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구단 자체중계에 동원된 카메라.
[일요신문] 프로야구 경기가 있는 저녁,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휴대폰으로 중계를 지켜보는 야구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더 이상 TV로만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난 2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리그 유무선 중계권 사업자 입찰 평가 실시 결과를 발표했다.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통신·포탈 컨소시엄(대형 포털사이트와 통신사)’의 계약 규모는 자그마치 5년간 총 1100억 원이었다. 그간 TV 일변도였던 프로 스포츠 중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 KBO 구단이 유튜브로 경기 중계
지난 12일부터 시작해 20일 마무리된 프로야구 시범경기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중계가 이어졌다. 기존 방송사들이 시범경기 중계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는 KBO 리그 유무선 중계권이 통신·포털로 넘어간데 대한 방송사들의 불만 표시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상 방송사가 ‘보이콧’을 선언하며 KBO에 압력을 가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겨울 내내 야구를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방송사와 통신사의 기 싸움에 애꿎은 팬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그럼에도 구단들의 발빠른 대처로 경기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볼 수 있게 됐다. 구단들이 직접 중계에 나선 것이다.
규정상 프로야구 구단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경기 장면을 함부로 온라인에 송출할 수는 없다. KBO와 계약이 체결된 플랫폼을 통해서만 중계가 나갈 수 있다. 하지만 KBO는 최종적으로 시범경기 TV 중계가 불발되자 구단 자체 중계에 ‘OK’ 사인을 내렸다.
시범경기 기간 홈경기를 치르지 않은 두산을 제외한 9개 구단이 모두 자체 중계에 나섰다. 중계 플랫폼은 유튜브였다. 야구 팬들은 일제히 각 구단 유튜브 채널로 몰렸다.
각 구단은 발 빠르게 제작 인력을 섭외했고 캐스터 등 중계진을 모시기도 했다. 특히 LG에서는 명해설위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차명석 단장을 ‘해설로 나서게 해달라’는 팬들의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다.
중계 수준은 예상을 뛰어 넘었다. 물론 수 년간 노하우를 쌓고 수 십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기존 방송 중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스코어 표시, 자막 등 그래픽은 물론 리플레이까지 삽입되기도 했다. 이에 ‘채팅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볼 수 있어서 좋다’, ‘쓸데없이 화면에 관중들을 비추지 않아서 집중할 수 있다’ 등의 호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구단 자체중계를 위해 마련된 중계석(붉은 원)과 카메라.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야구팬들도 각 구단의 자체중계에 긍정적은 반응을 보였다. 나승훈 씨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이용했기에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평가했다. KIA 유니폼을 입고 현장을 찾은 신진훈 씨는 구단이 자체중계에 나서는 신풍속에 대해 “프로야구가 발전하는 과도기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높은 중계권료 때문에 방송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정규리그에선 다시 TV 중계가 되겠지만 이런 형태도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선수들의 팬서비스 문제가 논란이 됐다가 변화하는 것처럼 이 또한 프로 스포츠가 성숙돼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카메라 감독 고용하고 중계차 직접 임대한 K리그
올 시즌을 앞두고선 프로축구 중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K리그는 KBO 리그와 달리 과거 중계방송이 적어 팬들이 운동장에 가지 않으면 경기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을 겪기도 했다.
이후 중계권을 가진 업체가 직접 스포츠 전문 채널을 개국하며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2부리그인 K리그2까지 TV로 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K리그는 1, 2부를 통틀어 주말에만 최대 11경기가 열린다.
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직접 소매를 걷어 붙였다. 이번 2019 시즌부터 K리그2에 한해 연맹이 중계방송 자체제작에 나선 것이다.
중계방송이 적었던 시절에 비해 K리그 경기를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지만 팬들의 불만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중계 방송사나 투입 인력에 따라 중계 품질이 요동쳤다. 선수 정보 표기가 틀리거나 카메라가 골장면을 놓치기도 하는 등 지적이 이어졌다. 연맹 관계자는 “과거엔 예능 프로그램을 찍던 PD가 와서 중계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축구라는 종목에 특화된 중계 품질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연맹에서는 이 같은 품질관리와 각종 그래픽 등 중계방송의 균질화와 표준화를 위해 직접 나섰다. 카메라 감독, PD 등을 직접 고용했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합류했다. 신호 송출을 위해 중계차도 3대 임대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K리그2 중계 자체 제작에 참여하며 현장으로 복귀한 송재익 캐스터. 이종현 기자
이에 직접 제작에 나서기엔 부담이 있지만 K리그 경기 송출을 원하는 채널도 편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연맹 관계자는 “올해는 K리그2 182경기 대부분을 TV로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지난해는 약 40경기만이 케이블 채널에 편성됐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연맹은 자체중계를 결정하며 해설진 구성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40년간 각종 스포츠 현장에 섰던 송재익 전 MBC·SBS 캐스터를 10년만에 현장으로 모셨고 이상윤, 박문성, 이주헌 등 폭넓은 연령대를 고려한 해설위원들도 참여하게 됐다.
연맹이 제작 비용을 증액시키고 직접 중계차 임대까지 나선 배경은 ‘또 언제 중계방송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시작됐다. 중계방송이 없어 어둠의 경로(?)로 K리그를 봐야했던 시절에 비해 많은 경기들이 TV나 뉴미디어 등을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맺어진 K리그 중계권 계약은 내년까지다. 앞으로도 자체 제작을 지속 한다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중계 송출도 쉬워진다. 포털사이트 등에 송출할 화면의 제작을 방송사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스포츠 중계는 TV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계를 휴대폰이나 태플릿 등 각종 IT 기기로 시청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 프로축구 J리그는 지난 2016년 자신들의 중계권을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인 DAZN에 10년 간 2100억 엔(한화 약 2조 1000억 원)에 판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송국이 아닌 스트리밍 업체와의 천문학적 규모 계약은 변화하는 국내 스포츠 시장에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