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주주들이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주요 주주들이 교보생명 대주주인 신창재 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손해를 봤다며 주식을 되사가라(풋옵션, 보유한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되팔 수 있는 권리)고 나섰기 때문이다. 신 회장 입장에선 주주들의 요구를 그대로 따르면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양 측 모두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교보생명 주요 주주들의 분쟁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신 회장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주요 주주는 재무적 투자자(FI)들이다.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를 비롯한 IMM프라이빗에쿼티(PE), 베어링PEA,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이다. 이들은 교보생명 지분 24.01%를 갖고 있다. 신 회장의 보유 지분은 33.78%다.
어피너티 등 재무적 투자자들은 지난해 말부터 풋옵션 행사를 두고 신 회장과 신경전을 벌여왔다. 발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무적 투자자들은 지난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를 인수했다. 앞서 교보생명과 1980년대부터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대우그룹이 이 주식을 갖고 있었는데,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그 주식이 대우인터내셔널로 넘어갔다.
이후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면서 교보 주식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당시 관심을 보인 건 메리츠, 한화 등이었다. 경영권이 위험해질 위기에 처하자 교보생명은 ‘백기사’들을 끌어들였는데, 이들이 바로 어피너티 등 재무적 투자자들이다.
당시 재무적 투자자 측과 신 회장은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이 주식 시장에 상장하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신 회장에게 이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계약(풋옵션)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후 교보생명은 매년 상장에 실패했고, 약속했던 2015년에서 3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현재 어피너티 등 재무적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어피너티 측은 지난해 10월 28일 풋옵션을 행사하기로 했다. 다만 가격이 문제로 떠올랐다. 어피너티 측은 신 회장에게 주당 40만 9000원에 주식을 되사라고 주장했다. 2017년 말 주식 가격을 회계법인을 통해 정한 가격이다. 이 경우 신 회장이 마련해야 하는 돈은 무려 2조 원에 달한다. 반면 신 회장 측은 지난해 10월 풋옵션을 행사할 당시 시세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시세는 20만 원대였다.
양 측 입장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자 재무적 투자자들은 지난 21일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했다. 상사중재원은 각종 경제 분쟁을 중재‧조정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나온 결과는 법원의 3심을 거친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항소도 할 수 없다.
재무적 투자자들이 승소하면 신 회장이 보유한 지분이나 재산 등을 압류해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 경우 교보생명 지분 60% 가량이 매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최소 6개월 정도면 결론이 나올 수 있어 자금회수가 목적인 재무적 투자자들 입장에선 신 회장에 대한 압박 카드이자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신 회장 측은 일단 재무적 투자자들과 협상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앞서 신 회장은 재무적 투자자들의 중재재판 신청 움직임이 보이자 지난 17일 법률 대리인을 통해 “중재신청이 철회되지 않더라도 별도 협상의 문은 열려 있고 파국을 막기 위한 협상은 마땅히 계속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시에 별도의 반격 카드도 준비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최근 재무적 투자자와의 주주 간 계약을 무효화하는 취지의 소송도 검토 중이다. 풋옵션 계약 당시 내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고,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체결됐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상장 추진이 이사회 의결 사안인 만큼 개인을 상대로 한 계약은 잘못됐다고도 강조하고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재무적 투자자들과 협상을 이어갈 방침이다. 사진=구윤성 기자
이에 대해 금융권에선 신 회장이 ‘시간 벌기’에 나섰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중재 결과를 기다리든, 협상을 하든 그 사이 제3의 투자자를 확보하거나 재무적 투자자의 주식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 다른 대안을 마련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무효화 소송 검토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교보생명이 소송을 제기하면 3심까지 이어지는 지리한 법정 다툼이 벌어질 수 도 있다.
다만 신 회장이 위기를 돌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신 회장이 가진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이유다. 앞서 신 회장은 재무적 투자자에게 ABS 발행을 통한 유동화, FI지분의 제3자 매각 추진, 상장 성공 후 차익 보전 등 3가지 협상안을 내놨는데, 재무적 투자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특히 일부 투자자들은 신 회장이 협상안에 대한 세부 논의 없이 외부에 먼저 공개한 점, 모두 경영권 방어에 급급한 내용이라는 점에 불과했다는데 ‘격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로선 신 회장 측이 경영권을 내놓지 않고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제3자 매각의 경우 금융지주사가 주식 맞교환 형태로 가져가는 방안이 제기되는데, 이를 실행에 옮길 지주사를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장 성공 이후 재무적 투자자 손실을 보전해 주는 쪽으로 제안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상장 자체가 불투명하다. 주주들과의 갈등은 상장 심사 결격 사유에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교보생명은 지난해부터 상장을 준비했다. 오는 5월 상장예비심사를 받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일정에 차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교보생명 관계자는 “앞으로 재무적 투자자들과 협상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며 “중재 재판은 양 측이 합의하면 언제든 철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