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여권 인사가 던진 말이다. 지난해 말 문 대통령 1차 ‘데드크로스(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현상)’ 당시 여권 관계자들은 “지지율의 정상화 과정”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간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일관된 답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만의 생각이다. 냉철한 현실인식이 아닌 희망 섞인 독백에 불과하다. 집권 3년 차 들어 재발한 데드크로스와 이를 둘러싼 이상 징후. 이를 막지 못하면 기다리는 것은 ‘빗장 풀린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제2차 핵담판 무산→혁신성장 운전대→김학의·장자연·버닝썬 수사’ 등의 연쇄작용은 하나로 연결된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운전대를 사실상 놓쳤다. 이후 ‘이례적인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동남아 3개국 순방 기간(3월 10∼16일)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치 효과는 없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3월 11일∼15일까지 닷새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같은 달 18일에 발표한 3월 1주 차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율은 44.9%로, 지난해 12월 4주 차(45.9%) 이후 11주 만에 기존 최저치를 경신했다. 부정평가는 49.7%였다. 데드크로스가 오차범위(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 밖으로 벌어진 것도 ‘리얼미터’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조사한 이래 처음이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순방 기간에 떨어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외치 효과는 통상적으로 지지율 제고로 치환한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당시 일부 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80∼90%대를 찍었다. 북·미 관계가 살얼음판의 길을 걸으면서 문 대통령 지지율도 위태위태한 곡예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을 지닌 4·3 재보선은 전패의 그림자에 둘러싸였다. 문 대통령은 3월 19일 청와대에서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제조업 활력을 살리는 것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며 경제 행보 신호탄을 쐈다. 야권 일각에선 열세인 경남 창원 성산과 통영·고성 후보를 우회 지원한 게 아니냐고 비판했지만, 문 대통령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제 운용 방향 보고→혁신금융 비전 선포식 참석(21일)’ 등 경제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비공개로 진행하던 경제부총리 정례보고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권력기관 기강 다잡기에도 나섰다. 문 대통령은 3월 18일 아세안 순방 이후 첫 일정이었던 수석·보좌관회의를 취소하고 ‘버닝썬·장자연·김학의’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검·경을 향해 “조직의 명운을 걸어라”라고 압박했다. 청와대는 회의는 비공개로 열었지만, 문 대통령 지시사항은 이례적으로 영상으로 녹화, 언론에 공개했다. 지난해 말 1차 데드크로스 때와는 결이 다른 행보다.
1·2차 데드크로스의 가장 큰 차이는 자유한국당의 반사이익 여부다. 지난해 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했을 당시 한국당은 이탈한 문 대통령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리얼미터’의 3월 1주 차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6.6%, 한국당 31.7%였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과 함께 11주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반면, 한국당은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이었던 2016년 10월 2주 차(31.5%) 이후 2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당이 문 대통령의 ‘김학의 수사’ 지시에 대해 “황교안 대표를 겨냥했다”고 격앙된 것도 이 때문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황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을 맡고 있었다. 야권 한 중진 의원은 “문 대통령이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적폐 몰이’를 하는 게 아니냐”고 힐난했다. 레임덕을 막기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늠할 3대 지표로는 ▲데드크로스 ‘주기’ ▲19대 대선 득표율 ‘하회’ 여부 ▲당·청 지지율 ‘역전’ 등이 꼽힌다. 두 달 만에 재발한 데드크로스 주기가 더 짧아지고 ‘심리적 마지노선’인 지지율 40%가 무너진다면, ‘전면적 레임덕’ 국면으로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이 중 1∼2개만 발발한다면, ‘제한적 레임덕’에 그칠 수도 있다.
‘리얼미터’ 등에서 나타난 문 대통령의 1·2차 데드크로스 주기는 2개월 전후다. 만에 하나 3차 데드크로스 주기가 2개월보다 앞당겨질 경우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추세는 한층 가속할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지르는 게 레임덕의 시초라면, 그 주기가 짧아지는 것은 본격적인 레임덕에 진입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이 언제 무너질지도 변수다. 한때 철옹성이던 과반 지지율은 지난해 말 터진 경제 실정 논란에 속절없이 추락했다. 지지율 과반이 무너지자, 40% 중후반대의 약보합세가 몇 달간 지속했다. 2차 데드크로스 이후 심리적 마지노선은 ‘40%’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후반대에 머문다면, 이는 19대 대선 득표율(41.1%) 수준에 근접한다. 이른바 ‘집토끼(지지층)’만 남았다는 의미다.
이마저도 붕괴한다면, 문 대통령 지지율의 하방 압력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20% 초중반+알파(α)’ 수준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이는 지지율 하락 국면 때마다 친문(친문재인)계 인사들이 한 “우리의 지지율이 언제부터 높았냐”며 “민주당 집토끼는 20% 초·중반대”라고 말한 것과 맞닿아있다.
레임덕의 마지막 징표는 당·청 지지율 역전 현상이다. 한때 콘크리트 지지율을 기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 법칙을 피해 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당 지지율을 밑돈 것은 20대 총선 직전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2016년 3월 4주 차 조사(3월 22∼24일 조사·25일 결과 발표)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36%, 새누리당(현 한국당) 지지율은 39%였다.
새누리당(122석)은 보름여 뒤 치른 4·13 총선에서 과반 확보 예상을 깨고 제1당(123석)을 민주당에 뺏겼다. 보수의 구심점을 잃은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게이트로 몰락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국갤럽의 11월 1주 차(11월 1∼3일 조사·4일 발표) 때 5%까지 떨어졌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을 밑돈다면, 레임덕의 둑은 사실상 무너진다. 문 대통령 레임덕의 첫 번째 고비는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 인사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1∼2명이 낙마할 경우 문재인 아킬레스건인 청와대 인사시스템 부실 문제는 정국 핫이슈로 격상한다. 문 대통령의 인사 강행 땐 정국 급랭은 한층 강화한다. 이래도 저래도 딜레마다. 두 번째 고비는 4·3 재보선이다. 현재 판세만 보면, 민주당에 전패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마지막 고비는 21대 총선이다. 보수 야당이 과반을 확보할 땐 집권 4∼5년 차는 형식상 임기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