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노경은.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아직 샌디에이고 구단으로부터 연락이 없다. 2차 테스트 날짜를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 3월 1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스프링캠프에서 진행된 노경은(35)의 입단 테스트가 있은 후 다음날 샌디에이고 측에서는 노경은에게 2차 테스트를 제안했다. 합격과 불합격으로만 결과를 예상했던 노경은은 샌디에이고 구단의 2차 테스트 제안에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5일 현재, 2차 테스트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노경은의 설명대로 샌디에이고 측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데뷔 첫 FA 자격을 얻었던 노경은은 롯데 자이언츠와 협상을 벌이다 계약금 보장액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바람에 협상이 무산된 바 있다. 이후 미국 야구에 도전하고자 애리조나에 입성, 마이너리그 입단 테스트를 받은 노경은. 노경은이 샌디에이고 마이너리그 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1이닝 동안 4명의 타자를 상대했던 1차 테스트 다음날(11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노경은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당시 나눴던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다.
지난 2월 말, 미국 LA에서 애리조나로 이동한 노경은. 롯데 자이언츠와의 계약이 어려워지자 덕수고 야구부가 전지훈련 중인 LA에서 개인 훈련을 했던 그는 샌디에이고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안을 받고 애리조나로 거처를 옮겼다. 처음에는 호텔에서 지냈던 노경은. 이후 지인 집에 머물며 웨이트트레이닝과 런닝, 캐치볼 등으로 몸을 만들었다고 한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가 자주 꺼낸 말이 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입단 테스트를 치른 노경은. 사진=일요신문
―어제 오랫동안 기다렸던 샌디에이고의 입단 테스트를 마쳤다. 모든 선수들이 군청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가운데 노경은 선수의 주황색 티셔츠가 유독 눈에 띄더라.
“한국에서 가져온 옷이 별로 없다. 그중 어렵게 찾아낸 옷이 그 주황색 티셔츠였다. 길이가 짧은 탓에 심판이 바지 안으로 셔츠를 집어넣으라고 했는데 공을 던질 때 그 옷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오지를 않아 애를 먹었다.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어색하지는 않았다. 주위에서는 긴장되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난 정말 마음 편히 던졌다. 긴장하는 대신 오히려 설렜던 것 같다. 샌디에이고 훈련장은 내가 두산에 있을 때 스프링캠프지로 생활했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
―구속보다는 제구력 위주의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미리 계획된 투구였나.
“내가 원래 높은 구속을 자랑하는 투수는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테스트 볼 때는 구속을 강조하려 했었다. 그런데 테스트 받기 직전에 샌디에이고 측에서 ‘우리는 너의 구속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다’라는 반응을 나타내더라. 그래서 너클볼로 밀어붙이려던 계획을 수정해서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구종을 선보였다.”
샌디에이고 타자들을 상대로 노경은이 던진 구종은 모두 4가지. 직구, 서클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였다. 17개의 투구수를 기록하며 1피안타 헛스윙 삼진, 2개의 내야 땅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프로 데뷔 후 입단 테스트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학교 시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스카우트가 와서 스피드건으로 구속을 측정 당했던 경험은 있지만 이렇게 구단을 찾아가 테스트 본 건 당연히 처음이다. 테스트 앞두고 어느 음식점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한 선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내 근황을 묻기에 샌디에이고 마이너리그 입단 테스트를 앞두고 있다고 했더니 떨리지 않느냐고 해서 ‘난 한국시리즈 1차전과 WBC대회에 등판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긴장조차 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샌디에이고 구단 측에서는 좀 더 일찍 테스트를 보려 했지만 노경은 선수가 준비가 안 돼 테스트 날짜가 미뤄졌다는 얘기가 있었다. 사실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기자님도 알다시피 난 2월 말 애리조나로 이동했고, 샌디에이고 구단이 입단 테스트 날짜를 알려주기만을 기다리며 생활했다. 원래는 3월 3일 또는 4일에 테스트 보는 줄 알고 LA에서부터 그 날짜에 맞춰 몸을 만들었는데 계속 늦춰지는 바람에 10일까지 가게 된 것이다. 날짜가 늦춰진 건 나 때문이 아니라 구단의 사정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지금 노경은 선수가 한국이 아닌 애리조나에 머물고 있는 가장 큰 배경은 롯데와의 FA 계약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보상 선수 문제로 KBO리그 타 팀으로의 이적이 어려운 상황에서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미국까지 오게 됐는데, 가끔은 이런 선택을 후회하거나 이전 롯데와 협상을 벌이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나와 함께 유이한 FA 미계약자였던 김민성이 사인앤트레이드 형식으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그 소식을 접하고 많은 생각이 오가더라. 롯데와의 협상 결과에 후회는 없다. 단 한 가지. 롯데가 자체 데드라인을 정해 협상할 수 있는 문을 미리 닫아버린 부분은 조금 아쉽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1월 29일 노경은과의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FA 보상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사인 앤 트레이드 계획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노경은을 영입하기 위해 보상 선수를 내줄 팀은 전무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노경은은 “한국에 남는다면 사회인 야구에서 뛸 수밖에 없다”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애리조나까지 오게 된 것이다.
―롯데가 노경은 선수에게 제시한 계약 내용은 2+1년에 보장 금액 11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3억 원), 인센티브가 12억 원으로 총 23억 원 규모였다. 그런데 노경은 선수는 롯데 측에 계약금 액수를 2억 원 더 올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그 2억 원은 어떤 의미의 숫자였던 건가.
“구단이 제시한 모든 조건을 수용하는 대신 내가 내걸었던 유일한 조건이 ‘2억 원’이었다. 그 2억 원은 내 자존심이었다. 총액이 23억 원이라고 알려졌지만 세부 내용과 실제 내가 받을 수 있는 금액과는 차이가 났다. 그래서 보장 금액 중 계약금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금액을 받고 싶었다. 주위에서는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구단에 굽히고 들어가라고 조언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돈 때문에 하기 싫은 계약을 했다면 야구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굽히고 들어갈 수 없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입단테스트 중 홍성흔 코치와 대화를 나누는 노경은. 사진=일요신문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딱 한 번 아버지 말씀 듣고 흔들린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한국에서 계속 야구하는 모습 보여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아들 야구하는 것 구경 다니는 재미로 살았는데 한국에서 야구 안하면 앞으로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고 나를 설득하시더라. 결국 불효를 저지른 셈이다.”
―샌디에이고 마이너리그 입단 테스트는 이 구단 고문으로 있는 박찬호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다.
“찬호 형이 물심양면으로 큰 힘이 돼주셨다. 찬호 형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찬호 형이 나를 미국까지 이끈 선배라면 애리조나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홍)성흔이 형이다. 두산에 있을 때 투수와 포수로 만난 인연이 애리조나에서 특별한 만남을 갖게 했다. 성흔이 형은 샌디에이고 마이너리그 코치이고, 난 이 팀에 들어가려고 테스트에 응한 선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나. 성흔이 형이 밥도 사주시고, 샌디에이고 구단의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그 외에도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이 고마움, 감사함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노경은 인터뷰 말미에 “내가 다시 KBO리그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스스로 대답을 이어갔다.
“80%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모든 팀들, 2군 투수들까지 전력 공백이 생기지 않는 한 내게 기회가 주어지진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아무런 결과물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연습 동냥에 나서야 한다. 내 볼 받아줄 사람을 찾아야 하고, 함께 훈련할 팀도 구해야 한다. 정말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어느 곳에서도 러브콜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한 가지 생각만 한다. 어떻게 해서든 1년은 버티자고. 그렇게 버틴 후 내년에 KBO리그 팀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지 못한다면 은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1억3000만 달러의 아버지와 그 두 아들 추신수 삼부자, 사진 왼쪽부터 추신수-추건우-추무빈. 사진=일요신문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에 위치한 텍사스 레인저스 훈련장을 찾으면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추신수의 두 아들인 무빈 군과 건우 군이다. 그들은 봄 방학을 맞아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열흘간의 일정으로 텍사스에서 애리조나를 찾았다.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하는 추신수는 두 아들과 비슷한 시각에 함께 집을 나선다. 5시에 출근하기로 약속했다면 5시 정각에 출발한다. 만약 두 아들이 모두 일어나지 않았거나 출근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혼자 나간다. 전날 약속했던 출근 시간을 지키지 못한 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는 텍사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등교할 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둔다. 절대 부모가 깨우지 않는다. 지각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게 만든다. 처음에는 늦잠을 자고 지각했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먼저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식사하는 모습을 보인다. 애리조나에서도 무빈, 건우 군은 아빠가 출근하기 전인 새벽 4시 30분부터 일어나 아빠를 기다린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시간만큼은 철저히 지키는 아이들이다. 클럽하우스로 출근한 두 아이들은 그곳에서 쉬거나 놀 수 없다. 클럽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에 나서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유니폼을 걷고, 사용한 수건들을 세탁실로 옮기고, 선수들이 신은 신발을 깨끗이 털고 닦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빈, 건우 군의 자원봉사는 수년 전부터 행해온 일들이다. 대부분의 선수 자녀들이 아빠 손을 잡고 야구장에 놀러오는 것과 달리 무빈, 건우 군은 야구장에 일을 하러 나온다. 해야 할 일을 마치면 메이저리그 아빠와 캐치볼을 하고 야구로 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기다린다. 추신수는 이와 관련해서 “부모가 돈이 많다고 해서 아이들도 그 부를 느끼고 누리길 바라지 않는다”면서 “노동의 대가를 얻고, 그 의미를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 클럽하우스 자원봉사 일을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막내딸을 포함해 세 아이의 아버지인 추신수의 최근 가장 큰 고민은 자녀 교육이다. 직업의 특성상 매 시즌마다 많은 시간을 떨어져 지내야 하는 터라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부재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겨줄 수 있다고 걱정한다. 그는 “왜 벨트레가 은퇴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된다”면서 “텍사스와 2020년까지 계약이 돼 있는데 그 이후 선수 생활을 이어갈지 아니면 그만둬야 할지 벌써 고민된다”고 말했다. 야구 선수로서의 직업과 아버지의 역할 사이에서 인간적인 고민을 안고 사는 추신수의 솔직한 모습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