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금고 유치전을 앞두고 지역에 기반을 둔 지방은행들이 영역을 확장 중인 시중은행을 견제하고 있다. 사진은 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은행 본점. 연합뉴스.
지자체 금고 유치전의 핵심은 ‘협력사업비’, 즉 출연금이다. 협력사업비는 지자체 금고를 운영하게 된 은행이 자치단체와 약정에 따라 금고 지정에 대한 반대급부로 출연하는 돈을 뜻한다.
사실 협력사업비는 전체 100점 중 4점 배점으로 비중이 가장 적고 추가배점도 불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력사업비가 유치전에서 당락을 가를 정도로 존재감이 큰 까닭은 변별력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평가항목은 대부분 은행이 비슷한 수준이라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협력사업비는 은행이 얼마나 ‘베팅’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 때문에 유치전에 사활을 건 은행이 적정 규모보다 더 높은 금액의 협력사업비를 제시하는 출혈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출연금 경쟁에서 지역은행이 자본력이 탄탄한 대형 시중은행을 이기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과거 지역은행은 지역민의 인지도 등을 앞세워 각자 텃밭인 지자체 금고를 확보해왔다. 그러나 2012년 7월 정부가 투명성 확보를 이유로 수의계약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공개입찰로 전환, 시중은행이 지자체 금고 경쟁입찰에 참여하면서 기존 운영해오던 연고지의 지자체 금고를 수성하기 어렵게 됐다.
부산시금고는 현재 BNK부산은행이 제1금고(주금고)를, KB국민은행이 제2금고(부금고)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은행은 2001년 공개경쟁이 도입된 이후 6번의 제1금고 선정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해 20년 가까이 독점해왔다. 제1금고와 제2금고 교차 지원이 불가능한 탓에 시중은행이 지역에서 입지가 공고한 부산은행에 제1금고를 양보하고 제2금고만 노린 이유도 컸다. 그러나 최근 부산시의회가 제1금고와 제2금고의 교차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례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부산은행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부산·대구·광주·제주·전북·경남 지역 지방은행 6곳은 지난 11일 지자체 금고 입찰 경쟁과 관련해 호소문을 내고 “과열된 출연금 경쟁으로 지방은행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며 지자체 금고지정 기준 개선시 지방은행에 정책적 배려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
행정안전부(행안부)는 지난 20일 금고지정 평가기준을 개선, 협력사업비 배점을 기존 4점에서 2점으로 축소하고 금리 배점을 기존 15점에서 18점으로 확대했다. 출연금이 아닌 이자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또 협력사업비가 순이자마진을 초과 또는 전년 대비 20% 이상 증액되는 경우 과다한 것으로 보고 지자체가 행안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금고 선정시 입찰에 참여한 금융기관의 순위와 총점을 모두 공개해 선정 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키로 했다.
이 같은 개선안에도 지방은행들은 불만 섞인 반응을 보인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출연금 경쟁이 과도한 부분에 대한 수정 요구가 관철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금리 배점을 올렸으니 결국 ‘조삼모사’”라고 평가했다. 다른 지방은행 관계자는 “출연금 배점을 줄인 것은 환영하지만, 이자경쟁에서도 자금력이 탄탄한 대형 시중은행이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보다 유리하다”고 전했다.
반면 시중은행의 의견은 엇갈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평가 배점이 줄어든 부분과 지점이나 ATM기기 수를 관할지역에 한정해 평가하는 점 등은 지역은행에 긍정적일 수 있다”면서도 “협력사업비 부분이 아예 배제되지 않았고, 시중은행은 조달금리가 낮아 금리 부분에서도 다소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 또한 “금리 경쟁에서 시중은행이 유리해 보일 수 있겠지만 지방은행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지방은행 발목 잡는 유착 비리 의혹들 일각에서는 그간 지자체 금고 선정 시 지방은행들과 지자체 간 유착 비리 의혹이 여러 차례 불거진 탓에 영역을 빼앗긴다는 지방은행의 호소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에만 6개 지역 가운데 부산시와 대구시, 광주시 등 3개 지역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대구시의 경우 과거 DBG대구은행과 농협, 우리은행, 기업은행이 회계를 분담해 금고 업무를 수행했으나 2016년부터 대구은행과 농협은행이 각각 제1금고와 제2금고를 맡았다. 오는 12월 31일 계약 종료를 앞두고 벌써 유치전 물밑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대부분 지방은행이 지자체금고 선정 경쟁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가장 예민한 곳은 대구은행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는 대구은행의 지자체금고 수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의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은행은 2017년 불거진 성폭력 사건과 지난해 불거진 비자금 파문 등으로 시민단체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대구참여연대와 대구경실련 등 4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대구은행 부패청산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해 8월 대구시에 대구은행과 금고계약을 즉각 해지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강금수 대구은행 부패청산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지자체금고 운영 금융기관이 여러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탓에 지난해 대구시에 운영상황 등의 정보를 요청했으나 시가 핵심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지난해 11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며 “현재 시가 반론 서류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조만간 신속한 처리를 요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산시금고 선정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오가고 있다. 지난 1월 부산은행의 채용비리 사건 연루자들이 실형을 선고받은 탓이다. 시금고 선정에서 편의 제공을 대가로 부산은행 측에 아들을 채용 청탁한 전 고위 공무원은 지난 1월 25일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의 아들을 합격시키도록 한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과 이에 가담한 정 아무개 수석부행장은 각각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광주시에서는 광산구금고 선정과 관련, 담당 공무원이 은행에 심사위원 명단을 사전 유출한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광주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구청과 은행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 바 있으며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