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 감사관실이 작성한 ‘2018년 농협 종합감사’결과에 따르면 2015년부터 3년 동안 농협중앙회 및 경제지주(농업경제), 7개 지역농협의 기관 운영, 사업운영 등 업무전반에 관한 사항을 감사한 결과 총 174건의 처분요구(기관경고 15, 부서주의 6, 경고 10, 주의 8, 시정 58, 권고 12, 통보 65)와 1억 2600만 원의 회수조치가 처리됐다.
농식품부의 농협 종합감사결과 문서와 농협 수지예산 편성지침 내용. 일요신문DB
특히 감사에서 ‘비상임조합장의 복리후생비 지급과 임원보수 및 실비변상규약’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임직원들의 실비 등에서 부적정한 예산 집행이 드러난 것. 이들 대부분은 농협 지역검사국에서 올해 초 시정조치를 받았다. 실제로 농협은 ‘2019년도 농축협사업계획 및 수지예산편성지침’을 지역검사국과 지역조합 등에 전달했다. 농식품부의 감사결과를 반영한 시정권고를 지역조합 전체로 확대한 것이다.
겉보기엔 전달된 예산 편성 지침이 농식품부의 지적에 대한 시정조치로 보이지만 법 개정을 통해 부적정 예산을 합법적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알려주는 안내서로도 볼 수 있었다.
실제 지침에는 임원에 대한 수당 및 복리후생비 등 보수지급에 대한 ‘사업계획 수지 예산 편성지침’ 상 편성과 지급은 별개의 사안이므로 보수규약에 그 지급근거가 없을 경우 필히 농축협 총회(대의원회) 의결을 통한 ‘임원보수 및 실비변상규약’을 개정한 뒤 지급해야 함에 유의하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면서 향후 규약 상 지급근거 없이 지급한 경우 관련자 문책 및 지급된 복리후생비 등이 회수될 수 있음에 유의하라며 농식품부 감사 지적사항 반영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농협이 감사 지적사항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조차 하지 않고 지역조합 감싸기에 나선 셈이다.
‘일요신문’의 취재결과 감사 대상외 지역에서도 이 같은 부정 예산 집행이 이뤄진 사실이 확인됐다. ‘일요신문’ 취재 과정에서 경기도 2곳(A, B)과 충청도 1곳(C) 지역조합에서도 2015년부터 임원복리후생비와 실비 등이 부당지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A 조합의 경우 3년 동안 지급된 임원 부당금액만 1억 7000여 만 원에 달했다. B 조합은 4000만 원가량, C 조합은 1000만 원 정도였다.
게다가 이들 지역조합에서는 이미 농협의 권고에 따라 예산 관련 규약까지 개정했다. A 조합의 경우 규약 개정을 통해 이미 지급된 부적정한 예산에 대한 회수도 무산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의 지침대로 규약을 개정시키면서 부당지급된 임원복리후생비 등의 환입조치를 심의에 끼워놓고 거수로 환수 반대 의결를 통과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조합장선거를 불과 한 달 남짓 남겨두고 통과시켜 선심성 예산 퍼주기를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A 조합 외에도 여러 곳에서 감사 지적사항을 선거 전에 개정시켰다. 부당지급 예산 환수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임원복리후생비 등 예산을 늘리기 위해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농협 A 조합은 선거를 앞두고 부정지급되었던 예산에 대한 환수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조합의 특성상 깜깜이 식으로 예산이 집행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선거를 앞두고 이를 묵인하고 법 개정으로 부적정한 예산 집행을 합법화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미 부적정하게 지급된 예산 규모만 지역조합의 경우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른다. 전국적으로 농협이 1100여 개인 만큼 부정 지급된 예산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의 투명하지 않은 예산 논란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일부에선 조합선거를 앞두고 지역 조합장들이 상임임원과 직원들에게 예산을 집행하거나 부적정 예산 환수를 눈감아주는 등의 행위가 선거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깜깜이 선거’로 유명한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에선 현금과 상품권 등 각종 향응이 제공되곤 해 선거 때마다 관련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조합장선거에서는 고발 22건, 수사 의뢰 4건, 경고 조치 65건 등 모두 91건의 법률 위반 사례가 나왔다. 3월 13일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도 선관위가 151건을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15건은 수사 의뢰했다.
해당 지역조합 관계자들은 “선거와는 무관하며, 지급된 예산이 통상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정부 감사 지적사항에 대해서도 “규약만 바꾸면 되는 일인데 무슨 상관이냐”며 “향후에 법적으로 문제 제기가 되면 거기에 맞게 대응하면 그만”이라고 답변한 관계자도 있었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에서는 “정부뿐만이 아니라 중앙회에서도 자체감사를 통해 지역조합에 개선과 시정조치를 통보한다”며 “다만 워낙 지역이 많다보니 조사와 시정조치가 다소 늦을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임직원 복리후생비 등 부당 지급 예산의 환수에 대한 강제성은 없어 사실상 지역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조합장선거 기간인 만큼 현재로선 추가 조치나 조사에 나설 상황이 아니다”는 입장도 밝혔다.
한편, 농협의 부당지급 예산 관련 논란은 향후 더 확산될 전망이다. 앞서 언급된 일부 지역조합에서 부당지급 예산에 대한 조합의 배임, 횡령 등의 고발장이 경찰 등에 접수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합장들이 고액 연봉, 직원 임면권, 예산 및 사업 재량권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선거자금 회수에 사용한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만큼 농협의 전반적인 예산에 대한 투명한 관리감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