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열린 제4차 불법촬영 편파시위 규탄시위 현장. 사진=고성준 기자
지난해처럼 대규모 시위가 이뤄지지 못하는 데에는 현재 여성들의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란 이유가 따른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의 주최진이었던 ‘불편한 용기’는 지난해 12월 6차 시위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당시 불편한 용기 측은 “6차 시위가 종료된 이후 스스로의 발자취를 돌이켜 보며 어떤 백래시(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대중에게서 나타나는 반발 현상)가 밀려오고 있는지 고찰하는 동시에, 더욱 거세질 백래시에 한국사회가 잡아먹히지 않도록 다각도로 주시하겠다”고 중단 이유를 밝혔던 바 있다.
그 말대로 2018년 12월 22일 마지막 6차 시위 이후 불편한 용기 측은 공식 다음카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운영진이 사라진 카페는 무법지대로 남았다.
7차 시위를 원한다는 여성들의 글이 올라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글들이 대거 올라왔다. 사진=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카페 캡처
이들이 공유한 영상은 본인들이 직접 촬영하거나 다른 지인들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영상 가운데는 약물을 먹인 것으로 보이는 여성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도 있었다.
유명인까지 가세한 불법 촬영 문제가 터지면서 여성들은 지난해를 기억해 냈다. 총 6차에 걸쳐 이어졌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의 7차 시위가 이뤄져야 하는 때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지난 3월 12일, 다시 다음카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모였다. “7차 시위를 열어 달라. 이번에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참여 하겠다” “다시 모여서 소리 내고 싶다. 열어주기만 한다면 무조건 가겠다” “지난해 시위가 아니었으면 이 사건도 그냥 그렇게 끝났을 거다. 끝까지 우리가 있다는 걸 피력해야 한다”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카페에서 쫓겨나는 처지에 놓였다. 이미 이 카페를 점령하고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 복권파’가 7차 시위를 거부하고 나선 탓이었다. 복권파 측은 “지난해 시위를 열어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이는 모두 남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들을 무시했기 때문”이라며 “여성이 최고위직에 있어야 여성들의 말을 듣는다. 7차 시위를 열 것이 아니라 여혐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의 복권 시위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7차 시위를 열어야 한다”는 여성들에 대해 “페미니즘 세력을 분산시키려는 꿘충(운동권을 비하하는 신조어)”이라고 지적하며 “여성을 위한 시위가 이미 열리고 있는데 굳이 7차 시위를 강조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이 말하는 ‘여성을 위한 시위’는 한미동맹연구청년회(한미연)가 진행하고 있는 ‘박 대통령 석방시위’다.
한미연 시위는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와 남성혐오주의를 표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가 지지하는 시위로 알려져 있다. 당초 워마드는 동일하게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한 대한애국당 계열의 시위인 ‘여성총궐기’에 참여해 왔으나, 대한애국당 측이 워마드를 거부하면서 노선이 갈렸다.
한미동맹연구청년회가 주최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시위에서 사용된 구호. 사진=워마드 캡처
이어 “그런데 불용 시위 카페와 워마드를 중심으로 이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며 반대 분위기를 조성하며 선동했다. 운동권이 정부의 편을 들기 위해 여성들을 이용하려고 만든 시위이며 주최 측이 남자로 추정되니 절대로 참여해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라며 “그 탓에 남성약물카르텔 규탄 시위는 예상보다 저조한 인원이 몰렸다. 지금 여성들이 지난해처럼 거대한 집단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박근혜 복권이 아니면 모든 여성 의제 시위를 훼방 놓으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워마드는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응원하는 광고를 걸기 위해 모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