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인사 성접대 등 불법 로비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2013년 7월 10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윤중천 게이트는 남편의 외도 동영상을 발견한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아내 김 아무개 씨로부터 시작됐다. 우연히 남편의 휴대폰에 저장된 성관계 영상을 발견한 김 씨는 2013년 내연녀로 알려진 A 씨와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했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동영상이 경찰 손에 넘어간다. 이를 억울하게 여긴 A 씨는 윤중천 씨를 협박과 성폭행 등 혐의로 고소했다.
윤 씨와 다투던 A 씨는 지인으로부터 박 아무개 씨를 소개 받았다. 박 씨는 A 씨의 해결사 역할을 했다. 윤 씨가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던 A 씨의 벤츠 차량을 회수하는 역할이었다. 박 씨는 자신의 부하에게 차량을 찾아오라고 지시했고 그 차량에서 문제의 CD가 발견됐다. A 씨에 따르면 박 씨와 부하가 CD를 보유하고 있고 자신은 그 실체에 대해서 직접 본 적이 없다. 사건 당시 언론에서는 CD 7장이 발견됐다고 보도됐으나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해결사 박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관을 통해 서초경찰서 강력2팀에서 A 씨 사건을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대가로 박 씨는 A 씨로부터 1000만 원을 받았다. 이게 문제가 돼 박 씨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경찰은 박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앞서 벤츠 차량에서 발견된 원본 동영상을 입수했다고 알려졌다. 문제의 동영상은 2006~2008년 사이 촬영된 영상이었다. 여기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등장했지만 그 외에 또 누가 촬영됐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A 씨는 “윤중천이 입버릇처럼 XX, △△ 다 찍어놨다고 말했다. 그런데 진짜 그 사람들 이름이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고 그 말이 다 사실이였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사건이 집중 보도되던 2013년에는 수사 관계자 사이에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성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영상에서 강압이나 폭력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핵심 논리였다. 하지만 피해여성들이 성매매와 무관한 일반인 여성들이었다는 점에서 이 논리가 성립되기 어려웠다. 피해자 중에는 사업가, 배우, 화가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여성이 있었다. 또 여성들이 특정 공급책에 의해 동원된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계기로 윤중천을 알게 돼 자발적 성접대로 보기 어렵다. 피해여성들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반면 피해여성들이 마약에 노출됐고, 불법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으로 협박을 받았다는 주장도 줄을 이었다. 실제로 2013년 경찰은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2006∼2008년 성관계에서 각성제나 흥분제 등 여러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 씨가 마약을 거래한 혐의가 확인됐다. 하지만 최근까지 투약하지 않는 한 몸에서 약 성분을 발견하기 어렵고 성폭행과 마약 이용 관계에 대해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근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이 ‘경찰이 2013년 수사 중 윤중천과 그의 조카로부터 입수한 영상과 사진 등 증거자료 3만 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일었다. 별장 등지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영상들에는 항간에 떠돌았던 성접대 리스트 속 인물들이 촬영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를 두고 경찰과 검찰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중이다.
당시 윤중천 별장에 출입하며 성착취를 했던 가해자 리스트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떠돌았다. 지라시 형태의 접대 리스트에는 유명 병원장, 건설업체, 화가, 교수 등이 고정적으로 등장했고 버전에 따라 경찰고위직이나 검찰고위직이 대거 포함됐다. 심지어 사정당국 관계자 사이에서는 경찰과 검찰이 서로를 겨냥하는 지라시를 유포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됐었다. 다만 리스트에 등장했던 인물 중에서 실제로 윤 씨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대가성을 두고 뇌물죄로 기소해야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건에 거론됐거나 연관됐던 사람들은 대부분 거주지와 연락처를 바꾸고 잠적했다. 당시 윤중천 씨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사업적인 대가를 주고받은 의혹이 제기된 P 씨는 과거사위의 조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사업체를 폐업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으나 윤 씨에 대해 묻자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황급히 연락을 끊었다. 최초 동영상을 발견했다고 알려진 박 씨 역시 주소지를 찾았지만 집을 비운 상태였다. 박 씨의 거주지 관리인은 “그 사람 못 본 지 1년 가까이 됐다”고 말했다.
관련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지만 진상조사단이 경찰이 과거 확보했던 자료를 요청했고, 증거자료나 추가 피해자들이 나타나면 재수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조금 잘나간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출입을 하지 않았나 싶다”며 “결국 문제는 공소시효”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