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기사들에게 통합예선은 입단 포인트를 쌓을 좋은 기회다. 입단 포인트는 한국기원이 정한 대회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면 주는 점수로 대회마다 누적되며 100점을 넘기면 프로기사 자격을 얻는다. 한국에서 치르는 세계대회는 통합예선 8강 진출 20점, 예선 준결승 진출 40점, 예선 결승 진출 60점을 받는다. 이어 본선 32강에 진출자는 80점, 본선 16강에 오르면 100점을 준다.
아마추어가 유명 프로기사를 꺾는 ‘반란’은 LG배·삼성화재배 같은 세계대회 통합예선에서 뉴스의 중심이 된다. 지난 삼성화재배에서 윤성식 선수가 변상일 9단 등을 꺾고 아마추어 기사로는 8년 만에 본선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또 LG배에선 이재성 선수가 예선결승에 올라 스웨 9단과 불꽃 튀는 대결을 펼쳤다. 올해는 어떤 아마추어가 프로 강자를 물리치고 이름을 떨칠까?
아마추어 선발전을 통해 LG배 통합예선 출전 티켓을 잡은 허영락 선수.
세계대회 우승한 중국 프로기사들도 통합예선에 참가하기에 사실 LG배 본선 진출은 극히 어렵다. 특히 이번 LG배에 출전하는 아마추어들은 통합예선 1회전부터 험로다. 11일 추첨한 LG배 통합예선 대진표에 따르면 엄동건 선수는 저우루이양 9단(21회 LG배 준우승)과 만나고, 김주형 선수는 장웨이제 9단(16회 LG배 우승)과 격돌한다. 박상준 선수는 일본 장리요우 8단과 대결하는데 이기면 바로 구리 9단(13회 LG배 우승)과 만난다. 최원진 선수는 목진석 9단(20회 GS칼텍스배 우승)과 대국한다.
이미 입단포인트 60점을 보유하고 있어 예선 준결승까지만 가면 프로가 되는 이재성 선수는 추첨운이 좋아 아마추어기사 중 유일하게 2회전부터 출전한다. 처음으로 통합예선에 나선 허영락 선수도 눈여겨볼 만하다. 첫판에서 중국 정쉬 4단과 만나는데 8강 진출까진 무난해 보인다. 만약 결승에 오르면 구쯔하오를 상대할 가능성이 크다.
허영락 선수는 작년 2018 내셔널리그에서 대활약하며 소속팀 KIBA를 우승으로 이끈 선수다. 개인전은 덕영배 아마대왕전와 인천시장배에서 준우승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지만 페어대회에선 펄펄 날았다. 여자 전유진 선수와 호흡을 맞춰 99회 전국체전 혼성페어부문에서 금메달을 땄고, 12월에 열린 국제아마추어 페어선수권에서도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시니어 김우영 선수와 손잡고 제4회 원봉배 페어대회까지 평정했다. 아마대회에서 그와 정상을 다투던 강지훈·정훈현·조남균·신재원·조완규 등이 작년 프로가 되면서 이제 입단 기준선에 가장 가까운 남자다. 이번 LG배 통합예선에 나서는 허영락 선수에게 소감과 함께 아마추어 선수로 생활하는 현실을 들어봤다.
연구생 출신 허영락 선수의 꿈은 역시 입단이다.
“10세에 서울 허장회 도장으로 유학 와서 초등학교 6학년 때 꿈에 그리던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며 권갑용 도장으로 옮겨 공부했고, 만 20세가 되어서 연구생을 나왔다. 당시 함께 연구생을 나온 96년생 친구들이 5~6명이 있어서 아마대회 우승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해도 입단 문턱에서 아깝게 탈락하면서 극심한 슬럼프가 왔다. 강남역 모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기도 했다.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그냥 바둑 아닌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6개월 정도 바둑돌을 놓았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았고 2018년은 여러 면에서 성과를 얻었다. 2018년은 내셔널리그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최근 몇 년간 프로기전이 대거 사라지면서 젊은 프로기사가 대국료만으로 생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KB바둑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제외하면 수입에선 오히려 아마추어가 앞설 수도 있다.”
―상위권 아마추어 기사들 수입이 얼마 정도인가?
“대부분 아마 선수들에겐 내셔널리그에서 받는 고정 수입이 가장 크다. 우선 내셔널리그는 판당 기본 대국료 10만 원, 승리 수당이 10만 원이다. 팀마다 복지혜택도 다르다. 예를 들어 지방대회 출전 시에 경비 일체를 지원하거나 연구비를 지급하는 팀도 있다. 이외에 각종 대회에서 얻는 상금과 바둑도장에 받는 지도료 등이 부가 수입이다. 내셔널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아마 랭킹 상위권 연간 수입은 평균 1000만 원 내외라고 본다.”
―현역 선수로 바라본 내셔널리그는 어떤 모습인가?
“우선 스카우트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내셔널리그는 구단제라 팀 색깔이 크게 변하진 않지만, 매년 프로 입단하는 선수로 결원이 생긴다. 대부분 그 자리는 당해 한국기원 연구생을 나온 어린 선수들이 채운다. 한 해 리그를 마치면 각 팀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개별 연락해 의사를 타진한다. 선수 입장에선 실력만큼 대우받는 느낌이 난다. 올해 리그도 선수만 보면 김포 원봉 루헨스와 전라남도팀이 가장 세보이고, 그 뒤로 대구 덕영, 경기 바이오제멕스, 서울 푸른돌팀 구성이 좋아 보인다. 모두 주니어 선수층을 잘 보강(스카우트)한 팀들이다.”
―LG배 통합예선에 나서는 소감은?
“여전히 입단은 내 인생의 목표다. 지난 10년이 헛되지 않게 올해 최대한 집중해서 꿈을 이루겠다. 이젠 제도도 많이 바뀌어서 세계대회 통합예선과 전국 규모 아마 대회 등 여러 루트에서 입단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이번 LG배 통합예선이 그 시작이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