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매각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물적분할을 통해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가칭)을 설립하고, 산업은행은 보유 중인 대우조선 지분 전량을 출자하는 대신 한국조선해양의 지분을 취득한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은 오는 6월 1일자로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을 물적분할한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를 비롯해 해외 30여 개 국가의 경쟁당국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기업결합심사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결합이 이뤄진 경우 공정위가 경쟁제한성(독점) 여부를 심사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 기업간 합병일지라도 해외 거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면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도 받아야 한다.
세계 1, 2위 조선사가 합병하는 것이어서 기업결합 심사를 쉽게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단순 선박 수주량으로만 봐도 지난해 기준 두 조선사의 시장점유율은 21%에 달한다. 국내 조선사가 강점을 보이는 고부가가치 LNG선의 경우 기존 발주 점유율 52%를 차지해 독과점 문제도 지적될 수 있다. 더욱이 세계 발주시장에서 크루즈선, 벌크선 비중이 하락하는 반면 LNG선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 속에서 중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국가의 견제가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국내에서는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를 신속하게 마무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의 판단이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어느 경쟁당국보다 한국 공정위가 먼저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우리가 내셔널 챔피언을 키우기 위한 방향으로 결론 내린다고 해도 다른 국가에서 승인해야 하므로, 다른 경쟁당국이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우조선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는 지난 13일 투쟁속보를 통해 “이미 대우조선 인수합병에 대한 결론을 내부적으로 결정하고, 이에 따른 행동으로 국가별 기업심사에 대비하려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14일에는 세종시 공정위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위원장은 국제 로비활동을 멈추고 대우조선 매각 철회를 위해 노력하라”고 주장하며 공정위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대우조선 매각에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본계약 당시 구조조정 우려에 대해 고용보장 등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은 지난 8일 본계약식에서 공동발표문을 통해 고용보장과 협력업체 기존 거래선 유지 보장 등을 약속하고 이해 관계자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협의해나갈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두 회사의 합병 이후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우조선에서 근무한 바 있는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조선업계가 앞서 3년간 구조조정을 해왔던 데다 수주 물량을 확보한 상태여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양 교수는 다만 “오히려 중요한 부분은 지역 기자재 업체들과 협의를 잘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현대중공업은 자회사 위주로 부품을 생산하는 수직계열화가 이뤄진 반면 대우조선은 아웃소싱해왔는데, 인수합병 이후 현대중공업이 선호하는 부품 기자재 업체들과 계약을 하면 경남 기자재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우조선 노조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헐값·졸속매각, 밀실야합, 재벌특혜 등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는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의 밀실협약은 국가자산인 대우조선을 매각의 기본적 원칙까지 지키지 않고 재벌에 헐값에 넘기는 친재벌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우조선 인수는 젊은 나이에 아무런 검증 없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라선 정기선 부사장의 능력을 검증받기 위한 무리한 사업확장”이라고 지적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주도한 이번 매각작업 자체에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적은 돈을 들여 최대 경쟁사인 대우조선을 인수할 수 있고, 만약 인수가 불발된다 할지라도 전혀 타격이 없는 꽃놀이패를 쥔 셈”이라며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20년 가까이 혈세를 투입하던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어 ‘빅딜’이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또 “본계약 이후 실사를 한다는, 수순을 역행하는 것이 의아하다”며 “조선업이 회복세를 보이는 만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을 조금 더 보유하고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기업 가치를 높인 이후 매각 타이밍을 쟀거나, 매각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여러 의견을 수렴했다면 ‘졸속매각’이라는 비난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인수합병 이슈에 하청업체 ‘전전긍긍’하는 까닭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의 ‘빅딜’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에 피해를 당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청업체들의 목소리가 가려져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갑질 피해 하청업체 대책위원회는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함께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갑질 문제 해결 없는 인수합병을 결사반대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경우 매각이 진행되면서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우조선은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공정위로부터 108억 원의 과징금을 받고 검찰고발 당했으나 피해보상책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현대중공업은 직권조사를 진행 중인 공정위가 조만간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관련 내용은 과거에도 나왔던 것이고, 아직 공정위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드릴 말씀이 따로 없다”며 말을 아꼈다. 특히 매각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우조선에 갑질 피해를 입은 하청업체들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매각이 진행되면 대우조선의 지배구조가 불안정해져 피해보상이 더욱 먼 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윤범석 대우조선 하청업체 갑질피해대책위원장은 “지난 2월 12일 산업은행과 면담에서 산업은행이 ‘갑질피해를 살펴보겠다’고 말했으나 아직 움직임은 없다”며 “대우조선은 지난달 대표이사가 사임하고 매각이 진행되면서 붕 떠 있는 상태라 공정위 제재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 진행 여부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얼마 전 대우조선 임원과 면담 자리에서 산업은행이 피해보상을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윤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의 주도하에 대우조선을 인수하며 하청업체 갑질 등에 따른 우발채무를 본인들이 담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인수자인 현대중공업이 피해보상액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산업은행 또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대우조선의 피해보상을 막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청업체 갑질피해대책위는 공정위의 의결서가 완성돼 공개되는 대로 이를 번역해 해외 각 영업체에 보내 갑질 실태를 알릴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윤 위원장은 “해외에서는 도덕적이지 못한 기업과 거래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수합병 전 피해보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