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빙상 대통령’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의 책임 회피 의혹이 부상했다. “전명규 교수가 ‘조재범 전 코치가 상습적으로 심석희를 성폭행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관리 책임을 전면 부인했다”는 의혹이다.
2019년 1월 한국체대 재학생인 심석희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심석희는 성추행 및 성폭행 장소로 여러 곳을 지목했다. 한국체대 실내빙상장 라커룸 역시 심석희가 주장한 성폭행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체육계에선 “한국체대 실내빙상장 라커룸에서 심석희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관리책임자인 전명규 교수 역시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심석희로부터 시작된 ‘체육계 미투’ 이슈가 대한민국을 들썩이자, 교육부는 2월 11일부터 한국체대 특별감사에 돌입했다. 감사 목적은 ‘한국체대 소속 운동선수, 일반학생에 대한 성폭력·폭력 사안 조사’였다. 심석희 이슈의 진원지로 꼽힌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은 주요 감사 대상으로 떠올랐다. 2018년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조재범 전 코치가 심석희를 폭행한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선 전명규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 A 씨는 “교육부 감사 중 전명규 교수가 ‘조재범 전 코치가 심석희를 성폭행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관리책임을 전면 부인했다”고 주장했다.
A 씨 주장에 따르면 전 교수는 교육부 감사관 측에 “(한국체대 빙상부) 강의 장소는 빙상장이다. 얼음 위에서 발생한 사건이 내 소관”이라면서 “성폭행, 성추행 및 구타 장소가 얼음 위가 아니기 때문에 나에겐 일체의 책임과 잘못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A 씨는 “전명규 교수는 해당 사건의 관리책임자로 한국체대 훈련처를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A 씨가 ‘전명규 교수의 발언’이라고 주장한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1월 21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전 교수가 밝힌 입장과 180도 상반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기자회견 당시 “그런 상황(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성폭행 의혹)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심석희에게 미안하고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A 씨가 알린 내용은 3월 초 한국체대 교수진 회의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한국체대 교수들이 이 얘기를 듣고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안다. 무엇보다 이 자리에 있던 훈련처장의 심기가 매우 불편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훈련처는 한국체대 소속 엘리트 선수를 관리 및 지원을 담당하는 한국체대 행정부서다. ’한국체대 시설공간 관리 규정‘은 ‘훈련실습 공간 관리는 훈련처가 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A 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전 교수는 해당 규정을 근거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을 가능성이 크다.
3월 14일 ‘일요신문’은 한국체대 훈련처 관계자들을 찾아 A 씨 주장과 관련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훈련처 관계자들은 “전명규 교수와 관련해 할 이야기가 없으며, 아는 것도 없다”고 답했다.
교육부는 “감사 내용 관련 사실관계 확인은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14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한국체대) 감사 결과 발표를 준비 중”이라면서 감사 과정에서 특정인의 발언을 외부에 노출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체대 교수들 역시 ‘내부 회의에서 언급된 전명규 교수 관련 내용’에 대해선 일절 언급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됐지만, 텅 비어있는 전명규 교수실. 사진=일요신문
14일 ‘일요신문’은 한국체대 실내빙상장 2층에 있는 전명규 교수실을 찾았다. 하지만 교수실엔 아무도 없었다. 수차례에 걸쳐 전 교수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답이 없었다. 전 교수와 교육부 가운데 어느 쪽 이야기도 들을 수 없는 상황. ‘전명규 교수가 관리책임을 전면 부인했다’는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 어려웠다.
이런 와중에 한국체대 내부 사정에 정통한 B 씨는 “교육부 감사에서 전 교수 발언으로 알려진 내용의 취지는 ‘수업시간 외 훈련시설 관리책임은 훈련처에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B 씨는 “전 교수와 훈련처가 서로 상대방의 책임을 주장하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체육계 복수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체대 교수진 가운데 전명규 교수를 옹호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학교에서 전 교수가 일궈낸 성과 덕이었다. 하지만 성과 이면의 과정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다”면서 “이젠 전 교수를 바라보는 교수진의 정서가 상당 부분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국체대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빙상 대통령’ 전명규 교수를 둘러싼 ‘관리책임 부인 의혹’의 사실관계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와 관련한 진실은 교육부의 ‘한국체대 특별감사 결과 발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교육부의 한국체대 특별감사는 3월 12일 종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국체대 특별감사 결과 발표 일정은 아직 미정”이라고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