화 과정 속에서 압축 성장을 했고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양극화가 심화됐다. 효율성을 우선시하다 보니 불균형 성장을 가져온 것이다. 이 시점에서 패러다임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혁신성장, 공정경제, 포용적 성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촛불민심은 ‘이게 나라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고 했다. 골고루 잘 사는 세상, 함께 더불어 사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존재 의미와 같다. 지금까지 경제정책의 방향 설정에 대해서는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선순위와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제는 하루아침에 도깨비 방망이처럼, 요술램프처럼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도면밀한 예측과 상황 분석으로 체질개선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 상황은 더 좋지 않은 것 같다.
“3050클럽에 7번째 국가로 가입을 하는 등 경제적인 성취도 있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경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제 집권 3년차에 돌입하며 실적을 보여줘야 할 시기가 됐다. 먹고사는 문제에 실력을 보여줘야 개혁 동력이 유지될 것이다. 2019년이 중대한 분수령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지혜를 모아 이 고비를 넘어야 할 것이다.”
―‘일요신문’이 1400호를 맞았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다.
“일요신문 14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일요신문 임직원과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반가움의 인사를 전한다. 일요신문은 민주화 시대 이후 타블로이드 주간지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래 주간신문 선도주자로 활약해 왔다. 일요신문은 한 주의 가장 뜨거웠던 이슈를 심층적으로 취재·분석하며 시의적절한 화두를 던지고, 뉴스 해설자로서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앞으로도 일요신문이 독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어 주시기 바라며, 대한민국의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주시길 기대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