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로고
중견 방송 관계자 A씨는 최근 비슷한 메시지를 연이어 받고 있다. 그 내용은 ‘OOO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했습니다’다. 텔레그램은 타 메신저에 비해 보안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주고받는 메시지가 서버에 저장되지 않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과거의 메시지가 복구되지 않도록 삭제하는 기능이 있다. 이번 사태가 정준영이 지인들과 4∼5년 전 나눴던 대화방의 내용이 유출되며 수면 위로 떠오른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텔레그램을 사용하려는 이들이 늘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또한 텔레그램에서 ‘비밀대화 기능’을 사용할 때는 대화창의 화면을 캡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민감한 메시지를 주고받았을 때 상대가 이를 몰래 캡처해 보관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결국은 집단적 도덕적 해이에 기인한다는 주장도 있다. 법에 저촉될 만한 소지가 있는 대화나 자료를 주고받지 않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하는데, 메신저를 갈아타며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반면 범법 행위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라도 보안성이 강한 메신저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 속 얘기를 가감 없이 주고받는 사이라도 향후 어떤 일을 계기로 관계가 틀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민감한 사생활을 담은 메시지가 상대방의 메신저에 남아 있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번 사태를 통해 과거 자료가 현재의 누군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한 방송 관계자는 “텔레그램이 과거 기록을 저장하지 않고 화면 캡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휴대폰을 사용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관한다면 결국 똑같은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며 “결국 메신저를 바꾸는 것은 궁극적인 대처라기보다는 이번 사태를 통해 증폭된 불안감을 일시적으로 줄이려는 심리적 대응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또 누가 연루됐나요?” 크로스 체크
요즘 기자들은 방송 관계자들의 전화를 받기 바쁘다. 방송사 보도국 기자들은 한솥밥을 먹고 있는 예능국과 드라마국으로부터 “이번 사건에 연루돼 또 거론되는 연예인이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일선 연예부 기자들 역시 평소 친분이 있는 PD나 매니저들로부터 비슷한 내용을 묻는 전화를 심심치 않게 받곤 한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며 혹시 논란이 될 만한 인물은 미리 배제하자는 차원이다.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는 가수 정준영. 고성준 기자
승리, 정준영 등의 논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탈은 개인적인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다. 정준영이 출연하던 ‘1박2일’은 제작 및 방송을 중단한 데 이어 또 다른 멤버인 차태현과 김준호까지 방송 활동을 중단하면서 사실상 폐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정준영이 출연하던 또 다른 프로그램인 ‘짠내투어’와 ‘현지에서 먹힐까’ 역시 괜한 논란에 휩싸였다. 이들 프로그램에 정준영과 함께 출연하던 타 연예인들도 SNS 상에서 정준영의 흔적을 지우는 등 ‘선긋기’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이런 불안감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승리와 함께 유리홀딩스를 운영하던 유 아무개 대표는 아내인 배우 박한별에게 불똥을 튀겼다. 박한별은 당초 이번 사태와 분명한 선을 그었지만 그가 남편과 함께 윤 아무개 총경과 골프를 쳤다는 보도가 나오며 사면초가에 놓였다. 이런 사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한별은 ‘거짓말 논란’까지 겹치며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한 중견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매주 촬영이 진행되는 예능의 경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출연진을 하차시키고 방송을 강행할 수 있지만, 방송 전 수개월 동안 촬영을 진행하는 드라마는 특정 배우를 중간에 하차시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출연진 선정 전 주변을 수소문하며 논란거리가 없는지 철저히 체크하고 있다”고 전했다.
# 대화방 탈퇴, 그리고 전화통화 증가
이번 사태로 방송가에서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있다. 그 결과 여러 명이 함께 있는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서 대화가 줄었고, 일부는 아예 퇴장하기도 한다. 혼자 퇴장해도 남아 있는 상대방은 과거 나눴던 메시지를 여전히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에 다 함께 대화방에서 나오는 일명 ‘방폭’(방을 폭파시킨다는 의미)을 제안하는 사례도 늘었다.
메신저 사용이 보편화되며 줄었던 전화통화 역시 증가했다. 그동안 방송사 관계자들은 메신저에 남겨진 기록을 토대로 추후 잘잘못을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메신저를 통한 의사소통을 선호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이 증명되며 전화통화로 짧게 의사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문자 메시지에는 뉘앙스가 없기 때문에 나중에 유출되면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곡해될 수도 있다”며 “전화통화 역시 상대방이 일부러 녹취한다면 기록이 남을 수 있지만, 메신저처럼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남지는 않기 때문에 간단명료하게 전화통화로 의사를 주고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