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세의 B 씨는 주택가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작은 백반집이다. 예전에는 직원을 뒀지만 지금은 혼자 꾸려나간다. 매출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5만 원을 팔지 못하는 날이 지속되면서 장사를 접어야 하나 싶을 때가 많다. 직원이 없으니 최저임금 인상이나 임대료 부담 때문은 아니다. 식당을 찾는 손님이 현저히 줄었다. 자영업자가 늘어나며 경쟁이 심해졌고 젊은이는 식당보다 싼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다. 줄어든 소득 탓에 식당을 찾는 중년층도 감소했다. 예전엔 200만~300만 원을 순이익으로 남겼지만 최근엔 임대료와 식자재 대금을 지불하기도 빠듯하다.
올해 2월 기준 실업률은 4.7%, 실업자 수는 130만 3000명을 기록했다. 청년 실업률은 9.5%, 청년 실업자 수는 41만 명에 달한다. 이런 통계를 찾지 않아도 취업난이 심화되고 일자리가 감소하고, 경기가 얼어붙은 걸 체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을 만나 투자와 고용을 주문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고용보다 희망퇴직 등으로 몸집을 줄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으로 일자리가 생길 거라는 기대도, 단순 기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채용을 진행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한 대기업은 20대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극도의 취업난에 구직활동을 포기한 채 그냥 쉬고 있다는 청년들의 수도 늘어만 간다. 청년실업과 노인빈곤, 퇴직금으로 자영업 대열에 합류한 후 폐업으로 인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연일 더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건 이 같은 저성장 시대의 딜레마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계를 책임지는 저소득 가정의 청년들에겐 어두운 미래가 드리워진 지 오래다. 그들은 한 치 앞을 계획할 수 없다. 40%가 넘는 노인빈곤율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을 양산한다. 일본의 5배에 달하는 자영업자 비율도 문제다. 은퇴 후 무작정 뛰어든 자영업 시장은 프랜차이즈 업체와 부동산을 소유한 소수에게만 부를 안길 뿐 경제의 선순환과는 무관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해 9월 중국 톈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도 4차 산업과 자동화로 인한 대량실업을 예견하는 자리가 있었다. 트롤스 룬 폴센 덴마크 고용부 장관 등이 토론자로 나선 ‘일자리의 50%가 사라진다면?(What If: 50% of Today‘s Jobs Disappear?)’ 세션이다. 세션에 토론자로 참석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동화로 인한 대량실업은 불가피한 사회현상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책적 개입이란 ‘기본소득’을 의미한다.
2018 하계 다보스포럼. 사진=이재명 지사 페이스북
기본소득이란 쉽게 말해 국민 모두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재산과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든지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지급한다. 이 개념은 북유럽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으며 핀란드는 2017년 1월부터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 전도사로 불릴 만큼 이 정책을 신봉한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기본소득’의 개념을 담고 있는 청년배당을 시행할 정도다. 당시 지역화폐로 지급한 청년배당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기도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을 실험한 알래스카, 인도, 나미비아에서도 범죄율과 실업률, 자살률 등이 감소한 결과를 보였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의 “돈을 주면 나태해진다”라는 주장과는 상반된 결과다. 이 때문에 기본소득이 우리가 겪고 있는 저성장 등 경제 전반의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으로 기능할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지사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지 않도록 부를 재분배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단순 기존 세금으로 기본소득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토보유세’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즉 소수가 독점한 토지를 국가 구성원 전체에게 돌리겠다는 복안이다. 이 때문에 기본소득은 ‘복지’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경기도는 기본소득을 통해 평등과 공정이라는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7일 경기도의회는 기본소득위원회와 청년배당에 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제 첫 발을 뗀 셈이다. 아직까지 기본소득이 시행된 적 없는 한국에서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희망을 잃어버린 저소득층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대기업을 성장시키면 그 이익이 아래로 떨어진다는 낙수효과를 믿어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기업에 대한 감세와 지원에 주력했지만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 교수의 “성장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낙수 효과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낙수효과 무용론을 주장한 것이다. 이는 분배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는 분배와 성장의 우열을 가리는 시기를 넘어 개인에게 직접 재원을 지급하자는 주장과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때마침 경기도는 4월 29일과 30일 수원에서 기본소득 박람회를 연다. 기본소득, 지역화폐의 의미와 가치를 조망하고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취지다.
김창의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