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발언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 박은숙 기자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친문 충성경쟁이 시작됐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대비해 당을 정비하고 있다. 친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각각 민주연구원장과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내정됐다.
민주당은 가칭 공천제도기획단을 구성했는데 단장은 역시 친문 윤호중 사무총장이 맡았다. 총선·공천 관련 주요보직이 친문인사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당내에서 ‘총선 전에 친문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의 여권 인사는 “이런 상황에서 비문이 살아남는 방법은 친문에 맞서거나 굴복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맞설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인사는 “과거 같으면 (주요 보직을 모두 친문 인사로 채웠을 때) 난리가 났을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할 때 친문 최재성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하려 했더니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가 당무 거부까지 했다. 최근 이종걸 의원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제목이 ‘대통령되면 이리 달라지나···文에 감동’이었다”면서 “지난 2012년 대선 경선 때 김두관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의원은 경선에서 진 후 주변 사람들에게 문재인 뽑지 말라고 독려하고 다녔다. 그 의원도 요즘에는 친문을 자처하더라. 지금 우리 당 분위기가 이렇다”고 했다.
한 민주당 의원실 보좌진은 “지금 우리 당에서 친문 장악을 비판하는 순간 ‘나 비문이요’하고 선언하는 꼴이 된다. 친문표 버리고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나. 내년 총선에서 친문 공천이 불 보듯 뻔해도 지금은 아무도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박정희 정치연구소’ 박정희 소장은 “소위 비문이라고 하는 분들은 지난 국민의당 분열 사태 때 대부분 민주당을 떠났다. 민주당에 친문에 대항할 만한 세력이 남아있지 않다. 문 대통령 지지율도 높기 때문에 당분간 친문 장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면서 “총선 공천이 너무 과하게 (친문 쪽으로) 쏠리거나 막상 자신들이 공천에서 탈락하면 그때서야 비문 쪽에서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그땐 이미 늦은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국회의원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지층이 두터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친문을 겨냥한 내부 비판이 나오기는 더 어렵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비위 사건이 터지자 조국 민정수석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조 의원 SNS에 ‘대통령 등에 칼을 꽂았다’ ‘해당행위다’ ‘후원과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등 비난 댓글이 수천 개 달렸고, 사무실에도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전투력이 강한 박영선 의원이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으로 차출되면서 비문계 세력은 더 약화됐다. 정치권에서는 애초에 청와대가 비문계 구심점을 없애려고 박 의원을 입각시킨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앞서의 보좌진은 “역대 모든 정권이 국정 후반기 동력 확보라는 명분으로 임기 중 치러지는 총선에 큰 관심을 보였다. 문재인 청와대도 이번 총선에서 친문을 대거 입성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거다. (비문들이) 지금은 청와대에 충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대통령 지지율 빠지면 딴 소리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거다. 청와대 인사들이 대거 총선 준비에 나서는 것도 박근혜 정부와 판박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문재인 청와대 1기 멤버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남요원 전 문화비서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권혁기 전 춘추관장 등은 민주당에 복당해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권혁기 전 춘추관장은 진영 의원 지역구인 용산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청와대는 진 의원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차출했다. 청와대가 권 전 관장을 위해 교통정리를 한 모양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친문 충성경쟁은 과열되는 양상이다. 일례로 친문 핵심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구속되자 민주당 인사들의 면회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 지사 측은 “박원순 서울시장, 노웅래, 기동민, 박주민 의원 등이 다녀갔다”면서 “다녀간 정치인 명단을 만들지는 않아서 정확히 몇 명이나 다녀갔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김 지사를 면회한 정치인들은 SNS를 통해 자랑하듯 이를 알렸다. 친문진영을 향한 구애라는 분석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 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면회했다는 민주당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비문 인사들 중에는 3선 이상 중진 의원이 많다. 최근 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을 예고해 비문 중진 의원들이 떨고 있다.
비문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친문 공천 움직임에 대한 의견을 묻자 “우리 당을 더 이상 친문, 비문으로 구별하는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의원님이 비문이라고 명시되는 것도 싫다. 의원님 이름을 꼭 빼 달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 비문 중진 의원들은 총선을 앞두고 정부 차출설이 돌고 있다.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비문 중진 불출마를 압박하는 차원에서 이런 소문을 의도적으로 흘리고 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주일대사 차출설이 돌고 있는 한 비문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도 그 소문을 듣긴 했지만 정식으로 주일대사 제안을 받은 적은 없다. 다 소문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친문 충성경쟁이 과열되면서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를 하는 의원들은 실종됐다. 전희경 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 위기는 침묵하는 민주당으로부터 온다”고 일갈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